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4일 ‘읍·면 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 공동행동’이 발족식을 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농촌 읍·면 자치권 강화를 위한 3대 정책 10대 과제’를 제안했다. 하승수 제공
지역 없는 국가는 없다. 농촌 없이는 인구 5천만 명 규모의 국가가 유지될 수도 없다. 먹거리부터 에너지까지 모두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국가를 유지하는 근간이 비수도권 농어촌인 것이다. 그러니 이들 지역이 소멸하면 대한민국도 소멸한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망국론’을 생각 없이 떠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은 위기다. 인구가 감소해왔고, 고령화도 심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인구가 유출됐기 때문이다. 저출생이 원인이 아니다. 농촌 지역 인구가 도시로, 비수도권 인구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것이 지역 위기의 원인이다. 그 결과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돼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다. 전국 평균은 0.75명인데 서울은 0.58명이다.(2024년 기준) 그러니 인구가 서울로 몰리기만 하면 대한민국의 저출생 추세는 반전되기 어렵다. 반면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시를 제외하면, 합계출산율이 높은 시도는 전남·경북·강원 순이었다. 모두 농촌이 광범위하게 분포한 곳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봐도 전남 영광군 1.71명, 강진군 1.60명, 강원 화천군 1.51명 등으로 이들 군은 서울보다 합계출산률이 2.5배 이상 높다. 이런 수치만 놓고 보면, 출생율을 높이는 방법은 오히려 수도권 도시에서 농촌 지역으로 인구가 분산되는 것이다.
지역 위기와 저출생 위기의 근본 원인은 수도권 일극집중이다. 수도권 일극집중의 근본 원인은 중앙집권이다. 중앙집권화된 국가에서 돈과 권력이 집중된 수도권이 인구를 빨아들여서 지역이 위기를 맞고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지방분권을 하고, 풀뿌리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잘못된 정책을 펴왔다. 한편으로는 수도권 일극집중을 심화하는 정책을 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수도권 지역에서 행정통합이나 토건사업 같은 엉뚱한 일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수도권 일극집중을 심화할 사업들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 추진하는 행정통합은 잘못된 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을 통합해봐야 나아질 것은 없다. 주민 참여만 어려워지고, 주변부 지역은 더욱 소외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어야 할 점은 대한민국처럼 농촌 지역 지방자치를 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초지자체 인구 규모는 세계 최대다. 기초지자체 평균 인구가 22만 명이 넘는다. 선진국 중에 이런 국가는 없다. 독일은 8300만 명 남짓한 인구인데 기초지자체인 게마인데(Gemeinde) 수가 1만 개 넘는다. 게마인데 평균 인구가 8천 명이 안 된다. 스위스의 기초지자체 평균 인구는 4천 명이 안 되고, 프랑스는 2천 명이 안 된다. 유럽 국가들의 기초지자체 인구 규모가 적은 이유는, 농촌 지역의 경우 읍·면 정도의 단위에서 기초지방자치를 하기 때문이다. 유럽대륙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앙정부가 기초지자체 간 통합을 밀어붙여왔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촌(우리의 읍·면)을 기초지자체로 두고 있다.
따라서 기초지자체들을 통합해 자치단체의 규모를 키우자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오히려 지금은 농촌 지역의 읍·면 자치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도 해방 이후에는 읍·면을 기초지자체로 했다. 도시는 시(市), 농촌은 읍·면이 기초지자체였다. 읍의원, 면의원, 읍장, 면장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다. 읍·면별로 조례를 만들고 예산도 심의했다. 그런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었다. 여기에 읍·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군(郡)을 기초지자체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이런 구조가 유지됐다.
결국 읍·면은 자치권을 강제로 박탈당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읍·면은 자치권이 없는 하부 행정조직에 불과하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 읍·면 자치의 부재는 농촌 지역의 어려움을 가속화하고 있다.
농촌은 여전히 읍·면이 생활권이다. 농촌이 활력을 찾으려면, 읍·면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귀향·귀농·귀촌을 활성화해 인구를 유지할 수도 있고,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릴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 농촌 지역에 많이 생기는 빈집 문제도 해결하고, 농촌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주택을 공급하는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농촌에 필요한 의료, 돌봄, 교통, 문화, 환경 등에 관한 대책도 세울 수 있다.
농촌의 군(도·농복합도시도 마찬가지)은 너무 넓고, 군에 소속된 읍·면별로 다양한 특성이 있다. 그래서 군에서 세우는 계획은 탁상계획이 되기 쉽다. 지금 실태를 봐도, 농촌의 군에서 세우는 계획은 주로 용역을 주거나 공무원이 머리를 짜내서 만드는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는 농촌 지역의 상황이 개선될 수 없다. 군이 넓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경북 봉화군의 면적은 1202㎢로 서울시 면적의 2배에 이른다. 전국 1411개 읍·면은 국토 면적의 90%를 차지한다. 이렇게 넓은 면적의 자치권을 박탈했으니, 정책과 행정이 겉도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1961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읍·면별로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하고, 그 법적 효력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 계획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과 행정력을 읍·면에 보장하자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주민자치회와 주민자치위원회를 발전시키든 새로운 틀을 만들든, 주민대표기구를 제대로 구성·운영하자는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도해온 ‘읍·면장 주민추천제’를 확대해, 읍·면장으로 임명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기 계획을 밝히고 주민들로부터 평가도 받게 하자는 것이다. 전국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하기가 어렵다면, 준비가 되고 역량이 되는 곳부터 먼저 실시하면서 확대해나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농촌 지역이 활력을 되찾고 인구가 유지·유입되는 것이 수도권 일극집중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될 것이다. 부디 이재명 정부는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해왔던 접근법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법을 택하기 바란다. 지역 간에도 ‘낙수효과’는 없다. 농촌이 활력을 찾고, 지역 중소도시가 활력을 찾고, 지역 대도시가 활력을 찾는 ‘분수효과’를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변호사·충남 홍성군 홍동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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