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에 높이 145m의 고층 빌딩이 건립된 가상도. 국가유산청 제공
‘얼마나 높게 짓느냐.’ 20년 넘게 표류한 서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세운4구역) 사업의 쟁점이다. 세계문화유산 종묘 바로 앞이며, 서울 역사도심의 한가운데라는 건축·문화적 가치가 경제논리와 다투고 있다. 오랜 논의와 숙의 끝에 서울시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최고 높이 72m라는 접점을 도출해냈고, 2017년에는 국제설계현상공모를 통해 세운4구역의 미래를 그린 설계안을 뽑았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뒤 이 과정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오 시장이 폐기한 설계도를 그린 건 국제설계현상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된 네덜란드 건축사사무소 ‘케이캅’(KCAP)이다. 박혜리 케이캅 소장에게 세운4구역 설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박혜리 케이캅(KCAP) 소장. 박혜리 제공
―세운4구역 설계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점,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이 사업은 2000년 초반 시작돼 오랜 시간 많은 부분이 왜곡됐다. 서울시의 장기 숙제였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유럽에서는 대규모 단지형 개발을 할 때, 제대로 도시설계를 한 뒤에 건축을 한다. 그러나 세운4구역은 전면 철거 재개발의 통합 단지형 개발로 설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도시공간 문법을 투영하고 종묘뿐만 아닌 세운~을지로 문맥을 고려한 고차원의 수를 내야만 했는데, 그 과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당선되자마자 최대한 용적을 늘리고, 역사성을 고려하려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생략하고, 디자인은 되도록 단순화하려는 압박이 발주처로부터 심하게 들어왔다. 민간사업이니 사업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럼에도 종로변으로 점차 낮아지는 스카이라인, 옛길을 공간 디자인의 질서로 삼아 3차원적으로 구현하려고 한 계획개념 등 주된 콘셉트는 여러 회의와 협의를 통해 마지막까지 최대한 지켜냈다. 결국 사업성까지 부합하는 최종 설계안을 만들었고, 우리 설계안으로 문화재 심의는 물론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아냈다.”
―세운4구역 설계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할 점은 무엇인가.
“시간성과 공간적 가치는 여러 층위로 이해하고 해석한 뒤 설계해야 한다. 강남과 달리 종로는 옛 도시조직에 따라 대로변에 낮고 가로로 긴 블록이 인상적이다. 이 경험에서 ‘당연히’ 세운4구역도 종로 및 종묘를 바라보며 낮아지는 경관으로 디자인했다. 이게 우리가 공모전에서 당선된 큰 이유였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지역마다 다른 특색은 역사와 시간에 내재된 공간의 문법에서 찾을 수 있다.”
―2023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쪽에서 설계 변경으로 인한 타절(계약 중도 해지)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
“우리는 서울시 총괄건축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중재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허탈하고 속상했다. 2017년부터 최선을 다해 수년간 정성을 들였는데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돼서 어이가 없었다. 우리 계획안으로 착공 직전까지 모든 절차를 밟았다. 특히 사람들을 쫓아내고 건물을 철거하는 데만 우리 안이 사용된 셈인데, 건축가로서 너무나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게 밀어낸 도시조직과 도심산업에 대해, 우리는 디자인으로 책임질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설계현상공모 당선작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일이 흔한가.
“현 시장 임기가 시작되고 당선작이 취소되거나 폐기됐다고 하소연하는 건축가를 많이 봤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유럽에서도 당선된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일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 외부 요인에 따른 정책 변경이나 시민투표를 통해 폐기된 사례다. 우리나라는 공모전을 통해 당선안을 뽑는 과정이 얼마나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행동인지 간과하는 것 같다.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의 취향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 세금이 들어간 프로세스를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기저에는 전문가를 존중하는 태도도 부족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건축가를 전문가로 인정하기보다 ‘도구’로 다루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계획안을 뽑은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키기 위해서나 용역사를 선정하기 위해 공모하는 것처럼 당선 뒤 계획안을 마구잡이로 수정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케이(K)-컬처는 세계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데, 케이-건축의 성공은 아직 요원해 보이는 이유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2025년 7월 작성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안(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변경 주요 사항)' 문건에는 종묘 정전에서 바라보는 세운4구역의 경관 시뮬레이션이 포함됐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세운4구역(최고 145.5m 높이) 오피스텔과 오피스 건물 네 동이 수목선 위를 한참 넘어 우뚝 솟은 모양새가 나타난다. 게다가 아직 준공되지 않은 세운3-8·9·10구역(199.5m)과 5-1·3구역(169.8m), 3-2·3구역(182.8m)의 고층 빌딩들도 종묘 정전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모두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가 높이를 2배 올린 설계안을 새로 내놓았다.
“서울 사대문 안 역사도심에 대한 높이 기준은 지금까지 누구도 바꾸지 못했다. 내사산(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 가운데 가장 낮은 낙산(해발 125m)을 넘지 말자는 공동의 합의로 해발 33m의 광화문광장을 고려해 건축물 최고 높이는 90m 이하로 정한, 아름다운 우리만의 높이 기준이 있다. 근데 종묘 바로 앞에 더 큰 높이가 나왔다. 결국 초고층 빌딩의 앞마당이 될 녹지대를 만들기 위해 종묘를 희생한다는 계획은 어불성설이다. 도시의 공공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공공주체는 무엇이 우선순위일지 판단을 잘해야 한다.
2026년 6월에 당선되는 서울시장은 세운지역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문 안 역사도심 정비 기준 및 세계유산평가 시행에 따른 유산 주변 개발에 대한 포괄적인 기준 등 창의적인 정책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다만 세운4구역은 현 변경안이 아닌 이전 사업시행인가안에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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