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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 정책이 나올 때마다 두렵고 약이 받친다

청년 112명 설문조사와 5명 심층 인터뷰 결과 분석… “부동산 뉴스 들을 때면 어떻게 할지 막막” 54.5%
등록 2026-09-17 22:26수정 2026-09-21 07:22
2026년 9월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대학생 변건우(27)씨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취재를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26년 9월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대학생 변건우(27)씨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취재를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임대주택에 사는 작가 지망생 이아진(32)씨는 몇 달 전 동네에서 ‘재개발사업 주민 설명회’가 열린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발견했다. 2층짜리 일반주택 2층에 있는 9평(29㎡)짜리 투룸에서 보증금 8800만원에 월 11만원의 이자를 내고 8년째 셋방살이 중인 아진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진씨는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리는 설명회에 찾아가봤다. 센터 대강당에 도착하자 재개발 사업성을 확인하려는 주민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장을 입고 가슴에 배지를 단 사람들이 “꼭 해내겠다”며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유일한 ‘세입자’였던 아진씨는 묘한 소외감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했다. ‘분명 나도 이 동네 주민인데, 내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인가?’

티브이(TV)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부동산 뉴스를 접할 때도 아진씨는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잡기와 내 집 마련 지원에 집중되는 사이,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청년을 위한 주거 안정 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까닭이다. “요즘 정책을 보면 자산을 모아 세입자에서 벗어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자산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세입자로 살아도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탈세입자’ 준비된 사람에게만 초점”

한국의 만 19살 이상~34살 이하 청년 10명 가운데 8명은 임차 가구, 즉 ‘세입자’다.(국토교통부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 그러나 부동산 담론 속에 청년은 언제든 내 집 마련에 나설 준비가 된 ‘실수요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집을 빌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정책의 주변부에서 맴돌고 있다. 한겨레21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묻기 위해 20·30대 청년 5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주거권 단체 ‘민달팽이유니온’과 함께 만 19살 이상~39살 이하 청년 112명을 대상으로 9월10일부터 14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문항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부록에 실린 조사표를 참조해 구성했다.

9월13일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값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주간 매매가격은 2025년 2월 첫째 주부터 2026년 9월 첫째 주까지 8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9월 넷째 주까지 상승세가 이어지면, 문재인 정부 시기에 기록한 역대 최장 상승 기간인 85주를 갈아치우게 된다. 이재명 정부가 ‘6·27 대출 규제’ ‘9·7 주택공급 확대’ ‘1·29 주택공급 확대’ ‘8·13 주택 신속공급’ 등 주요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부동산 대토론회까지 열면서 국정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인 서울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부동산 담론도 더욱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한겨레21이 청년 112명에게 ‘평소 집값이나 부동산 관련 뉴스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가’라고 물은 결과(최대 2개 선택), 가장 많은 응답은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다’(54.5%)였다.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은 46.4%였다. 이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32.1%), ‘나와는 먼 이야기라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18.8%),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17%) 순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는 긍정적 응답은 2.7%에 그쳤다.(아래 표 참조)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서울 강북구의 다세대주택 원룸에 거주하는 최은진(22·가명)씨는 “(설문조사) 선택지를 보면 속이 너무 쓰릴 정도로 절망적”이라고 힘겹게 말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5만원을 내고 사는 그는 전세사기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2022년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세사기가 보증금 3천만원 이하에서는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는 ‘3천만원 이하는 잘 다뤄지지 않는 금액이구나’,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 어려운 금액을 모아도 한순간에 인생이 뒤집어질 수 있겠다’는 공포예요. 보증금 1천만원으로 서울에서 월세방 구하기도 힘든데, 저는 ‘그 많은 돈을 언제 모으지?’라는 생각이 들죠.”

‘기타’를 선택한 청년들의 주관식 응답에서도 정부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반감 정서가 드러났다. 한 응답자는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무브가 일어나야 기업이 일자리라도 만들 텐데, 대한민국의 자원이 다시 부동산으로 이동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상대적 박탈감과 부당감보다는 체념의 감정”이라며 “서울에서 평생 월세를 내고 5평(16.5㎡) 방에서 살다가 운이 좋으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지 않을까”라고 적었다.

76%가 세입자… 53.5% “당장 주거비도 부담”

청년들이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의 주거 형태와 주거비 지출 구조를 들여다보면 좀더 명확해진다. 응답자들의 주거 점유 형태를 살펴보니 청년 112명 가운데 76%가 세입자였다.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사는 응답자가 52.7%로 가장 많았고, ‘전세’ 17%, ‘부모 소유 주택 거주’ 15.2%, ‘자가’ 8%, ‘사글세 또는 연세’ 3.6%, ‘보증금 없는 월세’ 2.7% 순이었다. 또한 응답자들의 월수입 수준이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이 36.6%로 가장 많은 가운데, 주거비로 매달 ‘40만원 미만’을 지출한다는 응답이 42.9%로 가장 많았다.

