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천공항 노숙인 퇴거 조치, 관음증적 혐오 보도가 문제다

흥밋거리로 홈리스 소비해선 해결 어려워… 주거 현실과 부실한 지원 체계부터 살펴야
등록 2026-08-27 22:07 수정 2026-09-02 17:25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2026년 8월24일 오후 인천 영종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공항의 퇴거명령서가 붙여진 한 노숙인의 캐리어가 놓여 있다. 이곳은 여성 노숙인 안나가 주로 생활하던 공간이다. 안나는 7월 초 채널에이(A)의 노숙인 관련 뉴스 보도 뒤 공항공사로부터 퇴거명령서를 받고 공항에서 나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8월24일 오후 인천 영종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공항의 퇴거명령서가 붙여진 한 노숙인의 캐리어가 놓여 있다. 이곳은 여성 노숙인 안나가 주로 생활하던 공간이다. 안나는 7월 초 채널에이(A)의 노숙인 관련 뉴스 보도 뒤 공항공사로부터 퇴거명령서를 받고 공항에서 나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년 전 서울 용산역 구름다리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안팎의 벽은 투박하게 칠해져 있었고, 바닥은 온통 울퉁불퉁했다. 낮엔 좌판 노점이, 밤엔 상자로 집을 짓고 잠을 청하는 홈리스가 이곳에 있었다.

당시 처음으로 거리상담 활동에 나섰던 나는 이곳에서 세 홈리스를 만났다. 주름 가득한 얼굴로 자기 나이가 “이십 살”이라 말하던 미등록 지적장애인,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뒤 노동시장 최하층을 전전하다 거리로 떠밀린 나이 지긋한 노동자, 시사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던 아저씨.

구체적인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이들이 구름다리에 머물 수 있었던 데는 한 가지 공통된 조건이 있었다.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장소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2017년 말, “국내 최초의 호텔플렉스”가 문을 열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구름다리는 대형 호텔로 향하는 통로가 되었고, 호텔 개장 직후 배치된 경비들은 홈리스의 출입을 통제했다. 얼마 뒤 홈리스가 쫓겨난 자리엔 ‘맥주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그동안 만나오던 홈리스 세 명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인접 장소로 잠자리를 옮긴 두 사람과는 이후로도 관계가 이어졌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두 사람은 현재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 호텔 쪽 조치에 가장 비분강개했던 아저씨. 그에게 지원 연계는 물론 언론 인터뷰까지 제안했지만, 그는 “갈 수 있는 곳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인천국제공항이었다.

 

7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보도 행태

 

한동안 잊고 지낸 그를 다시 떠올린 건 2019년 6월 조선일보 기사 때문이었다. ‘노숙자의 새 성지 ‘인천공항’’ 제목의 해당 기사는 인천공항이 “노숙자들의 핫 플레이스”라며 공항에 체류 중인 홈리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씻는지 등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기자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기사 속 홈리스는 삶을 살아가는 주체라기보다 시종일관 관찰하고 구경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노숙자들의 생태계’ ‘무법자’ 같은 강렬한 언어와 수사가 동원되는데, 개중 최악은 홈리스를 판별하는 법을 알아냈다며 너스레를 떠는 대목이다. “가까이 갔을 때 코를 찌르는 체취가 난다면 거의 100%.”

그러나 홈리스의 신체와 일상을 강박적으로 훑던 기자의 시선은, 특정 지점 앞에서는 멈춰 선다. 기사는 홈리스에게 어떤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지, 인천의 지원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묻지 않는다. 국외 사례를 인용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사는 당시 홈리스가 급증한 미국 애틀랜타국제공항을 사례로 들며, 공항 출입을 제한하고 ‘노숙자 쉼터’를 늘려 홈리스 수를 줄이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미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공항 노숙자가 급증할 것”이라며 출입제한과 시설격리를 강조했다.

당시 현지 언론이 전한 애틀랜타공항의 현실은 이와 달랐다.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 등은 혹한과 대형 보호소 폐쇄를 홈리스의 공항 유입 배경으로 짚으면서, 출입제한이나 보호시설 침상 확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애틀랜타공항은 거리상담을 공식화하고 운영 시간을 확대했으며, 종합적인 홈리스 지원기관을 통해 홈리스를 지역사회 지원체계와 적극적으로 연결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조선일보의 ‘관음증’ 대상이 되지 못했다.

7년이 지난 현재, 같은 주제를 다룬 채널에이(A)의 보도에선 무엇이 달라졌을까. 2026년 7월9일 채널A는 인천공항을 “노숙자 아지트”로 규정하면서 욕설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등을 카메라로 담아 전면에 내세웠다. 매체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홈리스의 신체와 그 신체가 일으키는 불쾌감을 관음증의 시선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선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 보도가 단지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해당 보도 영상은 온라인에서 재가공되며 홈리스를 향한 혐오와 비난을 확산시켰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홈리스에 대한 퇴거 조치를 단행했다.

