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한 일간지에 썼던 칼럼의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진중공업 노사 간 합의 소식을 듣고, 단체협약 회복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419일째 노숙농성 중인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을 찾았다. ‘아, 그 곱던 얼굴이…’ 내 말에 ‘그렇지요? 제가 본래 좀 예뻤지요?’라고 재치 있게 받는다. 그러한 여유가 그이를 1400일이 넘는 거리농성을 견디게 했을 것이다.”
‘해결함’과 ‘마련함’ 사이유명자 지부장의 그 거리농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벌써 7년째다. 길거리 농성천막에서 보낸 추석 연휴, 설 연휴가 여섯 번이나 된다는 뜻이다. 겨울 끝자락을 못내 아쉬워하는 꽃샘추위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지난 3월5일, 서울시청 앞 환구단 재능교육 농성장을 지키는 강종숙 위원장, 유명자 지부장을 찾아갔다. 매서운 칼바람이 농성장에 세워둔 ‘거리농성 2267일’ 엑스배너 현수막의 목덜미를 잡아채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말이 쉬워서 2267일이지… 그동안 쌓인 사연들이 소설책 수십 권 분량은 충분히 되고도 남을 것이다.
두 사람을 여전히 ‘위원장’ ‘지부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사람에게는 노동자들이 존경의 뜻을 담아 영원히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듯, 두 사람을 계속 ‘위원장’ ‘지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강종숙씨는 재능교육 교사는 아니다. 학습지노조 위원장으로서 재능교육지부 투쟁을 함께했을 뿐이다. 지난해 말, 유명자 지부장을 위해 마련한 송년모임에서도 그는 “저는 재능교육 소속이 아닙니다. 경쟁회사 업계 1위 ‘눈높이’ 대교 학습지 교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정도로 사람들은 그를 곧잘 재능교육 교사로 오해한다.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뜻이다.
천막 설치가 불법이라고 계속 철거해대는 바람에 파라솔에 비닐을 둘러 겨우 바람을 막고 있었다. 파라솔도 지지대를 사용해 곧게 세우면 ‘위법’이라고 해서, 눕혀진 파라솔의 반대쪽만 겨우 가린 형국이다. “그래도 대문이 있다”면서 한쪽 입구를 가렸던 피켓을 열어준다. 철거하면 다시 치고, 철거하면 다시 치기를 7년째 계속하고 있다. 비바람 속에 플라스틱 의자만 달랑 갖다놓고 농성장을 지킨 적도 여러 번이다.
지난 2월26일 열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2013년 사업을 평가하면서 재능교육지부의 투쟁 내용 중, 그동안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사항이던 단체협약의 원상회복과 해고자 전원 복직에 대해 ‘해결 기반을 마련함’이라고 표현된 문구를 ‘해결함’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 받아들여진 것이다. ‘해결 기반을 마련함’이라는 표현을 굳이 ‘해결함’으로 바꿔야 한다고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명 이상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재능지부가 지금처럼 소수의 조합원들만 남아 7년이나 되는 장기 농성 투쟁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2007년 단체협상 과정에서 당시 이현숙 지부장이 이끄는 집행부가 회사가 요구한 수수료 제도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불과 4표 차이로 가결됐다. 대리투표 등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 무렵 다른 학습지 회사들도 비슷한 수수료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대부분 현장 교사들의 반발로 실패하거나 유보됐다. 당시 분위기를 유명자 지부장은 “노동조합이 현장 교사들을 사지로 내몬 꼴”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많은 교사가 회사를 떠났다. 2007년 6천여 명이던 재능교육 교사 노동자 수는 한 해 만에 4500여 명으로 줄었다. 결국 재능교육노조 조합원들은 새 지도부를 구성해 2007년 말부터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위한 농성투쟁에 나섰다. 그 투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 수는 계속 줄어들어 2010년에는 11명만 남았고 결국 모두 해고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재능교육 투쟁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복직” 이 두 가지의 요구사항이 “변할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잠깐 곁길로 빠져보자. 지난 학기 중간시험에서 대학생들에게 ‘노동조합의 생성 과정과 미래 사회 노동조합의 전망에 대해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더니, 한 학생이 답안을 이렇게 시작했다. “두 명 이상 있는 어느 단체에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많이 웃었지만 차마 부인할 수 없는, 일리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7년 동안이나 싸운 노동자들 사이에 어찌 갈등이 없으랴.
2013년 2월6일, 재능교육의 두 조합원이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유명자 지부장에게 “사전에 합의된 투쟁 전술이냐?”고 물었고, 유명자 지부장은 아니라고 했다. 이때부터 재능교육 투쟁은 혜화동 종탑 농성과 서울시청 앞 환구단 농성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오죽하면 투쟁 2천 일 기념 집회를 종탑과 환구단에서 따로 열어야 했을까?
그 무렵 종탑 농성을 지지하는 박일환 시인이 환구단 농성을 지지하는 나를 겨냥해 글을 하나 썼다. 점잖은 문체지만 노회한 시인답게 ‘명망가라는 덫’이라는 제목부터 맘먹고 상대방 가슴에 비수를 꽂는 내용이었다. 나는 유명자 지부장에게 “과거 5년 투쟁하는 동안 박일환 시인이 재능교육 투쟁에 얼마나 참여했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이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종탑 투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비로소 재능교육 투쟁에 결합한 사람들에게는 종탑에까지 올라가 고생하는 노동자들을 선뜻 지지하지 않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2013년 8월26일 종탑 투쟁은 회사와 합의안을 타결하고 끝났다. 당사자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이라 주장했고 언론도 그렇게 표현했지만 “합의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원상회복’이라 할 수 없고 그 정도 수준의 합의안이었다면 몇 년 동안 이렇게 싸울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 유명자 지부장의 주장이다. 그래서 유명자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다시 혜화동 본사 앞으로유명자 지부장에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싸우는 이유가 뭐냐?”고 상투적인 질문을 했다. “기본을 지킨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터넷 아이디도 ‘답게살자(dobgesalja)’예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기본을 지키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길바닥에서 7년을 싸워야 하는 세상이다. 이튿날 세 사람은 시청 앞 환구단 농성장을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으로 옮겼다. 너무 외진 곳이라 시청 앞으로 옮긴 게 4년쯤 전인데, 다시 외진 곳으로 갔다. 잊지 말아주시기를….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01년 6월29일 제365호부터 2004년 2월26일 제498호까지 꼬박 2년8개월을 썼습니다. 시작은 ‘휴먼포엠’이었는데 곧 ‘진짜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2년8개월을 썼다고 마지막 글에도 나오는데, 전화 통화에서 그는 “2년6개월 정도 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은 보통 부풀리게 마련인데 하종강 선생은 기억도 겸손합니다. 마지막 글에서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우리 사회의 모순된 억압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사람, 운동권 내에서조차 중심에 우뚝 서 있지 않은 사람….” 우리는 하종강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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