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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세운4구역 145m 건물? 오직 고층 빌딩이어야 할까

지하 공간에서 용적률 찾거나 용적률 거래제도 제안도…하늘만 쳐다보다 세계문화유산 향한 반달리즘으로 불시착
등록 2025-11-21 09:49 수정 2025-11-24 06:54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에 높이 145m의 고층 빌딩이 건립된 가상도. 국가유산청 제공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에 높이 145m의 고층 빌딩이 건립된 가상도. 국가유산청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서울 종묘 앞 재개발을 두고 거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서울시는 2025년 10월30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에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을 대폭 상향하는 변경 고시를 발표했다. 시의 계획대로라면 종묘와 180m 거리에 최고 높이 145m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기존에 추진되던 높이 71.9m 높이의 두 배에 이르는 고층 건물이 종묘 맞은편에 세워지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이에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11월15일에는 유네스코도 종묘 앞 건설 공사에 우려를 표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권고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세계유산 주변에 개발사업이 있을 때 유네스코에 알리고 영향평가를 받는 제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운영지침에 따라 종묘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 결과를 센터에 제출해야 하며, 자문기구의 검토가 완료될 때까지 개발사업의 승인을 중지해야 한다’는 게 유네스코 공문의 요지다. 유네스코는 또 이 공문을 한국에 보내며 한국 정부의 의견과 함께 추가 정보를 한 달 내에 회신하라고 요청했다. 향후 유네스코의 이어지는 요청에 불응할 경우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아울러 11월13일 국가유산청은 종묘 권역 일대의 국가사적 19만4천㎡(5만8천여 평)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다. 유산영향평가의 근거가 되는 조처인데, 무리한 개발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와중에 정치권 고발전 비화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은 정치권에서 쟁점화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1월10일 종묘를 찾아 고층 빌딩 건설로 경관이 훼손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김 총리는 “(빌딩이 건설되면) 바로 턱 하고 숨이 막히게 되겠다”며 “종묘 인근을 개발할 것인가는 국민적 토론을 거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11일 ‘오세훈 서울시장 시정 실패 정상화 티에프(TF)’를 꾸렸는데, 서울시 한강버스와 함께 종묘 앞 재개발도 주요 쟁점 사안으로 검증하고 있다.

그러자 오 시장은 11월18일 세운4구역 재개발 시뮬레이션 이미지를 공유하며 “정전에 섰을 때 눈이 가려지는가? 숨이 턱 막히는가? 기가 눌리는가?”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종묘 앞 재개발, 한강버스 등 오 시장의 정책에 김 총리가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며 김 총리를 서울경찰청에 11월19일 고발했다.

1970년대 세워진 세운상가가 번성했던 세운4구역은 상권이 노후화하며 오랜 기간 개발 논의가 이어졌다.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이후 최고 높이 122m 빌딩 등으로 건축하려다 세계문화유산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문제로 문화재청(현재 국가유산청) 심의 과정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 심의 끝에 2018년에야 최고 높이 71.9m 건물을 세우기로 정해졌다. 이 계획에 따라 세입자 이주와 기존 건물 해체도 이뤄졌다.

종묘의 상징성에 바리케이드를 놓다

하지만 2023년 10월 서울시가 문화재청과 한 합의를 깨고 이곳의 용적률 상향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서울시의회는 이를 위해 문화재청이 심의한 근거가 되는 조례를 삭제했다. 문화유산법상 시도지사는 지정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문화재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정해야 한다. 애초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에는 ‘국가지정유산 100m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문화재청과 협의해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제19조 5항) 이 조례에 따르면 종묘에서 180m 떨어진 세운4구역에 대해 문화재청이 심의할 수 있었는데, 국민의힘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이를 삭제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2년여 소송 끝에 대법원은 2025년 11월6일 서울시의회의 조례 삭제는 무효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놨다. 그사이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용적률을 1094%까지 상향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결국 2025년 10월 말 계획이 고시됐다.

전문가들은 종묘 앞 고층 빌딩 건설은 전체 도시 경관의 맥락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김인철 건축가는 “오 시장은 건물이 시각적인 방해가 되느냐 안 되느냐만 가지고 이야기한다. 서울이라는 도시 특성상 종묘가 있는 위치에서 남산을 향해 열리는 시각과 그 영역 전체가 중요하다”며 “서울의 풍경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 산과 산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감각이다. 그 상징성에 바리케이드를 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세운4구역의 개발 필요성을 전제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초고층 빌딩이어야 하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제기된다. 서울시와 세운지구 개발업자, 토지주 등은 개발의 사업성을 위해 고층 빌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세계문화유산인 선정릉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강남 핵심 권역 내에 있지만,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주장한다. 또 2006년 서울시를 믿고 사업을 착수했지만, 이후 개발이 지연되면서 빚이 7250억원으로 늘어나 고층 빌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업성 살릴 다른 방법,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고층 빌딩이 아니더라도 사업성을 낼 길이 열려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설계학)는 “꼭 건물을 가늘고 높은 형태로만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 기준에서도 ‘뚱뚱한’ 건물을 짓기만 하면 개발 동력은 충분하다. 고층이 될수록 공사비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건물 용도는 분양하기 매우 안 좋은 사무실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인철 건축가도 “지하에서도 지상에서 못 찾는 용적률을 찾을 수 있다. 이화여대 이시시(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가 그 사례다. 지하 2~3층까지는 상업시설로 쓸 수 있다”며 “종묘도 살리고, 주민들의 이익도 살리는 방법에는 하늘로만 올라가는(고층) 길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업성을 지키면서 경관을 보존하는 해법으로 용적률 거래제도 제시된다. 사업구역에서 특정 이유로 용적률 규제를 받으면, 남은 용적률을 다른 사업지에 팔 수 있는 제도다. 이미 서울시는 2025년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김 건축가는 “종묘 앞 개발에 용적률 600% 건물과 함께 지하를 개발하고, 규제된(약 1천%→600%) 용적률을 팔아도 사업성 있는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며 “기존 관습에 매달리지 않고 창의적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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