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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홍수’ 국제사회 대응, 익숙함과 결별하라

‘손실과 피해 기금’, 구조·구호에 조건 없이 써야… 복구 넘어 안전 크게 강화한 종합 대책을
등록 2026-09-03 22:50 수정 2026-09-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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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31일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한 남성이 대홍수로 부서진 집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8월31일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한 남성이 대홍수로 부서진 집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네팔 대홍수 재난 소식을 접하자 2주 전 국제학회에서 만난 네팔의 한 교수가 떠올랐다. 그는 30년 가까이 랑탕강 유역 빙하융해수의 수화학적 변화를 연구해온 학자다. 수십 년 동안 물을 채취해 분석하고 빙하 환경의 변화를 기록해온 사람에게, 불과 며칠 뒤 랑탕이 대재난의 현장이 됐다는 소식은 어떤 의미일까? 전자우편으로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더니, 본인은 카트만두에 있어 피해가 없다는 답장이 왔다. 안도했지만, 연구자가 무사하다고 해서 그가 평생 연구한 유역까지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2026년 8월26일 네팔 북부 랑탕∼라수와 지역을 덮친 대홍수는 국경 하천인 렌데콜라에서 보테코시강과 트리슐리강을 따라 약 100㎞의 계곡을 휩쓸며 티무레와 샤프루베시 등을 차례로 덮쳤고, 국경 건너 중국 지룽 검문소에도 피해를 줬다. 8월31일 보도 기준으로 네팔과 티베트에서 900명 넘게 숨지고 4700여 명이 실종됐으며, 적십자는 9만3천 명에게 긴급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을과 발전소, 교역시설이 파괴됐고 교량 32개와 약 40㎞의 도로가 사라졌다. 그러나 실종된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 대대로 살아온 터전과 문화, 2015년 대지진 뒤 간신히 재건한 삶, 이것들을 다시 잃은 충격은 사망자 수와 피해액으로 나타낼 수 없다.

 

빙하 후퇴·해빙은 ‘방아쇠’ 아닌 ‘준비 요인’

 

초기 보도는 이번 사건을 ‘빙하호 붕괴 홍수’(GLOF)라고 불렀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일은 조금 달랐다. 미국지질조사국은 빙하가 관여한 대규모 사면 붕괴가 규모 5.2에 해당하는 지진 신호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랑탕리룽산(해발 7234m)의 해발 약 5200m 지점에서 빙하가 무너져 1200m 아래로 떨어지면서 토석 사태로 바뀌었고, 이 토석이 물길을 막아 임시 호수인 언색호를 만들었다. 이 산사태 댐이 8월26일 터지고 8월28일 다시 터지면서 두 차례의 돌발홍수가 하류를 덮쳤다. 처음에는 빙하호가 없었고, 빙하 붕괴가 토석 사태로, 토석 사태가 산사태 댐으로, 댐 붕괴가 홍수로 이어진 연쇄재난이었다.

이 구분은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빙하호라면 수위를 낮추고 둑을 지키면 되지만, 산비탈에 매달린 빙하와 산사태 댐은 전혀 다른 감시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도 섣불리 단정할 일은 아니다. 2026년 초 학술지 ‘내추럴 해저즈’에 실린 연구는 1950년 이후 히말라야 빙하호 홍수의 원인을 재검토한 결과, 기온 상승과 발생 빈도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방아쇠는 며칠씩 이어진 폭우, 눈사태와 낙석, 지진 같은 국지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같은 연구는 빠른 탈빙하화와 가파른 지형이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5년 발표된 산사태 유발 쓰나미 317건의 검토 논문도 빙하 후퇴와 영구동토 해빙을 직접적인 ‘방아쇠’라기보다는 ‘준비 요인’(Preparatory Factor)으로 분류한다. 온난화가 재난의 직접적 원인은 아닐지라도, 대규모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지형적·환경적 조건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랑탕강 유역의 빙하는 2000~2023년에 앞선 1964~2000년보다 약 1.5배 빠르게 후퇴했고, 해발 4천m 이상 지역은 10년마다 약 0.3°C씩 기온이 올라갔다. 네팔의 그 교수가 한 30년 기록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곧바로 증명하지는 않지만, 히말라야의 조건이 재난 당일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온난화의 책임과 이번 사건의 원인은 구분해야 한다. 붕괴 전에 몬순 폭우가 이어졌는지, 기후위기가 붕괴 가능성과 규모를 얼마나 키웠는지는 후속 연구의 몫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원을 미룰 수는 없다. 원인 조사와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자격 구분하지 않는 무상 지원이어야

