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세계 에이즈의 날인 2021년 12월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상의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95-95-95.’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유엔 총회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종식을 위해 2021년 6월 채택한 목표치의 조합이다. 2025년까지 에이즈의 원인 병원체인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 중 감염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을 95%(①), 감염 사실을 아는 HIV 감염인(이하 감염인) 중 치료받는 감염인의 비율을 95%(②), 치료받는 감염인 중 HIV가 억제된 상태(미검출)에 있는 감염인의 비율을 95%(③)로 만들자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치료율 97.7%(2023년)와 억제율 96.5%(2024년)를 기록하며 ② ③에 해당하는 목표치는 달성했다. 하지만 인지율인 ①은 62%로 추정돼 유엔이 제시한 목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헌법재판소 2023년 10월26일치 2019헌가30 결정문)
이는 저조한 자발적 검사율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발적 검사를 통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비율은 지난 5년(2020~2024년) 동안 20~30%대에 불과하다.(질병관리청 ‘HIV/AIDS 신고 현황 연보’) 서보경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책 ‘휘말린 날들’(반비 펴냄, 2023)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낮은 자발적 검사율은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빠진 면역 상태로 첫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들, 즉 후기 발현자의 숫자가 줄지 않고 있는 상황과 연결된다. 이 경우가 무엇보다 문제인 이유는 이후 치료를 통해 급성기에서 회복한다 하더라도 중증의 장애를 경험하거나 장기간의 요양 치료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HIV 감염이 고혈압, 당뇨병 등 다른 만성질환처럼 정기적으로 검진하고 지속해서 약물치료를 받으면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된 지는 오래다. HIV 감염은 이미 1990년대 중반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HIV 증식을 억제하는 각종 치료제가 배합된 약을 매일 복용)이 개발·보급된 이후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다. 특히 꾸준한 치료를 통해 HIV가 억제 상태(미검출)에 이르면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과학적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U(Undetectable·미검출)=U(Untransmittable·전파불가)’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오늘날 감염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감염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일이다.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낙인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 낙인을 재생산하는 것 중 하나가 감염인 처벌 조항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예방법)은 1980년대 에이즈의 세계적인 유행 속에서 국회가 정부안(정부 제출 법안)을 한 달 만에 졸속으로 의결(1987년 10월)할 때부터 지금까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할 수 있는 행위를 한 감염인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일찍이 유엔 산하 에이즈 전담 기구인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2008년 “HIV를 특정하여 처벌하는 법과 HIV 상태 공개를 직접 명령하는 법은 HIV 예방, 치료, 관리 및 지원 노력에 역효과를 일으키거나 HIV 및 기타 취약 집단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차별에 둔감한 한국 국회와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질병관리청은 2025년이 돼서야 연구용역을 통해 에이즈예방법 전부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움직인 건 차별에 민감한 시민사회다. 사단법인 함께서봄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백소윤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주선민 변호사가 2024년 5월 전담팀(TF)을 구성해 감염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에이즈예방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감염인에 대한 통제·관리 중심인 지금의 에이즈예방법(6장 28개 조항으로 구성)을 감염인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는 법으로 탈바꿈(2025년 11월 기준 8장 43개 조항으로 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정안은 감염인이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에서 비감염인과 동등한 접근성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감염인이 감염인 보호·지원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본 이념으로 제시한다.
이 개정안은 감염인을 범죄자로 여기는 편견을 조장하고 심리적·사회적으로 위축시켜 HIV 감염 예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과 위반시 처벌 조항을 없앴다. 이와 함께 현재 학교와 사업장(일터)에서 하는 법정 교육 내용 안에 HIV 감염 예방과 감염인의 인권 보호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의료기관의 감염인 차별이 심각한 현실을 고려해, 보건의료인 양성 및 보수 교육에 HIV 감염을 이유로 진료 거부 행위를 하지 않는 데 필요한 교육 등을 반영하도록 질병관리청이 감독해야 한다는 조항을 새로 넣었다. 더불어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거나 지연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조항도 반영했다.
현행 에이즈예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HIV를 감염시킬 우려가 크다고 인정되는 감염인에 대해 치료 및 보호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조항까지 두고 있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인 자기결정권의 침해에 해당한다. 이에 함께서봄과 변호사들은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누구든지 검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HIV 감염 여부를 검사받도록 강요하거나 검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법을 설계하고 있다.
시민사회 개정안은 고용상의 차별 금지와 보호 내용도 구체화했다. 현행법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만을 두고 있을 뿐,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개정안은 사업주에게 모집, 채용, 교육, 훈련, 승진, 배치, 해고, 퇴직 등에서 감염인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하면서, 사업주가 소속 노동자 또는 의료기관에 HIV 검사 결과 제출을 요구하거나 감염인의 감염 사실에 대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소중 함께서봄 운영위원은 “2025년 12월까지 에이즈예방법 전부개정안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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