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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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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은퇴하고 나서 해봐요”

바뀐 유니폼 입고 새 전동카트 시동 걸고 ‘야쿠르트 아줌마’로 나서다
등록 2014-03-20 15:17 수정 2020-05-03 04:27
야쿠르트 아줌마 정은순(47·왼쪽)씨와 정은주(39) 기자가 지난 3월11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1천 개 정도의 발효유를 배달하고 판매했다.

야쿠르트 아줌마 정은순(47·왼쪽)씨와 정은주(39) 기자가 지난 3월11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1천 개 정도의 발효유를 배달하고 판매했다.

머릿속에서 가격이 마구 엉켰다. ‘야쿠르트 150원, 에이스 350원, 슈퍼100 600원, R&B 1200원, 윌 1300원, 쿠퍼스 2천원….’ 비슷비슷한 발효유 32품목의 가격을 벼락치기로 외우는데 고객이 다가왔다. “야쿠르트 15개, 에이스 15개, 윌 5개 주세요.” 비닐봉지에 담으면서도 나는 덧셈·곱셈이 되지 않았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비닐봉지를 들고는 머뭇거리는데 고객이 1만4천원을 건넸다. ‘계산이 맞나’ 다시 머리를 굴리는데 고객은 저만치 가버렸다. 아무튼 ‘야쿠르트 아줌마’로 뛰어들어 나 홀로 올린 첫 매출이었다.

주택이 천국이라면 빌라 5층은 지옥

지난 3월11일 아침 8시30분 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국야쿠르트 구의점으로 출근했다. 경력 2년차 야쿠르트 아줌마 정은순(47)씨가 나를 맞았다. 오늘 하루 야쿠르트 배달과 판매를 함께할 ‘여사님’이다. 여사님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부르는 호칭이다. “내 여동생이랑 이름이 똑같네요.” 여사님이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긴장했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정 여사님이 판매할 발효유를 전동카트에 싣는 동안 나는 탈의실에서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44년 만에 완전히 바뀌어 지난 2월 언론에 보도됐던 그 옷이다. 새 유니폼은 옅은 베이지색의 윗옷과 바지를 기본으로 했다. 그 위에 산뜻한 핑크와 주황색을 섞은 조끼, 패딩점퍼를 덧입었다. 젊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특히 패딩점퍼에는 작은 야쿠르트 병이 수백 개 그려져 있었다.

새 유니폼을 입고 나오자 정 여사님이 새 전동카트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이 전동카트 또한 회사가 도입하려는 신형 기기다. 야쿠르트를 배달·판매할 때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가장 힘든 일이 운반이었다. 발효유 1천여 개를 담은 손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오가다보면 팔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눈이라도 오면 언덕길은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겨울 매출이 여름의 3분의 2에 그치고 겨울에 사표를 내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많은 이유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회사가 지난해 손수레를 전동모터를 장착한 카트로 교체했다. 올해는 더 업그레이드한다. 전동차에 냉·온장고를 더한 신형 전동카트를 선보인 것이다. 새로운 전동카트를 정 여사님이 지난 2월부터 시범 운행 중이다.

정 여사님이 전동카트 운행을 시작하자 나는 뛰어야 했다. 운행 속도가 제법 나오기 때문이다. “신형 전동카트 덕에 배달 시간이 30~40분 단축됐어요.” 보행자들의 시선이 마구 꽂혔다. 야쿠르트 전동카트도 신기한데 그 옆에서 달리는 야쿠르트 아줌마라니 그럴 만했다. 나는 눈길을 피하는데 여사님은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자양동 뒷골목을 한참 달리던 전동카트가 오전 9시4분 주택가에서 멈췄다. 야쿠르트 배달이 시작됐다. 정 여사님이 냉장고를 열어 여러 발효유를 꺼내 투명 가방에 담았다. 다가구주택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 집집마다 돌렸다. “주택이 ‘천국’이라면 빌라 5층은 ‘지옥’이죠.” 실제 다세대주택을 많이 맡은 야쿠르트 아줌마는 무릎 통증을 호소한다.

연이틀 같은 제조일자면 항의 들어와

배달 원칙은 간단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매일이든 매주든 고객이 원하는 방식대로 배달합니다. 발효유가 밀려서 며칠 빼달라고 하면 그렇게도 하고요.” 배달받으면 더 싸냐고 내가 물었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더 비싸야 하지 않나요?” 맞는 말이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야쿠르트 아줌마의 수익률은 평균 25%다. 1천원짜리를 팔면 250원이 남는다는 얘기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객이 찾아와 “야쿠르트 1천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한다. 야쿠르트 단가가 150원이니까 6개면 900원, 7개면 1050원이다. 6개를 주고 100원을 거슬러주는 게 맞는 계산이지만 고객의 속뜻은 그게 아니다. 야쿠르트 7개를 1천원에 달라는 말이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50원을 포기하고 7개를 준다고 하자. 그러면 3천원을 내밀며 21개를 달라고 요구한다. 다시 수익이 700원에서 550원으로 뚝 떨어진다.

나도 그런 고객을 만났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발효유를 3100원어치 샀다. “3천원 주면 되겠네.” 당당한 태도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50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을 지갑에서 쏟으며 내 손에 올려주었다. 딱 3100원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100원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100원을 내 손에서 재빨리 빼가며 말했다. “싫어. 절대 아냐.”

