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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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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그대들의 ‘병신력’을 기억하리라

‘충격글’일수록 관심받는 게임의 세계 ‘일베’
국정원은 절대시계 내걸며 ‘게임화 전략’ 본격적으로수행
등록 2014-02-25 14:42 수정 2020-05-03 04:27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2008년 촛불집회 직후 짧은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칼라TV’ 방송을 매개로 집회와 시위가 어떻게 컴퓨터게임이 되어갔는지 분석한 글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낱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이란 ‘게임의 사고와 전략을 게임이 아닌 다른 맥락에 전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집회가 자생적 게이미피케이션의 예라면, 오늘날 교육, 경영, 웹 커뮤니티 운영,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의도적으로 게임의 논리와 전략을 개입시키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감 그리고 이어지는 차별 공고화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트롤링 사이트가 골치 아프게 성장한 것도 커뮤니티 운영에 게임의 전략을 차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베 이용자들의 대다수는 스스로 ‘병신’이나 ‘벌레’라 비하하는 사회적 ‘루저’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어디선가는 칭찬을 듣고 싶은 법이다. 현실에서 거절당한 이들에게는 그 비루한 현실을 대체할 대안의 공간이 필요하다. 일베라는 가상 세계는 그들이 현실에서 받아보지 못한 인정을 받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아실현을 할 유일한 장소다.

게임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실은 종종 노력에 보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은 정직해 즉각적으로 보상을 한다. 게임은 할수록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간다. 그곳의 규칙은 현실보다 공정하며, 그곳에서 사용자들은 현실에서보다 평등하다. 일베 커뮤니티의 운영에는 이 게임의 논리가 적용된다. 추천(‘산업화’)을 많이 받은 포스트는 ‘베스트 게시판’에 오르고, 베스트 글을 많이 올린 ‘게이’(게시판 이용자)는 레벨이 올라간다. 높은 레벨에 도달한 이른바 ‘고렙’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존중’을 받는다.

관심을 받으려면 글이 충격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충격은 곧 익숙해지기에 자극은 점점 더 커지는 법. 수간 인증, 성폭행 모의, 젖병 인증, 자살한 할아버지 사진 인증 등 일베에서 일으키는 사회적 파문은 대부분 이 무모한 ‘관심투쟁’의 결과다. 놀라운 것은 이 게임이 현실감을 상실하게 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는 점이다. 문제를 일으킨 게이들은 그저 자신이 가상의 세계에서 ‘게임’을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몰취향한 놀이가 가상의 밖으로 노출될 때, 자신도 결국은 사법과 윤리로 규제되는 냉엄한 현실에 속해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역시 일베는 병신 같은 게 제맛이다.” 게이들은 ‘일베=병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은 “나 같은 병신”이나 “나보다 더 병신”을 보는 것은 ‘힐링’의 효과가 있다. 게이들 사이에선 “병신 대결”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베에서도 나보다 더 병신 같은 ××는 없을 거다.” 사실 이 ‘병신-문화’에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거기에는 중세의 카니발이나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해방적’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병신”이라는 말 속에는 사회적 위계 속에서 신분과 계급으로 나뉘기 이전의 원초적 평등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은밀한 열망이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일베는 병신 게임의 해방적 계기를 곧바로 부정한다. 여성과 외국인과 호남인을 공격함으로써 일베는 차별을 철폐하는 대신에 공고화한다. 일본에서 신분제 철폐에 가장 극렬히 반대한 것은 외려 상민들이었다. 신분제가 철폐되면 상민들이 천민을 차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로부터 차별받는 수모를 견디게 해준 것은 그들이 차별할 수 있는 천민계층의 존재였다. 그것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자이니치’를 공격하는 심리다. ‘너희보다 못났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니뽄진이다.’

최종병기 ‘정신승리’가 있으니까

일베의 심리도 다르지 않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탄 주제임에도 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을 앞 칸의 승객들과 동일시한다. 이 차별에 항의하는 동료 승객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객차에 태워 자신들의 객차 뒤에 달아놓으려 한다. 현실에서는 차별‘당’하는 그들도 일베에 들어오면 차별을 ‘가’할 수 있다.

찌질한 이들에게도 자아 형성을 위한 도덕적 원리가 필요하다. 그 원리로 소환된 것이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안전한 가치, 즉 애국이다. “애국심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다.” 애국은 동시에 서사의 원리가 된다. 주류에서 배제당한 그들은 자신도 주류에 속해 누군가를 배제해보기를 절실히 원한다. ‘주류’에 속하려고 그들은 자신을 대한민국과 동일시하고, 이어서 거기서 배제할 누군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좌빨’이다. 이로써 자신들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붉은 무리에 맞서 싸운다는 장엄한 애국 게임의 서사가 완성된다.

일베를 교두보로 회원들은 온갖 사이트로 원정을 떠난다. 게시판에는 이른바 ‘산업화’의 영웅담이 올라온다. 누군가 “화력지원”을 요청하면, 기꺼이 지원군이 되어 함께 악플을 달거나 별점 테러를 가한다. 이때 고렙들은 다양한 자료와 논리로 병졸들의 싸움에 필요한 아이템을 보급해준다. 그들이 좋아하는 ‘팩트’는 대부분 조작되거나 왜곡된 것. 그럼에도 무적의 용사들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최종병기, ‘정신승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속에서 그들은 사회에 쓸모없는 자신이 국가엔 쓸모가 있음을 발견한다.

일베의 애국 게임은 자발적 게임이나, 이 자생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국가정보원은 본격적 의미에서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을 사용했다. 국정원에서는 일베 회원들에게 좌익을 신고하라는 구체적인 미션을 주며, 미션을 성실히 수행한 회원들에게는 ‘절대시계’를 나눠주었다. 이 전략은 특히 일베의 어린 회원들을 열광시켰다. 절대시계는 엄청난 충성을 바쳐야 ‘득템’할 수 있는 ‘절대반지’로 통하며, 일베 회원들 사이에서 게임 아이템처럼 비싼 값에 거래되기까지 했다.

알카에다·국정원·일베의 공통점

정치적 목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정원만이 아니다. 알카에다나 헤즈볼라 같은 무장단체도 이미 오래전부터 젊은 층의 충성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커뮤니티 운영에 게임의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감사 포인트’나 ‘명성 포인트’를 모아 레벨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운영 원리는 일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포스트의 내적 가치보다는 외적 보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극단적 견해일수록 높은 포인트를 받는다. 그 결과 커뮤니티 회원들의 의식은 날로 과격해진다.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성스러운 전쟁’(Holy War)은 “성스러운 워크래프트”(Holy Warcraft)가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조국을 위해 성전을 치르는 일베의 전사들에게 축복 있으라. 조국은 그대들의 드높은 ‘병신력’을 기억하리라.

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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