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가격·안전·신뢰, 식품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4대 요소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해외 식품 전문가들은 ‘신뢰’를 꼽는다. 식품은 우선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을 수만 있으면 소비자는 맛이 좀 없더라도 이해해줄 것이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식품 안전도 담보됨은 물론이다. 동의할 만한 이야기 아닌가.
전통식품까지 유린하는 속임수아무튼 식품에서 신뢰는 무척 중요한 덕목인데, 현실은 어떨까. 신뢰가 확보돼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믿을 수 없는 식품이 너무 많다. 우리가 잘 아는 식품일수록,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식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식생활 문제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보자. 경북 영덕 대게의 통통한 다리 살을 연상시키는 게맛살에 진짜 게살은 한 점도 들어 있지 않다. 잘 익은 바나나를 갈아 만든 듯한 바나나맛우유는 진짜 바나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뽀얀 생크림을 떠올리게 하는 커피크리머에는 우유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과자의 제왕’ 초코파이의 초콜릿은 진짜 초콜릿이 아니다. 피자의 핵심 원료인 치즈에는 주로 모조 치즈를 쓴다.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흑설탕은 백설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제당이다.
이런 식품들을 일본에서는 ‘고마카시(誤魔化し) 식품’이라 부른다. ‘속임수 식품’이라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속임수 식품의 망령은 요즘 전통식품까지 마구 유린하고 있다. 발효식품의 대명사인 간장을 보자. 발효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상한 간장들이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단무지가 유독 노랗고 아삭아삭한가. 자연의 작품이 아니다. 싱싱한 듯 불그스레하고 탱탱한 명란젓의 외관도 인공의 산물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전통주인 막걸리까지 맛이 변질돼 있다. 자극적인 단맛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신뢰가 결핍된 식품들 속에는 치명적인 위해 요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 속임수의 원흉이 대부분 해로운 식품첨가물이기 때문이다. 비만, 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 알레르기, 각종 난치병…. 속임수 식품들이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할 현대병이다. 요즘엔 각종 정신 질환도 이 대열에 합세해 있다.
‘생애의료비’라는 말이 있다. 국민 한 사람이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부터 1억원을 초과하기 시작했다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했다. 한 사람이 1억원이라면 4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4억원이다. 큰돈이다. 이 돈은 건강하기만 하면 지출할 필요가 없는 돈이다. 건강하지 못해 생기는 다른 손실까지 합치면 그 금액은 더 커진다. 새삼 ‘건강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생애의료비 1억원, 가구당 4억원아울러 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식생활의 중요성’이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싸구려 식품을 즐겨 이용한다고? 큰 오해다. 머잖아 의료비라는 목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올바른 식생활은 이 시대의 가장 저렴한 웰빙 비법이다. 그 첫 단추는 신뢰가 확보된 식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당장은 비용이 더 드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비용을 줄여준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음식에서 신뢰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다.
안병수 후델식품건건강연구소 소장* 안병수 후델식품건강연구소 소장은 조용하게 3년간 한 페이지 칼럼을 지켰습니다. 제600호(2006년 3월14일치)부터 제750호(2009년 3월6일치)까지 숫자가 맞아떨어지는 깔끔한 3년 연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 만한 제과회사를 다니다가 과자의 비밀을 폭로하는 책을 냈습니다. ‘이×돈의 먹거리 X파일’의 품격 있는 원조라고나 할까요, 3년간 먹거리에 대한 거의 모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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