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팠다, 일상이 무너졌다

시각장애를 포함한 소아희귀질환을 가진 유상준(12), 유지민(10) 남매를 키우는 유형준(41)씨가 2026년 8월4일 자택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장기투병 아동과 가족의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2026년 8월4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계단을 내려가 반지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방 하나가 딸린 집 거실에서 유형준(41)씨와 아들 상준(12), 딸 지민(10)이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밝은 표정의 두 아이는 거실에 엎드려 있었다. 팔로 몸을 지탱하며 집 안을 이동했다. 두 아이는 모 원인을 찾지 못한 진행성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시각장애와 뇌병변·지체장애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이 원인 모를 질환으로 누군가의 부축이나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기 어렵다. 두 아이가 손으로 짚고 이동하는 바닥과 벽에는 여름이면 습한 날씨 탓에 곰팡이가 반복해서 생긴다. 보일러 문제로 바닥 난방도 잘 안 된다. 겨울이면 전기장판으로 바닥을 데운다.
아버지 형준씨는 두 아이의 치료와 돌봄을 감당하며 9년을 보냈다. 공방을 운영하는 그가 치료비를 감당하면서 구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방 한쪽 벽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상자가 세워져 있었다. 형준씨는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언제든 이사하려고 마음먹다보니 침대를 3년째 풀지 못했다”고 했다.
상준·지민이 가족처럼 아이의 투병이 몇 달에서 몇 년으로 길어지면 가족의 삶은 뿌리째 흔들린다. 한겨레21은 아동이 장기 투병 중인 세 가정을 취재했다. 모두 복지 제도가 메우지 못하는 빈틈이 큰 가정이다.
이들 가정은 공통적으로 보호자의 노동시간과 소득이 점점 줄고, 반대로 돌봄 시간은 늘어갔다. 치료비뿐 아니라 재활·교육·교통·주거 등 투병에 따라붙는 부담도 쌓였다. 하지만 장기투병 아동의 정확한 규모를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2025년 교육부가 1924명으로 집계한 ‘건강장애학생’ 개념이 있는데, 이는 만성질환으로 3개월 이상 계속 의료지원이 필요하고 학교생활과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어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을 뜻한다. 장기간 입퇴원이나 통원치료를 반복하면서도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장기투병 아동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준이가 다른 아이와 뭔가 다르다고 형준씨가 느낀 건 9년 전인 세 살 때였다. 상준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자주 넘어졌고 동공이 흔들렸다. 발음과 운동 기능도 점차 떨어졌다. 형준씨 부부는 원인을 찾기 위해 전국 병원을 돌았다. 당시 충북에 살았던 그는 소아치료로 유명하다는 서울과 충남의 대학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척수액 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 유전자·희귀질환 관련 검사를 모두 거쳤지만 상준이의 병명을 말해주는 곳은 없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희귀질환 전문의는 “희귀질환은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증상이 다르다”며 “증상이 어디까지 나타날지, 멈출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힘써보겠다고 했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봅시다.” 형준씨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형준씨는 “상준이가 아픈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하나로 정말 안 해본 게 없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2년 뒤 지민이가 태어났다. 지민이는 상준이와 달리 특별한 증상 없이 무럭무럭 커서 가족은 안도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하면서 상준이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역시 세 살 무렵이었다. 시력이 떨어졌고 걷지 못했다. 두 아이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나자 서울의 한 소아희귀질환 전문의는 형준씨에게 “(이 원인 모를 질환에) 아이의 이름을 따 상준·지민이병이라는 병명을 붙여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각장애를 포함한 소아 희귀 질환을 갖고 있는 유지민(10) 어린이가 2026년 8월4일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형준씨는 평일엔 일하고 주말에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아픈 두 아이를 돌보며 소진됐다. 2023년 결국 형준씨는 아이 둘을 데리고 아내와 헤어졌다.
