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6년 전 박은 대못을 뽑아라

2026년 8월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의 빈소가 설치돼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광화문광장에서 계속 투쟁해달라.’
2026년 8월11일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이하 피해자연대) 대표가 숨을 거뒀다. 향년 69. 평소 대구에 살던 서 대표는 기흉이 발생해 서울대병원 응급센터를 찾았으나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피해자연대는 피해자를 위한 투쟁에 일생을 바친 서 대표의 유지에 따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서 대표의 빈소를 차리고 8월25일 기준 13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8월25일 찾은 서 대표의 빈소에는 영정 사진과 함께 생전 그가 타던 전동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빈소 설치를 마친 김현수 피해자연대 사무처장이 손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의자랑 장비 설치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려요. 피해자연대 회원들과 4대 종단(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연대 시민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날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 구슬땀이 맺힐 만큼 무더웠다. 특히 김현수 처장은 방광암 수술을 세 차례 받은데다 폐암까지 앓고 있다. 투병 생활 탓인지 한때 90㎏에 달했던 체중은 70㎏ 아래로 떨어졌다. 빈소를 살피던 김연수(28)씨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어린 시절부터 기흉을 앓고 있다. 몸이 성치 않은 피해자들이 땡볕 아래서 빈소를 지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특정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폐질환 등을 앓게 된 사건이다. 2011년 급성호흡부전 환자가 잇달아 병원에 입원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자 같은 해 8월31일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역학조사 중간 결과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발표했다. 11월11일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한 강제 수거 명령과 함께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종합포털을 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한 사망자는 서영철 대표를 포함해 모두 1958명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상 피해 인정을 받은 사망자는 1422명에 이른다. 살균제에 노출된 사람은 약 894만 명, 이 가운데 건강에 피해를 본 사람은 약 95만 명으로 추산된다. 수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낳은 사건이 ‘참사’로 인정받기까지 15년이 걸렸다. 2025년 12월 이재명 정부는 이 사건을 ‘참사’로 명확히 규정하고, 기존 피해구제체계를 국가 주도 배상체계로 전환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말한다.
2017년 2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지원 방안을 담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이 제정됐다. 이 법안으로 피해자들은 요양급여와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간병비, 특별유족조위금 및 특별장의비 등 구제급여를 받게 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출범해 진상규명 조사를 했다. 사참위는 2020년 12월 공식 활동을 종료했다.
피해자들은 당시 사참위의 3년 활동으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규모를 보여주는 데 급급해 살균제 판매 업체와 정부의 대응 적절성에 대한 진상 조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후 사참위 활동 기간은 1년6개월 연장됐다. 하지만 연장된 사참위 활동은 세월호 참사 조사에 집중됐을 뿐, 가습기살균체 참사 진상규명은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사참위 조사 기간 연장과 권한 강화를 담은 개정법 처리가 가시화되던 2020년 12월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조사를 지휘했던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류이 피해자연대 장례위원장은 “당시 세월호 쪽에서 조사관 30명을 요구했는데, 국회가 법 개정 과정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쪽이 조사관을 증원하지 않는 대신 가습기살균제 조사관들을 세월호 쪽으로 보냈고, 이후 진상규명이 끝났다고 선언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와 한정애 당시 환경부 장관이 ‘참사 종료’를 선언하면서 고위공직자 30여 명에 대한 조사와 법적 서류 100여 명 분량의 핵심 자료가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 그대로 묻혔다”며 “조사 자료를 다시 이어받아 추가 진상조사를 완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4년 4월22일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가운데)가 환경단체 회원 등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1853번째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죽음 기자회견’을 마친 뒤 상여를 멘 채 건물 주변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재판도 피해자들의 애를 태운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주요 성분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에스케이(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이 주로 제조·판매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제조·판매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다.