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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호프’, 허술하거나 앙상하거나

‘프레데터’처럼 싸우기라도 했다면… 빈약한 과학적 고증에 SF 미스터리 스릴러 탈을 쓴 코미디로 불시착
등록 2026-07-23 21:12 수정 2026-07-2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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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호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글에는 영화 ‘호프’의 줄거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26년 7월15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가 화제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에 관객은 기대감을 안고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는 초반 한 시간 동안 팽팽한 서스펜스와 액션을 보여주며 기대에 보답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소 당혹스러운 결말, 대사의 절반 정도가 “씨발”과 “개새끼”인 데서 오는 원초적인 불쾌감, 액션 시퀀스가 다양하며 퀄리티가 높기는 해도 결국은 외계 크리처와 맞서 싸우거나 그로부터 도망친다는 내용이 반복될 뿐이라서 단조롭다는 점 등이 겹쳐져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평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호프’가 ‘곡성’과 비슷한 방식의, 의도적으로 의미를 비워 이상하게 만든 영화라고 평한다. 다른 이들은 근래 한국 에스에프(SF) 영화가 꾸준히 나쁜 성적표를 받았음을 떠올리며 ‘호프’를 그 명단의 말석에 앉혔다.

이번 글에서는 ‘호프’의 이런저런 설정과 영화적 선택을 SF적 측면에서 조명하고 간단한 비평을 곁들여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에 비해 낙후한 전투 방식

 

먼저 첫 번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영화 속 외계 크리처의 전투 방식이다. 영화 초반에는 정체불명의 인간형 괴물로만 보였던 이들은 영화 중반에 이르러 정체가 외계인임이 밝혀진다. 이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왔다. 즉, 상당한 과학기술을 보유한 종족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지 않았던 외계 크리처와 인간의 싸움이 그 정보가 밝혀진 뒤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워진다. 산탄총과 유탄발사기, 자동차를 십분 활용하는 인간 쪽과 달리 외계 크리처는 딱 한 번 창을 던지는 장면 외에는 마치 야생동물처럼 인간에게 달려들기만 할 뿐이다. 아무리 강인한 신체를 가진 종족이라고 해도 성간 비행이 가능한 과학기술을 가진 지성체인데 전투 방식이 너무 원초적이지 않나? 이들은 마치 ‘프레데터’처럼 싸울 수도 있었고, 그러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다. 적어도 우주선이 있던 숲에서의 싸움은 외계 크리처가 함정만 좀 잘 파놨더라면 손쉽게 이겼을 것이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설명은 미국의 소설가 해리 터틀도브의 단편소설 ‘가지 않은 길’(정식 한국어판 제목은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록솔란이라는 종족은 자신들이 발명한 초광속 우주비행 기술과 중력조작 기술로 우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외계 행성들을 정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지구를 발견하고, 우주여행 기술을 갖추지 못한 원시적인 행성인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착륙한다. 록솔란의 병사들은 머스킷총과 대검 등을 챙겨 전투에 나서는데, 2039년의 미군은 돌격소총과 전차, 스텔스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록솔란족은 압도적인 화력 차이로 20분 만에 완전히 패배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포로로 잡힌다. 지구인 연구원들이 록솔란족의 기술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중력조작 기술과 초광속 우주비행 기술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인류 역사 중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하여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토그람은 슬프게 귀를 흔들었다. “이건 불공평해. 고작 하이퍼 드라이브를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구인들은 다른 모든 걸 가지고 있어.”

“그리고 지구인들은 이제 하이퍼 드라이브까지 가지고 있지.” 란시스크가 일깨워주었다. “우리 덕분에 말이야.”

두 록솔란인들은 소름이 치밀어오르는 걸 느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보호장비 갖추지 않은 외계인

 

‘호프’의 외계 크리처 역시 ‘가지 않은 길’의 록솔란족과 유사한 처지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해석의 근거가 영화 내에 있지는 않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맨몸 전투만이 명예로운 것이라고 믿는 사상을 가졌을 뿐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별도의 무기가 없다면 ‘호프’의 외계 크리처는 군대가 출동하면 금방 몰살당하리라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호프’의 코스미시즘(인간이 결코 대적할 수도, 거부할 수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주는 무력함에서 오는 공포)적 면모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영화 ‘미스트’를 닮았다. 외계 크리처가 주는 공포는 아포칼립스(종말)적이기보다는 소규모 공동체 내에서만 압도적인 것이다. 그런데 안개 속에 숨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스트’의 괴물들과 달리, ‘호프’의 외계 크리처는 사정이 조금 더 열악하다.

인간이 다른 행성으로 가는 아무 영화나 소설을 떠올려보자. 다른 행성에 첫발을 내딛는 인간이 있다. 그 인간이 맨몸일 가능성은 몇%일까? 거의 0%라고 봐도 좋다. 다른 행성은 지구와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고, 그 환경의 어떤 면이 인간에게 치명적일지 모를 일이다. 하여 인간은 특수한 탐사복이나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에서 내린다. 그런데 창작자들은 이상하게 외계인에게도 상황이 똑같다는 걸 자주 잊는 듯하다. 외계인은 툭하면 맨몸으로 지구에 온다.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된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우주 전쟁’이다. 정체불명의 다리 셋 달린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나 모든 걸 재로 만들어버린다. 지구의 병기 따위는 손쉽게 막아버리는 방어막을 갖춘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는 속절없이 사냥당하며 사실상 멸종 위기에 놓인다. 그런데 외계 생명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쓰러지기 시작한다. 외계 생명체를 무찌른 것은 지구의 미생물과 바이러스였다.

‘우주 전쟁’의 관점에 따르면 ‘호프’ 속 외계 크리처는 군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 없이 자멸해버릴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설정이 영화 내에도 하나 있는데, 바로 외계 크리처에게서 고약한 썩은 내가 난다는 것. 사실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괴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 오면 ‘호프’는 실상 SF 미스터리 스릴러의 탈을 쓴 코미디영화에 가까워 보이는 지경이 된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비워놓았기에 생긴 맹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들키지 않는 우주선 착륙은 불가능

 

마지막으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영화는 대략 1970~1980년대를 무대로 하는 듯한데, 이때는 세계적으로 보면 냉전의 후반기이다.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을 대비해 서로의 하늘과 우주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만약 우주선이 대기권 진입을 시도하거나 지구궤도에 멈춰 섰다면, 미국과 소련은 이를 적국의 기습 핵공격이나 신무기로 오인해 즉시 전면적인 비상경계 태세를 발령했을 것이다. 아울러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 것이 1969년, 화성 탐사선 바이킹호가 출발한 것이 1975년, 외행성 탐사선 보이저호가 발사된 것이 1977년이다. ‘호프’의 외계 크리처가 우주선 단위의 클로킹(은폐) 기술을 갖췄더라도 모선이 지구에 떨어진 이상 들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듀, 외계 크리처여. 마지막에 애써 자막까지 넣어주면서 사연팔이를 했건만 자네들이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인다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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