왜 그날 지붕에 올라갔을까
내가 술이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02년 봄 ‘지붕 사건’을 겪고 나서다. 당시 2년차 새파란 기자였던 나는 회사가 있는 공덕동 인근에서 대학 과 선배 K와 만나 초저녁부터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따라 1차에서 대취했고, 2차로 옮길 즈음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계속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졌다. 차츰 정신이 드는데, 웬 낯선 곳에 내가 누워 있고 사람들 여럿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 아닌가. 일단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누구시냐, 일어나시라”는 말에, 힘겹게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어, 기자네. 도둑은 아닌가봐.” “그나저나 죽지 않은 게 다행이네.”
‘헉, 도둑이라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선반기계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철공소나 목공소 같아 보였다. 어렵사리 입을 열어 대화를 시작해 서울지하철 1호선 남영역 근처에 밀집해 있던,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조그만 작업장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장에 들어오게 된 경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붕에 기어 올라갔고,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슬레이트가 깨지면서 내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실제 고개를 들어 바라본 천장 한쪽이 깨져 있었다. 가정집 천장보다 훨씬 높은, 족히 7~8m는 될 듯한 높이. ‘죽지 않은 게 다행이란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지붕 수리비를 송금해주기로 약속하고, 사람들이 불러준 택시 뒷자리에 몸을 뉘었다. 대학 시절부터 살고 있던 학교 앞 하숙방에서 눈을 떴다.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고, 3차로 옮기는 중간에 K와 주택가 골목길에서 실례를 하다가 젊은 집주인 부부에게 발각돼 다툼을 벌였던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술김에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같이 한잔 하자”고 얘기해 그 집주인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됐고, 집주인이 알고 보니 한 경제지 기자였던 사실도 떠올랐다.
그 밖에는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스틸사진 몇 컷이 전부였다. 낙하 때의 충격 때문인지 여전히 삭신이 쑤셨다. 귀 뒤편에 뭔가에 찍혀 상처가 났고, 베개가 피로 흥건했다. 결국 꼬박 일주일 동안 회사에 출근도 못한 채, 하숙집 인근 병원에서 통원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계기가 된 ‘지붕 사건’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시간이 흐른 만큼 상처는 어느 정도 봉합됐다. 사고 이튿날 “너랑 술 마셨다가 운동화 잃어버렸으니 책임지라”는 전화를 걸어 병상에 있던 나를 황당하게 했던 K와는 지금도 종종 술자리에서 마주한다. 지하철을 타고 지날 때면 나도 몰래 외면하던 남영역 인근(지상 구간) 슬레이트 지붕 공장 풍경들도 이제는 쓴웃음과 함께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날 나는 왜 그 공장 지붕에 올라간 것일까? 혹 하늘에 있는 바쿠스 신과 접신이라도 하겠다며 건물 꼭대기를 찾은 것은 아닐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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