 

국가별로 온난화의 책임과 피해가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 보면 대응의 실마리가 잡힌다. 유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의 분석 방식을 빌려, 1750~2024년 국가별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을 2024년 인구로 나눈 값과, ‘INFORM 기후위험지수’(전세계 국가의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지진과 쓰나미를 제외한 기후 관련 자연재해만 분석 대상으로 한 지표)를 비교해봤다. 1명당 누적배출량이 적은 나라일수록 기후위험은 대체로 컸고, 두 변수의 순위상관계수는 -0.71이었다. 저소득국 다수가 ‘적게 배출하고 더 큰 위험을 지는’ 집단에 속했고, 네팔이 그 전형이다. 네팔이 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도 안 되지만, 온난화가 빠른 히말라야의 가파른 계곡에 마을과 도로, 발전소가 집중돼 있고, 위험에 대비하고 피해를 복구할 재정 능력은 제한적이다. 이 ‘기후 불평등’을 국제사회는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라는 별도의 정책 영역으로 다룬다.

2023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의 운영 방식이 합의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낼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번 네팔 참사에는 다른 질문이 따른다. ‘기금이 누구에게, 얼마나 빨리, 어떤 방식으로 전달돼야 하는가?’

기금은 무엇보다 인명구조와 긴급구호에 조건 없이 써야 한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복잡한 절차 없이 피해 주민에게 신속히 전달돼야 하며, 조사가 지원받을 자격을 가려내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대출은 재난 비용을 부채로 바꿔 피해국에 되돌리고, 보험은 위험이 클수록 비싸진다. 대응의 중심은 추가적인 무상 재원이어야 하며, 공동체가 흩어지는 일, 살던 곳과 인연이 끊기는 일 같은 비경제적 손실도 포함해야 한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원칙은 재난 뒤 기금 배분에도 적용돼야 한다.

 

조기경보체계, 노르웨이의 교훈

 

아울러 기금은 조기경보체계(Early Warning System) 구축을 도와야 한다. 이번 참사가 빙하호가 아니라 고봉의 기반암 붕괴에서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된 만큼, 수위를 낮추면 되는 빙하호와 달리 암반과 빙하를 감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1934년 노르웨이 타피오르에서는 150만㎥의 암반이 피오르로 떨어져 62m 높이의 파도를 일으켰고 42명이 숨졌다. 지금 그 일대 오크네스에서는 최대 5400만㎥의 불안정 사면을 센서로 상시 감시하고, 붕괴가 임박하면 휴대전화 경보와 사이렌으로 주민을 미리 대피시킨다. 2015년 노르웨이 영화 ‘더 웨이브’(원제 Bølgen)의 배경이 된 오크네스의 감시 방식은, 같은 기술을 적용한 다른 계곡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노르웨이 수자원에너지국 연구진이 2021년에 보고한 롬스달렌 계곡의 베슬레만넨 사례다. 연구진은 이 암반을 5년 동안 레이더로 관찰했다. 비가 올 때마다 이동이 빨라졌고, 그사이 적색경보와 대피령이 열여섯 차례 내려졌다. 열다섯 번은 결과적으로 헛경보였다. 그러나 열여섯 번째인 2019년 9월5일, 5만4천㎥의 암반이 예보대로 무너졌고 건물 피해는 없었다. 연구진은 반복된 대피에도 주민들이 체계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로 소통을 꼽는다. 적색경보는 ‘산사태가 일어난다’는 예측이 아니라 ‘위험이 크다’는 판단임을 분명히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르웨이 방식에는 어느 사면이 무너질지 미리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산사태가 일으키는 쓰나미를 검토한 논문들도 대부분의 산사태는 위치를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네팔의 조기경보에는 세 단계의 방책이 필요하다. 첫째, 주민 거주지와 발전소 위에 매달린 빙하와 급경사 빙암 사면을 지도로 만들어 가장 위험한 곳부터 노르웨이식으로 계측하는 일이다. 둘째, 감시하지 못한 곳이 무너졌을 때는 지진파가 최초의 경보가 된다. 2021년 인도 차몰리의 암반과 빙하 붕괴는 전세계 지진관측망에 기록됐고, 지역 지진망으로 토석류를 감지해 경보를 내리는 방법도 같은 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제안됐다. 이번 네팔 랑탕 붕괴도 규모 5.2의 신호를 냈으므로, 문제는 그 신호를 받아 몇 분 안에 사이렌을 울리는 체계가 있느냐다. 하천 수위계는 하류에서는 쓸모가 있지만, 상류 거주지의 경보 시간은 수십 분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연쇄재난의 두 번째 고리인 산사태 댐은 감시할 수 있다. 2026년 8월26일 랑탕리룽 산사태 댐의 첫 붕괴 뒤에도 임시 호수인 언색호는 이틀 동안 남아 있다가 8월28일 다시 터졌다. 이번에 그럴 여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성과 드론, 수위계로 임시 호수를 지켜봤다면 두 번째 붕괴 전에 하류 주민을 대피시킬 수 있었다.