홀로 두 아이를 돌보게 된 형준씨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아이들을 맹학교에 보내고 가게로 출근했다가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숙제 점검과 빨래, 청소, 설거지 등 밀린 집안일을 하기 바쁘다. 물리치료나 소근육 발달을 위한 치료도 해봤지만 일하면서 두 아이의 치료까지 챙기기는 역부족이다. 그는 “부부면 누군가 한 명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텐데 그럴 여력이 없다”며 “비슷한 상황을 겪는 부모와 교류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7년간 두 아이를 봐주는 70대 활동지원사가 친할머니처럼 아이들을 챙겨줘서다. 활동지원사는 정해진 활동지원 시간을 초과해도 형준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봐주고 음식도 만들어준다. 국가가 채우지 못한 복지 공백을 한 개인의 선의가 겨우 메우고 있는 셈이다.

시각장애를 포함한 소아 희귀 질환을 앓는 유상준, 유지민 남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공방 수입으로 아픈 아이 두 명을 키우기는 역부족이었다. 형준씨는 작은 공방에서 도자기와 차를 판매하며 한 달에 200만원 안팎을 번다. 단골손님이 없고 재고가 쌓이는 달엔 버티기 힘들다. 의료비가 매달 수십만원 들고, 두 아이의 활동지원서비스 본인부담금도 월 30만원가량 나간다.
정부 지원이 간절했다. 이에 한부모·차상위계층 지원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조건을 맞닥뜨렸다. ‘배기량 2000㏄가 넘는 차가 있으면 차 가격이 재산으로 인정돼 수급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준이다. 장애 정도가 심한 등록장애인이 사용하는 차량은 2500㏄까지 재산가액에서 제외하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여기에도 차량 연식이 10년 이상 또는 차량가액이 500만원 미만인 자동차라는 조건이 붙는다.

유형준씨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입구.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거동이 어려운 두 아이는 이동할 때 모두 휠체어를 타야 한다. 휠체어 두 대와 공방 물품까지 싣기 위해 형준씨는 카니발(2199㏄·디젤엔진 기준)을 소유하고 있었다. 결국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낡은 카니발을 팔아야 했다. “아이들이 휠체어를 타고 병원도, 학교도 가야 하잖아요. 휠체어 두 대에 아이 둘, 짐까지 싣기 위해 그 차를 택한 건데 지원이 안 된다니 이해가 안 갔어요.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예외가 전혀 없다는 식이었어요.”
소득 자료와 통장 명세를 제출하는 과정에서는 형준씨도 몰랐던 신탁자산이 문제로 떠올랐다. 7년 전 작은 투자회사에서 일할 때 형준씨 명의로 남아 있던 약 3억원 규모의 투자신탁이었다. 실제로는 형준씨가 아니라 회사의 자산이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형준씨 외 다른 직원들 명의도 빌렸다고 했다. 퇴사 과정에서 회사와 마찰이 생겨 혹시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관련 자료를 남겨뒀는데, 그 기록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형준씨는 그 돈을 실제로 받은 적도 쓴 적도 없다는 점을 행정복지센터에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신탁자산 기록이 완전히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답을 들었다.
그 뒤 형준씨는 정부의 복지 지원을 다시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이를 돌보고 일하면서 어렵게 각종 서류를 다 작성했는데 여러 번 문턱에 걸리다보니 다시 신청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복지 수급에 필요한 증명 책임을 당사자에게 과도하게 넘기는 것이 문제”라며 “전산상 재산으로 확인되면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재산이라는 사실까지 당사자가 소명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윤아, 아빠한테 와.”
아버지 김태훈(43)씨가 부르자 나윤(11)이가 천천히 걸어와 태훈씨 무릎에 앉았다. 8월3일 경기도 시흥의 집에서 만난 나윤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태훈씨가 자리를 옮기면 나윤이도 따라 움직였다. 태훈씨는 그런 딸을 ‘아빠 껌딱지’라고 했다.
나윤이는 영아기부터 두 차례 암을 겪었다.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망막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망막모세포종을 진단받았다. 3년 동안 치료받았고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후 5년 동안 추적관찰을 했다. 가족이 큰 고비를 넘었다고 생각할 무렵인 여덟 살 때 다시 암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뼈에 생기는 악성종양인 골육종이었다. 약 9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고 다리를 수술했다. 긴 재활을 거쳐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지금도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추적검사를 받는다.
