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창간 독자들께는 특히 애틋한 정을 느낍니다. 스무 해 전, 투박하지만 순수한 의 열정을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준 분들이었습니다.
인간 삶은 인연의 축적 과정이라고 합니다. 오묘한 인연의 끈 위에서 사람들은 소통하고 연대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의 바탕도, 일상에선 잊고 사는 그 인연이 아닌가요. 의 성장과 작은 성취도 창간 취지와 독자들의 소망이 만나 이룬 아름다운 결실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잠깐, 을 제호로 결정한 과정의 비화를 떠올립니다. 제호는 고심과 고뇌의 결단이었습니다. 제호는 창간 정신의 ‘상징’이자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창간팀 내부의 의견은 물론 사내 직원들의 아이디어, 1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독자들의 제안을 모았지만 ‘이거다!’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제호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한겨레’를 앞뒤에 두고 ‘시사’ ‘주간’ ‘포럼’ 따위를 붙인 도식적인 제호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편집장의 머릿속에 맴도는 숫자가 있었습니다. ‘21’이 그것입니다.
‘21’엔 21세기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잉태되고 있는, 그러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래의 모순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작은 창문으로서의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21’에 응축된 셈이지요.
의 파격적인 시도는 시사지 시장에 충격을 던진 것이 사실입니다. 막내 은 시사주간지의 ‘그릇’과 내용물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요즘 일반화된 판형, 전문디자이너에 의한 편집 등은 ‘위험한 시도’였습니다. 금기를 깨는 데 주저하지 않았지요. 시사지의 주요 ‘먹거리’인 ‘정치’를 표지이야기에서 배제한 것도 모험적이었습니다. 동업자이자 ‘초권력’인 의 치부를 해부한 것도, 먼 훗날의 문제를 내다본 ‘국민연금 재정의 파탄 위험성’을 10년 이상 앞서 제기한 것도 창간 첫해의 작은 성과들입니다.
창간 이후 스무 해를 보냈지만 살 만한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상은 거꾸로 내닫고 있습니다. 징후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상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순리는 짓밟힙니다. 염치없는 세상입니다. ‘작은 산술’에 탐닉하는 옹졸한 정치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경쟁의 감옥으로 내모는 교육은 창의성의 싹을 싹둑 잘라내고 있습니다. ‘거짓’을 전하는 데 익숙한 언론은 부끄러움을 잊은 지 오랩니다. 경제, 삶의 터전이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는 위험한 신호들입니다.
이 존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을 기원합니다.
고영재 초대 편집장
* 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만리재에서’부터 읽느냐 ‘노 땡큐!’부터 읽느냐. 제1호에는 당시 김중배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의 창간사가 실리고 제2호부터 편집장의 칼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만리재에서’가 처음 만난 짝은 ‘고영재’. 고 전 편집장은 1994년 3월부터 1995년 3월까지 초대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퇴사 뒤 경향신문사 사장을 지냈고 지난해 7월부터 한겨레신문사 시민편집인실에서 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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