특히 일자리나 학업 때문에 서울로 이주한 청년 세입자들에게 비수도권보다 높은 서울의 주거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대학에 다니며 스스로 생계를 꾸리는 은진씨는 8평(26㎡)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 겨울에는 난방비 탓에 공과금이 15만원가량이 나와 실제 주거비가 한 달에 70만원 안팎까지 늘어난다. 은진씨는 “현재는 휴학 중이라 숙박시설에서 밤에 12시간씩 일해서 번 월 210만원으로 주거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집값 걱정 때문에 아플 때 쉬지 못할 정도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주거비를 지출하는 응답자 101명 가운데 53.5%는 주거비가 ‘부담된다’고 했고, ‘부담되지 않는다’는 23.8%, ‘보통이다’는 22.8%였다.

살고 있는 집의 구입자금이나 임차보증금을 마련한 경로에서도 청년들의 경제적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본인 자금’으로 마련했다는 응답이 33.0%였지만, ‘부모·친인척 자금’으로 마련했다는 응답 역시 33.9%에 달했다. 대구에서 살다 서울에서 홍익대 건축학과에 다니는 변건우(27)씨는 마포구의 한 5층짜리 다세대주택 3층에 있는 5평 남짓한 원룸에서 3년째 살고 있다. 같은 층에는 여섯 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월세 49만원에 관리비 9만원을 내고 있어 1년 주거비만 696만원에 달한다. 주변 시세가 평균 월 60만~70만원인 것을 고려했을 때 지금 사는 집이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하는데도, 주거비 부담은 여전하다. 건우씨는 휴학 기간에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마련했지만,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지금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어려워 부모에게 손을 벌렸다. ‘스스로 월세를 전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건우씨는 고개를 저으며 “서울의 높은 월세가 벌써부터 두렵다”며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지인이 재건축 조합원이 돼서 서울의 유명 고가 아파트에 들어갔거든요. 그분 말씀이 ‘어디 신도시 가지 말고 구축 가서 인테리어 예쁘게 하고 살아도 된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다들 로또 맞으려고 나름 노력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빌라에서 오손도손 살다가 재개발이 돼서 아파트에 들어가면 갑자기 ‘점프’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사는 건 이번 생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일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여자친구와 농담만 할 뿐이죠.”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청약 해지하는데 대출받게 해주겠다니”

물론 청년들도 ‘내 집 마련’을 꿈꾼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내 집(자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66.1%로, 청년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은 자가 소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위의 표 참조) 그러나 본인 명의 주택 보유자를 제외한 응답자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집값이 너무 비싸다’(57.7%)는 응답이 1위로 꼽혔다. 매달 주거비를 감당하면서 노동소득만으로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 어려운 현실이 내 집 마련의 장벽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은진씨는 “사실상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크다”며 “집값 자체가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구매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충분히 높은 소득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또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40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구매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라고 푸념했다.

청년들의 좌절감은 최근 급증하는 청약통장 해지율에서도 드러난다. 청약저축은 주택도시기금의 재원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거나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서민용 금융 정책을 집행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정작 청년들은 주거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사다리마저 포기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룬 지 9년째가 된 아진씨도 한때 청약통장에 꼬박꼬박 돈을 넣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득과 자산으로는 청약에 당첨돼도 최소한의 돈을 마련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느낀 뒤 추가 납입을 중단했다. 현재 아진씨는 주 5일 야쿠르트 배달을 하며 월 150만원을 벌고 있다. “설령 정책이 생기더라도 저는 자산이 너무너무 적은데,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지 않을까요?”

이 때문에 대출 지원 정책에 쓴소리를 남긴 청년들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8·13 부동산 대책에서 청년미래보금자리론, 청년 전월세결합보증, 청년특례 전세대출보증 등 대출과 금융 지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내놨다. 한 응답자는 “어차피 노동소득으로는 집을 살 수 없고, 정부 정책은 대출이 기반이다. 대출해서 집을 구하는 게 아니라 공공주택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대출을 많이 해준다는 정책은 나한테 의미가 없다. 대출하면 불안도만 높아진다”며 “대출 지원은 그저 청년들을 빚쟁이로 만드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지급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대출은 청년의 삶을 악화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디자인주 장광석 실장