암치료 뒤에도 재활과 발달치료가 이어졌다. 나윤이는 또래보다 언어와 인지 발달이 느렸고 자폐성 장애도 진단받았다. 긴 대화를 주고받기는 어렵지만 조금씩 표현하는 말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 물’처럼 단어를 나열했지만 이제는 “엄마 물 줘” “엄마 나가자”고 말한다. 태훈씨는 “발달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치료를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가족은 나윤이에게 맞는 언어·인지·행동치료를 받기 위해 시흥에서 안양까지 오간다. 나윤이와 잘 맞는 치료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거리가 멀어도 치료사를 따라다녔다. 시흥시는 월 일정액의 치료 바우처를 지원하지만 지역 안의 기관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제한이 있다. 태훈씨가 직장 때문에 데려다주기 힘든 날에는 어머니가 나윤이를 데리고 택시를 탄다. 시흥에서 인덕원까지 택시비만 편도 2만원이 넘는다. 인지·발달치료 비용이 월 200만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나윤이에게는 오빠와 동생이 있다. 태훈씨 부부와 세 자녀는 태훈씨의 외벌이 소득으로 생활한다. 산정특례(암 등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낮춰주는 제도)로 암치료비 부담은 줄었지만 병원비와 재활·발달치료비, 식비 등이 계속 나간다. 장애아동수당도 소득이 지급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로 받지 못한다. 태훈씨는 “통장을 보면 돈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이걸 또 어떻게 메꿔야 하나 싶다”고 했다.
나윤이에게 필요한 복지를 찾아 신청하는 것도 가족의 일이었다. 태훈씨의 기억에 나윤이가 태어난 뒤 가족의 형편을 지속해서 살피며 필요한 지원을 안내해준 사람은 없었다. 부부는 병원 간호사와 의료사회복지사, 다른 환아 부모에게 “무슨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하나씩 물어봐야 했다. “제가 알아보지 않는 이상 혜택이란 없어요.” 태훈씨가 말했다.
태훈씨 부부는 세 아이의 돌봄과 나윤이의 치료 일정을 챙기는 일로 이미 정신적으로 소진된 지 오래다. 나윤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나윤이가 오랫동안 식사의자에 앉아 지내야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등원한 지 두 시간 만에 “데려가달라”는 연락도 반복됐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의 장애아 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등하교와 학교생활을 돕는 데 활용하려 했지만 배정된 시간은 월 90시간이었다. 하루 6시간가량 학교에서 생활하는 나윤이에게는 한 달을 채우기 부족한 시간이었다. 태훈씨는 결국 돌보미를 이용하지 않고 아내와 번갈아 등하교를 맡고 있다.

골육종암과 망막모세포종을 진단 받은 김나윤(11) 어린이가 2026년 8월3일 경기 시흥시 자택에서 아버지 김태훈씨(43)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동안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나윤이가 2024년 골육종 치료를 시작하자 태훈씨는 약 1년 동안 육아휴직을 냈다. 항암치료와 다리 수술, 재활이 이어지는 동안 아빠와 딸은 거의 온종일 붙어 지냈다. 나윤이가 유독 태훈씨를 따르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복직한 뒤에도 태훈씨의 생활은 나윤이의 치료 일정에 맞춰졌다. 그는 2주씩 주간과 야간 근무를 번갈아 한다. 야간 근무는 저녁 8시30분부터 다음날 아침 8시30분까지 12시간이다. 퇴근 후 아이들을 챙기느라 쪽잠을 자기 일쑤다. 나윤이의 진료나 치료 일정이 있는 날에는 밤새워 일한 뒤 병원이나 치료센터로 향하기도 한다. 태훈씨는 “센터 가는 날은 그냥 안 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자주 뒤로 밀렸다. 가족여행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올해 처음으로 경주 여행을 계획해 숙소까지 알아봤지만 사정이 생겨 다시 미뤄졌다. 태훈씨는 언젠가는 다섯 식구가 함께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 박경현(34)씨의 딸 성연(8)이는 2025년 봄쯤 감기에 걸렸다 나아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살이 빠지고 체력이 떨어졌다. 여러 병원에 다니다 받은 혈액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됐다. 병원에서는 “응급상황이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백혈구 수치가 크게 올라간 상태였다. 2025년 7월26일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진단받았다.
