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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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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 죽지 마라, 괴로워도 억울해도”

SNS로 본 최병승·천의봉의 296일
등록 2013-08-14 10:40 수정 2020-05-03 04:27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296일 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노트 296권은 채울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땅의 노동자로 돌아온 뒤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겹겹의 언어를 쟁인 채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은 4월 말(제960호 ‘고공생태보고서’) 철탑에 올라 최병승·천의봉 편집위원의 ‘말’과 만났습니다. 고공농성 200일 된 시점이었습니다. 200~296일 사이의 말들을 트위터(최병승)와 페이스북(천의봉)에서 골랐습니다. 하늘을 노트 삼아 쓴 ‘고공일기’이자, 땅을 향한 ‘고공의 발언’입니다. 철탑에서 내려오기 직전까지 그들은 세상과 수없이 대화했고, 아픔과 한없이 연대했으며,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했습니다.</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최병승 5월3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00일차.</font> 첫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었다.

어젯밤 비 와서 걱정했는데 맑아서 다행이다. 200일 빠샤! 100일 안에 승리하고 내려가자.

 

최병승 5월8일 <font color="#008ABD">현대차 204일차.</font> 하늘 길동무를 잃는 건 좋은 일이다. 한상균·복기성(쌍용자동차 송전탑 171일 고공농성) 동지는 너무너무 슬프고 원통하겠지만 난 기쁘고 좋다. 사람은 땅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날개가 없다. 많은 동지가 쌍용차 노동자들 투쟁에 함께하길 기원한다. 두 동지가 덜 원통하게.

 

최병승 제공

최병승 제공

최병승 5월24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21일차.</font> 담벼락에 핀 장미. 사무장이 “며칠 전에 핀 거예요. 말했잖아요” 이리 얘기한다. 꽃 피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워서일까. 이제 땅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예전엔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났는데. ❶

 

최병승 6월4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32일차.</font> 아 더워 엄청. 오늘 날씨는 장난이 아니다. 여름과 전쟁. 한 선배가 전화해서 이제 내려와서 술 먹자고 화를 냈다, 미안하다고 했다, 울었다, 욕했다, 그러다 전화를 끊었다.

 

최병승 6월23일<font color="#008ABD"> 현차비 251일차.</font> 300일 되려면 50일도 안 남았네. 제기랄. 오늘이 금년에 슈퍼문을 보는 날이라고 해서 비도 그치고 달이 떠서 쳐다본다. 소원도 빌었다. 달님이 가까우니 잘 들으셨겠지! 약발을 기대해본다.

 

최병승 6월26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53일차.</font> 함께 일했던 작업장의 오늘입니다. ㅎㅎ 제가 일했던 라인입니다. 변한 게 없네요. 정겹습니다. 9년이 지나도 얼굴 보자며 사진 한 장 보내라는 친구가 있는 공장에서 저도 저 차를 조립하고 싶습니다. ❷

 

최병승 제공

최병승 제공

최병승 7월2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60일차.</font>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친다. 잠을 잘 수가 없어. 웬만하면 자는데 오늘 비는 세네. 이 비를 뚫고 서울 상경투쟁 가는 지회 조합원들이 무탈히 내려올 수 있게 모두 기원해주세요.

 

최병승 7월15일<font color="#008ABD"> 현차비 273일차.</font> 박정식 동지는 제가 대법 판결받고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제가 아산 가서 떠들었습니다. 조합에 가입하라고. 그래서 가입하고 투쟁한 동지가 오늘 저세상에 갔습니다. 저 때문에 그놈의 대법 판결 때문에. 죽어서는 차별받지 말기를. 꼭꼭.

 

<font color="#C21A8D">천의봉 7월16일.</font>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외로워도 슬퍼도 죽지 마라/ 괴로워도 억울해도 죽지 마라// 시위하다 맞아 죽지도 말고/ 굶어 죽거나 불타 죽지도 말고/ 가난한 자는 죽을 자격도 없다// 가난한 자는 투신해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가난한 자는 분신해도/ 아주 차가운 눈빛 하나// 가난한 자의 생명가치는 싸다(박노해 시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중)

최병승 7월18일 현차비 276일차. 무엇이 겁나는 걸까요. 저 많은 돈을 들여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말입니다. 떳떳하면 만나서 얘기하면 될 텐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또 정문이 컨테이너로 막혔습니다. ❸

 

최병승 7월22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80일차.</font> 아침에 언론기사를 검색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해본다. 어째야 하나! 현대차 불법에 눈감는 저들에게 어찌하면 현대차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쓰게 만들 수 있을까? 현대차 이렇게 높은 벽인가?

 

최병승 7월26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84일차.</font> 잠이 안 와 (비정규직을 주인공으로 한 윤태호 작가 만화) 밀린 걸 보려고 찾았더니 이런, 연재가 마무리라니. 결론도 계약 해지로. 아~ 미생이 이겨야 우리도 이긴다, 였는데. 이런 젠장^^ 작가에게 항의를 하든지 해야지.

 

최병승 7월28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86일차.</font> 멀리 있는 아파트를 보면 드는 생각. 사람이 살기 위해 공장이 생겼을까, 공장을 돌리기 위해 사람이 살까. 북구와 동구 해안선을 따라 공장이 있고, 공장 앞에 사람이 산다. 누구를 위한 도시일까.

 

최병승 7월29일<font color="#008ABD"> 현차비 286일차.</font> 지도부가 연행됐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항의집회라도 해야 할 텐데. 동지의 안위를 확인해야 할 텐데. 다친 몸으로 수배라니.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 안타깝다.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하자.

 

최병승 7월31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89일차.</font> 조금 전 대학생 한 분이 서울서 지지방문 왔다가 갔다는 문자를 봤다. 인사도 하지 못해서일까? 그의 뒷모습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 그에게 이곳 철탑은 어떤 의미일까? 갑자기 묻고 싶다. ❹

 

최병승 8월5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93일차.</font> 300일 가까워지자 언론에서 관심을 보인다. 난 새장 속 새도 아니고 동물원 원숭이도 아닌데 무슨 기념일 사진 기록을 남기는 것처럼 야단이다. 왜 그분들은 현대차로 인해 10년을 싸울 수밖에 없는 원인을 심층 분석하지 않을까.

 

최병승 8월5일 <font color="#008ABD">현차비 293일차.</font> 지회장은 수배 중이라 공장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수석(부지회장)은 구속되어 유치장에 있고, 사무장은 수배 상태로 나와 함께 농성 중이다. 해고자는 생계로 힘들고, 조합원도 지쳐간다. 300일이 된들, 1년이 된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답답다.

 

<font color="#C21A8D">천의봉 8월7일.</font> 내일 농성을 마무리하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오래 농성을 했고, 두 사람 모두 몸과 마음도 지쳤습니다. 저희들 건강은 아직 체력적으로 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파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후 남아 있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내려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조건과 지회 상황을 봤을 때 저희 결정이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께 죄송합니다.

 

최병승 8월8일<font color="#008ABD"> 현차비 296일차. </font>철탑에서 마지막 아침 이빨을 닦고 천막을 개려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정들어서 그런 건가? 또 포기해버린 내가 안쓰러워 그런 걸까? 하루가 길 것 같다. 오늘 하루가 일찍 끝나길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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