2026년 7월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1심 판결을 앞두고 열린 ‘오세훈 시장에 대한 단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2026년 7월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1심 판결을 앞두고 열린 ‘오세훈 시장에 대한 단죄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불편함VS불쾌감’ 대립보다 중요한 것

 

채널A의 보도 뒤 이어진 보도들은 대체로 ‘이용객 대 홈리스’ ‘노동자 대 홈리스’ 구도로 사안을 다루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용객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항을 이용할 권리가 있고,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홈리스는 필요한 보호와 복지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놓일 것이 아니라, 공공이 책임 있게 지원체계를 마련함으로써 함께 보장해야 할 권리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을 대립시키는 일이 아니라, 왜 이들이 공항에서 서로의 권리를 충돌시키는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묻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제기되기도 전에 사안을 둘러싼 서사가 이미 구성됐다는 점이다. 홈리스의 신체와 문제행동은 반복해서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 기저에 놓인 삶의 조건은 철저히 지워진다. 그 결과 만들어진 ‘권리 대 권리’의 구도에서 남는 건 무엇일까. 바로 ‘퇴거’와 ‘출입제지’다.

자극적인 보도로 여론이 악화하고 이용객과 노동자의 불편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퇴거와 출입제지가 가장 손쉬운 선택지임은 분명하다. 당장 눈앞의 홈리스를 치우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거와 단속으로 홈리스를 다른 장소로 밀어내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퇴거와 단속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2011년 코레일이 서울역 강제퇴거 조치를 단행했을 때도 홈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합실에서 밀려난 이들은 인접한 장소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는 다시 퇴거와 단속, 민원이 반복됐다. 2023년 동인천 북광장을 금주·금연 구역으로 지정해 단속에 나섰을 때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보건복지적 접근에 무게를 둔 지원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퇴거와 출입제지는 홈리스를 특정 장소에서 당장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지만, 홈리스 상태를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기승전 ‘시설 입소’라는 낡은 망령

 

인천공항 홈리스를 둘러싼 보도에서 반복되는 논리가 있다. 공항과 인천시가 시설 입소를 권유하고 있으나 홈리스가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대안이 이미 마련됐는데 당사자가 이를 거부해 문제가 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홈리스 보도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익숙한 관행이기도 하다. 문제는 언론이 이 논리를 검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홈리스에게 왜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지를 캐묻지만, 시설에 들어간 뒤의 삶이나 시설 입소를 선택할 수 없는 홈리스의 사정은 거의 조명되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시설 입소는 홈리스 이슈의 유일한 해법이 아니다. 하나의 선택지일 수는 있을지언정 모든 홈리스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은 결코 아니며,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보장하는 최종적인 대안도 아니다. 보건복지부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노숙인시설 입소자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입소자는 51%, 20년 이상 초장기입소자는 27.6%였다. 입구는 있어도 출구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설이 적절한 대안이라고,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언론이 시설 입소 외의 대안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분한 선택지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 입소만 강조되면, “인천시는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이 홈리스의 장기체류 공간이 된 이면에도 이 질문이 놓여 있다. 언론의 펜과 카메라가 기승전 ‘시설’이라는 낡은 망령을 좇을수록, 정작 해야 할 질문은 시야에서 멀어질 뿐이다. 물론 현안을 빠르게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복합적인 맥락을 살피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지가 논변이 될 수는 없다.

 

2026년 8월12일 홈리스행동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인 강제퇴거에 반대하기 위해 연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2026년 8월12일 홈리스행동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인 강제퇴거에 반대하기 위해 연 기자회견에서 안형진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탄광 속 카나리아’ 홈리스의 경고

 

과거 광부들은 탄광에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의 이상행동은 탄광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카나리아는 탄광 안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미리 감지해 알려주는 존재였던 셈이다. 카나리아의 이상행동에 시선을 빼앗기면, 정작 탄광의 위험은 놓치게 된다.

특정 장소에 홈리스가 밀집하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집다운 집’이 없는 사람들이 머물 공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자,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고이다. 나아가 공공장소가 어떤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시사하는 하나의 표지이기도 하다. 용산역 구름다리에서 보듯, 공공장소가 이윤과 결부된 공간으로 변모할수록 그곳에 머물던 사람은 또 다른 머물 장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관음증적 시선은 홈리스가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할 뿐, 왜 그들이 그곳에 머물고 밀려나는지는 따라가지 않는다.

이제는 ‘인천공항 노숙자’의 이런저런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그들을 공항으로 밀어낸 주거 현실과 부실한 지원체계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포기한다면, 노숙 현장에 나타나 카메라를 켜고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개인방송업자들과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지금 저널리즘이 향해야 할 곳은 홈리스의 신체가 아니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적었던 표현을 다시 꺼내오자면, “그러므로 부디, 시스템을 잊지 말자”.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