그날부터 학교생활도 멈췄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였다. 병원학교(장기입원 등 치료로 학교에 갈 수 없는 학생을 위해 병원 안에 설치된 교육시설) 수업을 듣거나 온라인 학습 사이트로 출석을 대신했다. 경현씨는 병원에서도 매일 성연이의 수업과 문제집을 챙겼다. 2025년 7월부터 11개월 동안 성연이가 병원에 입원한 날을 세어보니 모두 185일이나 됐다.
집에는 성연이와 쌍둥이인 동생을 포함해 네 아이가 있다. 한부모인 경현씨가 성연이와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의 생활은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성연이가 치료받는 동안 방학에는 아이들을 경북 안동에 있는 부모에게 맡겼고, 평소에는 주변에 도움을 부탁했다.
간병을 온전히 맡아야 하다보니 경현씨의 일도 줄었다. 치과에서 일하던 그는 성연이가 아프기 전에는 한 달 230만원가량을 벌었다. 한부모가족 지원과 주거·교육 관련 지원을 더해 네 아이와 생활해왔다. 하지만 성연이가 입원하는 동안에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출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성연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돌봐야 하기에 하루 3시간씩 오전에만 일한다.
벌이가 불규칙하니 경제적 부담이 조금씩 늘어갔다. 치료비에 대비해 가입한 보험이 뜻밖의 복지 공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성연이가 백혈병을 진단받은 뒤 암진단비가 나온 것이다. 경현씨는 혼자 네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아껴 자신과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보험을 들어뒀다. 월 230만원의 소득 가운데 한 달 보험료로 약 30만원을 냈다.
그랬더니 2026년 초부터 경현씨가 받던 한부모 지원과 주거·교육급여 등 복지급여가 중단됐다. 가족의 의료급여도 중단됐고 현재는 치료 중인 성연이의 의료급여만 유지되고 있다. 당황한 경현씨는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보험금을 재산에 반영해 급여 자격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지원받으려면 보험금을 사용한 내역 등을 제출해 심사받아야 했다. 경현씨는 치료와 향후 재발 등에 대비하기 위한 돈임을 설명한 뒤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심사가 진행되는 사이 생활비는 계속 더 필요했다. 성연이가 입원한 뒤 경현씨의 노동소득은 거의 사라졌다. 직접적인 항암치료비는 의료보장으로 상당 부분 줄었지만 병원 생활에 필요한 식비와 교통비,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가 사용하는 일회용품 등의 지출이 매달 더해졌다. 2026년 초 주거급여 지급이 중단된 뒤에는 월세 25만원가량도 직접 내고 있다. 보험금이 빠르게 줄어들까 걱정스럽다. “보험금은 한 번 받으면 끝이잖아요. 나중에 혹시 재발하면 또 돈이 필요할 텐데 이 돈을 다 쓸 수도 없고, 가지고 있자니 지원금은 끊기고. 조금 막연하더라고요.” 경현씨가 말했다.
일시적 치료 보험금으로 인해 정부 지원 제도에서 제외되는 상황은 오랜 기간 제기돼온 복지 사각지대로 꼽힌다. 전은경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보험금이 나왔다고 의료급여를 끊으면 치료도 안 되고 생계도 안 된다”며 “이미 지출한 치료비뿐 아니라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도 고려해 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가정을 방문했던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아이가 중증질환·장애를 겪는 가정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다”며 “의료비뿐 아니라 생계와 돌봄, 교육까지 함께 무너지는데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기투병 가정이 필요한 복지를 직접 찾아야 하는 복지신청주의도 사각지대를 키웠다. 아이를 치료하고 돌보느라 시간과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소득과 재산 등 자격을 증명하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 신청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지우는 행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이 어려워 주민센터를 찾았는데 서류 작업이나 자격 입증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며 “국가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는 활용하고 수급자가 자격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과 행정 허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제도가 미처 채우지 못한 자리는 이렇게 세 가정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 나윤이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태훈씨는 울었다. 그 뒤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우리 가족이 그냥 밝고 좋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그 하나밖에 없어요.”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장기투병 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줄이려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는 당장 도움이 절실한 가정이 기다리기에는 더딘 경우가 많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세 가정에 작은 도움을 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소아암·소아중증질환 아동 정기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세 가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군의관 류옥하다씨가 신혼여행 등에 쓰려던 비용을 어려운 소아암·소아희귀질환 아동 가정에 기부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36-375397(사단법인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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