내 집 필요 이유, ‘주거 안정’이 ‘자산 증식’의 네 배

부동산 담론에서 뜨거운 논쟁 중 하나는 청년층의 ‘자산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주장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9월2일 국민의힘 ‘대한민국 청년 내집마련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이 정권이 청년의 노동권과 재산권, 주거권에 이르기까지 청년 주권을 모조리 수탈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야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며 재산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택 구입을 지원한다면서 아파트는 안 되고 4억원 이하 빌라나 오피스텔을 사야 지원해준다고 한다”며 “청년들은 아파트를 꿈꾸지 말고 공공임대나 빌라, 오피스텔에 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은 집값과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지자 규제 완화를 통해 청년들에게 자산 형성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설문조사 결과는 조금 달랐다.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이유로는 자산 증식보다 ‘주거 안정’이 더 컸다. ‘내 집(자가)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66.1%) 가운데 44.6%가 그 이유로 ‘이사하지 않고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어서’를 가장 많이 꼽았고, ‘자산 증식 및 보전을 위해서’는 10.8%에 그쳤다. ‘내 집(자가)을 가져야 한다’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33.9%) 가운데 56.8%는 ‘안정적으로 임대 거주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했다. 김가원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은 “청년들이 집을 바라는 이유는 자산 사다리를 타기 위함이 아니라, ‘애써 구한 집에서 얼마나 오래 자리 잡고 살 수 있는가’라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어 “‘영끌’로 집을 살 수 있었던 청년은 자산이 있거나 부모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청년 가구의 80% 이상인 임차 가구가 겪는 불안과 점유권 미보장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민간 임대시장에서 세입자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임대차계약이 끝날 때마다 거주지를 고민해야 하고, 수리나 계약 연장을 두고 임대인과의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아진씨는 2025년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나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자비로 보일러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 묵시적 갱신이 안 될 수도 있잖아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설문에서도 ‘지금까지 겪어본 주거 불안 상황’에 대한 물음에 ‘이사 또는 임대차계약 갱신에 필요한 보증금이 부족한 상황을 겪었다’는 응답이 24.1%였다. ‘임대인과 갈등을 겪었다’는 응답도 20.5%였다.

그럼에도 무주택자와 세입자를 위한 임대차 안정 정책은 공급 대책이나 금융 대책과 동등한 무게로 다뤄지고 있지 않다. 건우씨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모든 국민은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살아야 하고, 그것만이 성공한 삶이라는 가치관을 강요하며 정부 정책도 그런 모범 시민 프레임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로 살아도 이주 걱정 없이 최소한의 안정성과 쾌적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해서 집을 사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가 더 정의롭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서울 용산구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장명선(36)씨도 “내 집을 재산으로 소유하기보다는 50년 장기 임대아파트처럼 주거비 부담이 적은 임대주택에서 세입자로 안정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2026년 9월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주택에서 이아진(32)씨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9월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주택에서 이아진(32)씨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입자로 평생 살아도 괜찮은 사회를”

응답자들은 ‘가장 필요한 주거 정책’으로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 및 조건 완화’(36.6%), 그리고 ‘주택 구입 자금 대출’(18.8%)을 꼽았다. ‘민간임대주택 관리·감독 강화(전세사기 근절, 불공정 공인중개 처벌 등)’를 꼽은 응답도 17.0%였다.(위의 표 참조) 집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당장 집을 사기 어려운 이들이 안전하게 임차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책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거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주관식 설문에서는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한 응답자는 “공공 매입전세나 청년 대출 확대 정책은 당장 임시방편은 될지 몰라도, 결국 주변 임대료와 집값을 올려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낸다”고 꼬집었다. 다른 응답자는 “쓸데없는 조건으로 지원 대상을 세분화하기보다, 도심 대규모 개발이나 신규 거점도시 건설을 통해 공공이 주도하는 대량 공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급되는 주택, 택지의 경우 한번 분양 로또 맞으면 대박이 아니라, 최소 두세 바퀴 수요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적었다.

청년층에 한정하지 않고 소득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 청년 정책의 대상 연령은 만 19살 이상~39살 이하로, 이 기준을 벗어나면 청년 대상 주거 지원에서 제외될 수 있어서다. 곧 청년의 경계를 벗어나는 김하은(38)씨는 “정부 정책이 출산율과 신혼부부에 맞춰져 있어 1인 가구는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부차적 존재처럼 취급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주관식 설문에서도 한 응답자는 “39살로 그어지는 청년과 비청년의 경계에서 중년도 청년도 아닌 이들은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적었고, 또 다른 응답자는 “과거엔 39살 이전, 대출 4회 연장이면 충분히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현재 1인 가구는 늘어나는데 40대 비정규직을 위한 주택 정책은 없다”고 했다.

2026년 9월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주택에서 이아진씨가 주방을 정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6년 9월8일 경기도 성남의 한 주택에서 이아진씨가 주방을 정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0대 무주택자는 대상에서마저 배제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집의 조건’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의 75.9%가 ‘주거비가 소득에 비해 과도하지 않을 것’을 꼽았다. 한겨레21이 만난 청년들의 바람도 거창하지 않았다. 건우씨는 “넓지는 않더라도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서 잔디밭에 누워 햇빛을 쐴 수 있는 집”을 꿈꿨고, 하은씨는 “나이가 들었을 때 반려견과 함께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투룸 아파트”를 떠올렸다.

아진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최근 집단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서 ‘내가 가진 든든한 자원 쓰기’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에 ‘집’이라고 썼는데, 그냥 집도 아니고 ‘하여간’ 내 집이라고 썼죠. 전혀 쾌적하지도 않고, 문제도 많고, 이 집 자체에 제가 해내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어쨌든 돌아갈 곳이 있고 저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이죠.”

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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