 

한국 책임 적잖아… 일회성 아닌 다년 제공을

 

2026년 9월1일 네팔 누와코트의 대홍수 잔해에서 사람들이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네팔 당국은 복구 비용이 수십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2026년 9월1일 네팔 누와코트의 대홍수 잔해에서 사람들이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네팔 당국은 복구 비용이 수십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국경을 넘는 재난의 특성도 중요한데, 이번에는 네팔에서 시작된 홍수가 중국의 통상구까지 덮쳤다. 네팔과 중국은 위성영상과 지진파, 강수량과 수위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국경을 넘어 경보를 전달해야 한다. 경보 시간이 지나치게 짧은 상류 마을은 피해 주민과 협의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경험이 말해주듯 조기경보는 기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소통으로 그 신뢰를 쌓아야 열다섯 번 헛경보가 울려도 주민이 시스템을 따른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더 안전한 복구’를 위한 투자에도 쓰여야 한다. 무너진 시설을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다시 세운다면 다음 재난 때 같은 피해를 되풀이하게 된다. 사라진 다리 32개를 같은 높이에 다시 놓을 것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취약한 입지와 부족한 경보체계를 네팔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감시장비를 도입하고 위험 지역의 거주지를 이전하며, 재해에 강한 기반시설을 세울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손실과 피해란 적응의 한계를 넘어선 영향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현장에서 적응 재원과 손실·피해 재원을 갈라 따질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는 현장에 피해 국민이 있어 이미 당사자다. 우리 사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손실과 피해의 관점에서 장기적 역할까지 고민했으면 한다. 1750년 이후 세계 화석연료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한국의 비중은 1%를 웃돈다. 일회성 구호에 그치지 않고 손실과 피해 기금에 예측할 수 있는 다년 재원을 제공해야 한다. 빙하와 수질의 장기 관측, 조기경보와 복구를 무상으로 지원하되 네팔 연구자와 주민이 우선순위를 정하게 해야 한다. 감시장비는 설치보다 유지가 어렵다. 네팔의 한 빙하호에 설치된 인공 수위 저하 시설은 15개월 만에 멈췄고, 베슬레만넨의 예보는 5년 동안 관측이 끊기지 않았기에 끝내 효과를 냈다.

손실과 피해 재원이 온실가스 감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리면서 피해기금만 보충하는 것은, 피해를 키워놓고 돈으로 무마하려는 일이다.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기후위기의 비용을 목숨과 삶터로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무사함에 안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재난이 닥쳤을 때 더 많은 네팔 사람이 “나는 무사하다”고 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손실과 피해를 말해온 국제사회가 져야 할 책임이다.

 

박훈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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