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2016년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다만 2024년 12월 대법원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성분이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를 공동정범으로 본 원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현수 사무처장은 “기업이 주원료를 만들었음에도 파기환송 판결에서 ‘공동정범이 아닐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나온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형사범 면책이나 공소시효 뒤에 숨지 말고 명확한 가해 책임과 국가의 안전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2026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개정안이 피해 인정 범위와 배상 기준 등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구제법은 피해자를 피해자가 아니라 ‘구호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살인적인 화학약품의 피해자이므로 ‘구제’라는 개념을 ‘배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기 특조위 설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피해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7일째인 8월19일 김 장관은 광화문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피해자 단체를 만나 “더 속도를 내서 국가가 책임 있는 절차에 따라 조속하게 배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결과적으로 살균제 화학물질과 제조 과정에 대한 책임이 밝혀졌고 국가 책임도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기 때문에 진실을 추가적으로 확인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김 장관과 피해자연대 사이에 논박이 벌어졌다. 류이 위원장은 “장관이라는 사람이 사참위 백서나 종합보고서를 제대로 안 읽어봤다고 했다”며 “정부와 관료 체제가 재벌 대기업과 유착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한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참위 부위원장을 지낸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2기 특조위에 대해 조심스러운 의견을 냈다. 그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특조위는 직접 수사권이 없어 검찰 수사나 특검을 의뢰해야 하는데, 상당수 사건이 공소시효가 지났고 기업과 정부의 법적·형사적 책임을 기소로 연결하기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여야가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되는 특별법 기반 민간기구라 정치적으로 분열되기도 쉽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참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는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피해자가 명확히 특정되지만, 가습기살균제는 전국 단위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용 기간, 기저 질환 유무 등 변수가 많았다”며 “초기에 피해자를 등급별로 분류하다보니 해결이 전반적으로 난항을 겪게 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최 소장은 “사참위는 피해 규모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도출하고, 환경부 등 정부 부처의 행정상 잘못과 과실을 입증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데 주요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에도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시 사참위의 문제는 책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책임자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면 관련 공무원과 관계자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면서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해진다”며 “당시 어느 부처의 어떤 공무원이 잘못했고, 어떤 제도에 결함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이 발생했는지 등 진상규명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는 국회 청문회가 오히려 실효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광화문광장 외에도 서울 곳곳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연대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8월24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SK·애경·이마트 등에 대한 형사재판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다음날인 25일에는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라브 제인 전 옥시 사장에 대한 경찰 수사를 요구했다.
피해자연대 쪽은 광화문광장 농성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지는 10월8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둘러싼 논의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진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예용 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가 책임’이라고 말했는데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2026년 8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의 빈소가 설치돼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네팔 르포] “누나·매형·조카 다 죽었어요…3살 막내라도 꼭 살아있기를” [네팔 르포] “누나·매형·조카 다 죽었어요…3살 막내라도 꼭 살아있기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829/53_17879996436553_20260829500533.jpg)
[네팔 르포] “누나·매형·조카 다 죽었어요…3살 막내라도 꼭 살아있기를”

제주서 실종자 또 숨진 채 발견…낚시도구 챙겨 나간 20대 남성

논란의 기초연금 개편안…저소득층 5만원 더, 기존 수급자도 감액 가능
![[단독] 반구대병원 “환자 85.7% 전원 계획”…‘폐쇄병동 돌려막기’ 우려 [단독] 반구대병원 “환자 85.7% 전원 계획”…‘폐쇄병동 돌려막기’ 우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828/53_17878837463927_20260828501050.jpg)
[단독] 반구대병원 “환자 85.7% 전원 계획”…‘폐쇄병동 돌려막기’ 우려

100명 고립 수력발전소 터널에 한국인 실종자도? 외교부 “파악 중”

“매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잠길 정도 녹아”…아시아 빙하 9만5천개 ‘시한폭탄’

‘김정은’ ‘대한민국’ ‘남친’, 북한 스마트폰에 입력했더니…결과는?

12년 전, 이미 네팔 ‘빙하 홍수’ 내다본 EBS…260만뷰 폭발

“690g 이른둥이 진료비 2억원 넘는데…국민 도움 덕분”
‘이 대통령 지지’ 시나위 신대철에 “양아치가 양아치를”…대법 “모욕죄 아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