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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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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헬스클럽, 우리의 왼손잡이!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고 대학생은 기자가 되는 세월, 은밀하고 위대하게
<한겨레21>을 응원해온 이들의 이름 ‘독자편집위원회’
등록 2014-03-21 16:54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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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설레었다. 아직 차갑지만, 촉촉한 공기가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하던 날이었다. 지난 3월11일 저녁 7시 6명의 전·현직 독자편집위원들이 다시 한겨레신문사 건물을 찾았다. 오랜만에 온 만리재가 반가운 눈치다. 서로 다른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위원들 사이에 어색함은 짧았다. 20년의 시간을 공유하다보니 점점 더 가까워진다. 추억을 회상하고 혼란스러운 현재를 함께 읽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서로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음…, 이 애정의 원천은 무엇이지? 한때 독자편집위원으로 활동하던 내가 기자가 된 뒤 독자편집위원을 다시 만나는 기분은 오묘했다.

닮은 사람들, 이 애정의 원천은

사회 - 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채규정(이하 채) - 세상사 판단의 기준점이다. 후련해서 본다. ‘만리재에서’부터 읽는데 일주일의 모든 것이 응축돼 있다.

김종옥(이하 김) - ‘만리재에서’부터 읽는 독자와 맨 뒷장의 칼럼부터 보는 독자로 나뉜다. 내겐 헬스클럽이다. 생각의 근육을 만들어준다. 돈이 아까우니 보게 되고 안 보면 마음이 무겁다.

장일호(이하 장) - 경쟁지다. (일동 웃음)

정현환(이하 정) - 오른손잡이인 나의 왼손 같다.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본 뒤 재밌어서 자주 보게 됐다. 원래 빈민, 성소수자 이야기에 관심 없었다. 평범한 오른손잡이라 왼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다. 읽으면서 왼손잡이를 이해하게 됐다.

K - 내 인생의 브레이크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면 자제할 수 있지 않나.

윤이삭(이하 윤) - 나침반. 오그라들까 싶어 말을 할지 고민했는데 다른 수식어를 못 찾았다. 수많은 미디어가 생겨나고 없어지고 변화하고 있는데 가장 본질에 충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언론이다.

사회 - 나는 읽다보니 기자가 되었다. 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런지 소개해달라.

김 - 아이 낳고 아이만 봤다. 자폐가 있는 아이라 엄마가 매달려 있어야 했다. 독편위를 하면 더 열심히 을 읽을 것 같아 지원했는데, 활동 이후 세상으로 나왔다.

정 - 한센인 기사를 읽고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다. 6개월에 한 번씩 간다. 내 행동이 바뀌었다.

K - 나를 변하지 않게 해줬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를 오른쪽으로 끌고 가기 쉬운데 은 그렇게 끌려가지 않게 도움을 준다. 물들지 않게 해준다.

장 - 대학생 때 을 읽고 소수자나 인권 문제에 눈을 떴다. 2009년 기자가 되기 전부터 주간지 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독편위 때 쓴 글이 검색돼서 찾아봤는데, 지금 보니까 온갖 지적질을 했더라. 기자가 되고 나니 그때 기자들이 왜 그렇게 기사를 썼는지 이해가 되더라.

윤 - 고등학교 3학년 때 독편위를 했다. 대학을 가느냐 마느냐가 우리와 관련한 유일한 문제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왕따, 학생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매체는 이 유일했다. 단순히 학생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도 소수자에게 주목하는 만의 시선이 나의 정체성 확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판매가 뒤진다기에 남은 ‘21’ 모두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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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나.

장 - 인공기가 표지로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표지가 겉으로 보이게 말아 들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그러지 못하겠더라. 사회 분위기상 그랬다기보다 일종의 자기검열이었다.

김 - 언젠가 이 많이 팔렸다. 가판대 판매 아저씨가 이 더 잘 나간다고 하더라. 독편위원으로서 불안했다. 나는 여기 식구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가 남은 을 다 사서 왔다.

장 - 김외현 기자가 날 보고 “친정 오는 기분이겠다”고 하더라. 아니라고 했다.

김 - 요즘은 이 한풀 꺾인 것 같더라.

사회 - 그 정도 애정이면 입사하면 좋겠다.

채 - 충남 서천에서 국어 교사를 했다. 이 우리말로 기사 쓰는 걸 보면서 어휘력이 많이 늘었다.

사회 - 독편위 시절의 과 지금 은 어떻게 다른가.

채 - 그때는 그때대로 좋고 지금은 지금대로 좋다.

윤 - 초창기 을 봤는데, 인상 깊은 건 그때도 은 다른 주간지들에 비해 디자인과 편집에서 앞서 있더라. 지금은 급진 수준으로 앞서 있지 않나. 기자도 여기 있지만 은 디자인이 취약하다.

장 - 이 현란한 느낌이 있다.

사회 - 경쟁지 기자가 깨알 ‘디스’를 하고 계시다. 기자이니 이해해야 한다. 20년 동안 예쁜 시사주간지를 만난 건 사실이다. 기사의 경중을 떠나 트렌디함을 잊지 않아줘서 좋았다. 한편 언론 환경이 그때랑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기사 작법도 달라져야 하고.

장 - 독자들의 정보량이 늘어서일까. 약간 무뎌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올해 들어 선보인 표지이야기 몇 편이 그랬다. 너 외롭구나, 데모당, 사람이 책이다 등. 민영화 관련 기사도 너무 늦게 나왔다.

선취한 진보 의제 꼭 지켜내시길

사회 - 지금도 생생한 기사가 있다면.