다가구주택과 상가 배달을 끝내고 자양동 현대아파트로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를 쳇바퀴 돌듯 돌며 배달했다. 한 단지를 다 끝내고 다음 단지로 가면 편할 텐데 왜 그럴까. “일찍 배달해달라는 고객이 단지마다 있으니까요. 그 집부터 먼저 배달하고 다른 집은 나중에 가야죠.” 어떤 고객은 제조일자에도 예민하다. 같은 제조일자인 제품이 연이틀 들어가면 항의한다.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았더라도 말이다. “새 발효유를 아침마다 받아오지만 전날 재고도 일부 섞여 있어요. 냉장고 카트에 들어 있었으니까 신선합니다. 그래도 고객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신선함’은 야쿠르트 아줌마의 생명이다. 1971년 한국야쿠르트가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배달하고 영업하는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까닭이다. 당시만 해도 냉장고가 있는 집이 드물었고 유산균은 저온 관리가 필수였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유통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야쿠르트 아줌마의 방문판매였다. 47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1만3천 명이 활동한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하루에 평균 550개의 발효유 제품을 판다. 금액으로 따지면 30만원이다. 대형마트에서 점포당 발효유의 평균 매출액은 214만원. 야쿠르트 아줌마 7명이 대형마트 1개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발효유 분야에서 한국야쿠르트가 점유율 약 50%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빌딩보다 재래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이유

시대의 변화에도 발맞추고 있다. 요즘엔 소액결제 시스템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들고 다니며 결제하고 판매 실태를 분석한다. 정기 교육을 받아 기능성 발효유와 건강기능식품을 전문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긍정적 변화만 있는 게 아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자꾸 늘어가서다. 보안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 여사님이 배달하는 자양동 현대아파트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다만 지역 주민들이 여사님을 ‘내부인’으로 인정해 출입카드를 내줬다. 하지만 초고층 빌딩이나 최고급 주상복합 가운데에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이 꽤 많다. 그래서 서울보다 지방, 빌딩보다 재래시장에서 높은 매출을 올린다. 지난해 매출 2억5천만원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김희정(41)씨의 활동 무대도 과메기와 대게로 유명한 경북 포항 죽도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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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정 여사님은 주의했다. 배달할 층을 한꺼번에 다 눌렀다가는 관리사무소로 민원이 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이다. 정 여사님은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절반씩 층을 눌렀다. 문이 열리면 3초 안에 후다닥 갔다왔다. 주민이 함께 타면 여사님이 먼저 층을 누르지 않았다. 예컨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주민이 6층을 누르면 여사님은 6층 이상만 눌렀다. 6층 이하는 나중에 찾아가는 것이다.

정 여사님이 아파트 출입구를 청소하는 아줌마와 다정하게 인사하며 발효유를 건넸다. “출출할 때 하나 먹으면 속이 든든해요.” 청소 아줌마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천원짜리를 꺼내며 말했다. “번거롭게 돈을 왜 매일 내세요?” 내가 물었다. “쌓이면 목돈이 되잖아요. 부담스러워서 먹기 싫어져요.” 정 여사님이 거들었다. “수금이 어렵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바빠서, 깜박 잊고 결제가 늦어질 때가 있지만 결국 다 내요.” 그러나 독촉은 늘 조심스럽다. 고객이 배달을 확 끊어버릴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나도 ‘상습 연체자’였다. 제때 신문값·우윳값을 내지 않고 살았다. 귀찮아서 배달을 중단하기도 했다. 별다른 의식 없이 ‘갑질’을 해온 셈이다.

“평소 집에서 점심을 먹어요. 점심값도 아끼고 몸도 잠시 쉴 수 있으니까요.” 100여 가구의 배달이 끝난 뒤 정 여사님이 말했다. 여사님의 집은 일터와 가깝다. 자전거로 10분 거리. 아쿠르트 아줌마들 대부분이 그렇다. 나도 아랫목이 그리웠다. 따뜻한 봄날인데도 손발이 시렸다. 몇 시간 뛰어다녔더니 발뒤꿈치도 아렸다. 하지만 점심을 후딱 먹고 거리 판매에 나섰다.

마트와 학교, 은행이 만나는 사거리에 전동카트를 세워놓고 정 여사님은 모자와 옷을 가다듬었다. “고객들은 모자를 보고 찾아와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간판이자 광고판인 셈이다. 정말로 고객이 금세 모여들었다. 나는 발효유를 세어 봉투에 담고 여사님은 돈을 계산해 받았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기다리지 않고 제품을 살 수 있으니까 고객이 더 몰려왔다. 전동카트를 가득 채웠던 발효유가 팍팍 줄었다. 돈가방은 불룩해졌다. 재밌고 신났다.

“정년이 없어요”

오후 3시가 넘자 일부 발효유가 동났다. “혼자 팔 수 있죠? 더 가지러 지점에 다녀올게요.” 질문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정 여사님은 가격을 쭉 일러주고는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고객은 꾸역꾸역 밀려드는데 나는 버벅댔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오늘 첫날이에요.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다행히 고객들이 짜증 내지 않았다. 점차 내 손에 장사가 익어갔다. 이날 매출액은 평소보다 20% 늘어난 38만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정 여사님이 내게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우리는 정년이 없어요. 70대 여사님도 많아요. (기자) 은퇴하고 나서 해봐요.” 노후 대책을 마련한 듯 마음이 든든해졌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월평균 수입은 170만원이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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