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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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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면 다 좋니? ‘메가’의 함정

등록 2025-08-08 13:54 수정 2025-08-14 08:55
2025년 7월3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골빵집(풀무학교 생협) 앞에 주민들이 미리 주문한 토마토가 놓여 있다. 1977년 만들어진 갓골빵집은 매일 유기농밀로 빵을 굽고, 판매하고, 지역의 아이들과 제빵수업을 한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3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골빵집(풀무학교 생협) 앞에 주민들이 미리 주문한 토마토가 놓여 있다. 1977년 만들어진 갓골빵집은 매일 유기농밀로 빵을 굽고, 판매하고, 지역의 아이들과 제빵수업을 한다. 김양진 기자


사람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꼭 “진해 사람” “마산 사람”이라고 했다. 고향 이야기를 글로 기록해봤다며 쑥스럽게 책을 내밀었다. 차를 태워주며 시내 곳곳을 안내했다. 한때는 야경이 빛나던 도시,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 머리가 빼곡하던” 왕년의 거리를 회상했다. 쇠락한 상권에 한숨지었지만 “진해만의” 축제, “마산만의” 산업을 꿈꿀 때는 희망에 부풀었다. 대화의 맥락에서 창원시는 언제나 “옛 창원”(통합 이전의 창원)이었다. 2010년 7월, 세 도시가 합쳐진 지 15년이 흘렀지만 진해와 마산을 되살리고 싶다는 시민들의 갈증은 더욱 커져 있었다(  “다 빼앗기고 이름까지 먹혔다”…통합 15년, 골병 든 마창진”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814.html )

세계지도에서 국경이 반듯하게 그어진 곳은 대체로 식민지였던 국가다. 그 나라의 문화와 특징을 전혀 모르는 제국주의자들이 제 편의대로 경계선을 긋고 잘라낸 흔적이다. 그 결과 국경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방도 “서울의 식민지”라 불렀다. 제각기 개성 있는 지역 도시를 일방적으로 없애거나 다른 도시와 합치려는 자신감의 원천은 수도권 중심주의다. 지역 간 상호연계성도 없는 구역을 함부로 묶으면서 “크면 다 좋다”고 외친다. 중심으로 자원이 쏠리고 주변은 황폐해지리라는 우려, 작더라도 내 고향을 가꾸고 싶다는 호소, 무리한 통합 없이도 지역 나름의 생활권을 만들고 있다는 반박은 듣지 않는다. 심지어 전북 전주·완주 통합의 경우 완주군이 ‘싫다’는데도 밀어붙인다. 왜?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이 합의했으니까.

지역 청년 유출과 도시의 해체는 수도권 집중의 명백한 부작용이다. 집중으로 생긴 문제가 또 다른 집중으로 풀릴 리 없다. 오히려 대안은 가장 작은 단위에 있다. 특별시나 광역시, 시·군·구도 아닌, 읍과 면에 있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의 향방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단위다. 마을기금으로 토목공사를 벌이는 대신 도서관·목욕탕을 세우고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마을협동조합으로 동네 의원과 맥줏집을 만든 충남 홍성군 홍동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면 단위 환경단체를 만들어 개발사업을 막아낸 전북 정읍시 옹동면이 그런 곳이다. (마을 버스·공중목욕탕·동네 술집…우리 동네에 필요한 것, 우리가 직접 만드는 ‘읍·면 자치 1번지’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7813.html )

이렇게 무수한 성과를 이룬 마을도 여전히 권한은 부족하다. 중학교로 가는 마을버스 시간대를 조정 못해 학생들이 아침 6시40분에 등교하는 형편이다. “ 마을자치버스 필요성을 설명해도 ‘생떼 부리는 민원인’으로만 보는 듯 싶”고 “공무원들은 (협동조합을) 파트너라기보단 수익사업 기관으로 본”다. 마을에 필요한 것은 주민이 가장 잘 알지만, 자원을 집행할 권한은 마을과 분리된 공무원이 독차지한다.

한겨레21이 만난 주민들은 ‘수도권이 지역을 위해 뭘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뒤집었다. ‘지역이 하고 있는 일에 어떻게 자원을 더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행정단위가 아니라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통치와 시혜로 일관하던 태도를 바꿔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발견하는 일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25년 7월24일 전북 정읍시 옹동면사무소 앞 옹동면환경연대 사무실에 옹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석산 개발 반대’ 모금 활동을 한 상자들로 만든 조형물이 놓여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24일 전북 정읍시 옹동면사무소 앞 옹동면환경연대 사무실에 옹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석산 개발 반대’ 모금 활동을 한 상자들로 만든 조형물이 놓여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3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앞에 금창영 홍동의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서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3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앞에 금창영 홍동의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서 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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