정 - 서울 마포에서 28년을 살았다. 철거왕 이금열 기사를 보면서 마포의 변화가 이해됐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많은 집을 철거한 이가 그런 사람들이구나, 나는 그걸 몰랐다. 현재진행형 문제인 것 같아 더 기억에 남았다.

사회 -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여준 기사들, 의 힘이라고 느끼는 독자가 많을 거다.

장 - ‘노동 OTL’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임인택 기자가 쓴 난로공장 기사가 특히 좋았고,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 대한 길윤형 기자의 기사를 좋아했다.

김 - ‘아체의 기억’이라는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2003년인데,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사형당한 장면을 그대로 실었다. 충격받았다. 굉장히 놀랐지만 그동안 나라 밖 소식을 잘 알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 - 신문의 국제 기사는 사실 정형화됐다. 주간지에서 그걸 많이 보완해준다.

윤 - 2008년 삼성노조 관련 기사가 기억난다. 분량은 적었지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기사였다. 삼성노조라는,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키워드에 대해 소개해줬다. 레드 기획도 반짝반짝했다.

채 - 순복음교회 권력의 핵심을 찌르는 기사들이 좋았다.

K - 대부분 다 좋은 기사였는데, 공모전에 출품했다 떨어진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가 떠오른다.

김 - ‘김소희의 오마이섹스’랑 ‘X기자 부부의 주객전도’도 잊을 수 없다. 기자의 생활이 드러나는 걸 읽는 재미가 있다.

사회 - ‘이거, 어디 갔어’ 칼럼도. 기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야 해서 조금은 피곤한, 그런 기사를 독자들은 좋아하더라.

20년간 열심히 달렸으니 앞으로의 20년이 걱정이라는, 의 고민을 전해야 했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세상은 하루하루가 배신의 역사가 아닌가. 상식보다 힘이 앞서 있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져가고 사회의 모순은 더 깊고 복잡하게 얽혀 눈을 흐리게 한다. 눈 밝은 독편위원들은 예상대로 용감했다. 그럴수록 이 약해지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강해져야 한다고 격려했다. 곱씹어볼 말이 많았다.

정 - 탈북자 이야기를 왜 안 하나. 가 ‘통일은 미래다’라고 선점할 때 조바심이 나더라. 진보의 가치였던 인권의 하위 개념으로 북한 인권이 있다. 왜 먼저 깃발을 꽂지 못하나.

채 - 빨갱이칠하는 세상이라 걱정이 된다.

김 - 진보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부분을 많이 뺏기긴 했다. 개념이나 색깔을 다 가져갔다. 빨간색마저 가져가지 않았나. 녹색, 친환경도 가져가더니 이번에는 통일이다. 기본을 진보에서 지켜내야 한다.

사회 - 보수의 논리에 대응하면서 반발 내지 한발 앞서서 의제를 선점하는 건 두 배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김 - 기본소득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평등사회에 대한 고민마저 가져갈까 우려스럽다.

정 - 가격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 때도 3천원이었는데. 종이값도 오르지 않았나.

김 - 맞다. 발송비도 있을 텐데 지금 너무 싸다.

정 - 5천원짜리 커피보다 이 낫다.

무거워지는 것, 개의치 마시라

사회·장 - 그래도 너무 올리면 안 되니 500원씩은 어떤가. (동의하는 분위기)

윤 - 온라인에서 의 힘이 약하다. 과 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치가 20배 이상 차이 나더라. 독자 수가 많은 게 결국 매체의 힘이다. 은 ‘노란봉투’라는 캠페인을 이끌어냈다. 도 그런 걸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 - 온라인은 양날의 검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온라인 기사가 풀리더라도 후속 보도인 지면 기사는 심층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일간지에서도 점점 긴 호흡의 기사를 많이 쓰니 경쟁력이 줄어들었다.

사회 - 길이가 긴 주간지 기사들은 사실 온라인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성의껏 쓴 기사에 달린 댓글이 “기사 너무 길다”라는 말뿐이면 기운이 빠진다. 어떻게 온라인 독자와 소통할 것인지 의 고민도 깊은 것으로 안다. 새로운 독자는 어떻게 모집하면 좋을까.

김 - 이 시대의 신문이나 잡지의 모범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 된다. 경쟁지에 비해 너무 무거운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하는데 개의치 마라. 진국이다.

장 - 종이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글이 생각났다. 중립을 표방하지만, 결국은 기사에서 기자의 목소리가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K - 호기심을 잃지 않기 바란다. 독자가 궁금해하는 걸 질문하고 그런 기사를 써달라.

윤 - 독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계속 하길 바란다.

정 - 독자 참여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도 환영한다.

전북 군산에서 온 채규정씨는 차 시간 때문에 일찍 헤어졌지만, 예전 독자편집위원 시절처럼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고등학생이던 독편위원은 대학 졸업반이 돼 있었고, 대학생이던 독편위원은 바라던 기자가 됐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은 건 에 대한 관심이다. 함께하지 못한 다른 독자편집위원들의 마음도 이러할까. 꾸준한 발걸음으로 묵직하게 일상을 지켜온 이들이 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예전 독자편집위원님들, 미래의 독자편집위원님들, 은밀하고 위대하게 을 응원해주시라.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할 날이 많다. 참여와 소통으로 지면을 더욱 충만하게 해주시길. 선배들도 열심히 해주세요!

사회·정리 최우리 토요판팀 기자 ecowoori@hani.co.kr

독자편집위원회는 독자 모니터링단입니다. 2000년 9월(제326호, 2000년 9월21일치 첫 중계) 1기부터 지난해 9월(제979호, 2013년 9월20일치 마지막 중계) 25기까지 200여 명의 독편위원이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온라인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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