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24일 전북 정읍시 옹동면 일리마을 수호목 앞에서 옹동면환경연대 사람들이 섰다. 왼쪽부터 1990년대 초 옹동면 농민회장을 지낸 고영규씨, 엄성자 기획실장, 한윤희 사무국장(일리마을 이장). 이런 고목나무가 옹동면 33개 마을마다 굳건하게 서 있다. 김양진 기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구는 수도권으로 흡수됐다. 그런데 지역 단위에서도 상대적 도심인 ‘읍내’로 인구가 흡수됐다. 국토 면적의 73.7%로 농업 등 1차 산업 기반이 몰려 있는 ‘면’에 사는 사람은 지난 10년 새(2015~2025년) 10.9%(492만6571명→439만462명)나 줄었다. 반면 ‘군’ 지역의 중심지인 ‘읍’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기간 11.5%(456만641명→508만3442명) 증가했다. 그러면서 면 단위 지역에서 학교와 파출소, 보건소 등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도 수가 줄거나 통폐합됐다. 면 단위 주민들은 병원이나 식당에 한번 가려 해도 ‘읍’까지 원정을 가야 할 형편이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도심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형성하는 중앙주의적 정책이 만들어놓은 결과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모여 자치생활권을 만들고 힘을 모아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협동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낸 곳이 있다. 충북 옥천군에 있는 안남면과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동면, 전북 정읍시에 있는 옹동면 사람들이 그들이다. 한겨레21이 현장을 찾아 이들이 만들어낸 자치와 협동의 기적을 들여다봤다.

2025년 7월30일 충북 옥천군 안남면 배바우도농교류센터 앞. 왼쪽부터 신복자 배바우도농교류센터 사무장, 임해란 덕실마을 이장, 정혜밀 옥천고등학교 1학년 학생, 송윤섭 옥천군의원. 김양진 기자

충북 옥천군 안남면 어린이들이 귀가를 위해 마을자치버스를 타고 있다. 임해란 제공
충북 옥천군에 있는 안남면은 대청호 상류 지역이다. 2025년 1월 현재 1334명이 산다. 옥천군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은데도 ‘읍·면 자치 1번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6년 지역 쇠퇴를 고민하던 주민들이 모여 ‘안남면 의회’를 꾸렸다. 12명이던 이장을 마을별로 1명씩 더 선출하고, 지역 각종 조직 대표 10여 명까지 ‘비례대표’ 몫으로 의회에 참여하게 했다. 이름은 지역발전협의회(안남협의회)로 정했다.
안남면은 금강 상수원보호구역에 자리 잡고 있어 매년 6억원가량의 금강수계관리기금을 지원받는다. 그동안은 마을별로 나눠 다리를 놓거나 마을회관을 증축하는 등 토목공사에 이 기금을 주로 썼다. 하지만 안남협의회는 이 기금 가운데 매년 1억4천만원 정도를 따로 모아두고 10년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 투자하기로 했다. 이후 전문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지역 여건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주민 의견도 심층 청취했다. 이 과정에서 도농교류센터와 로컬푸드 직거래 매장, 유기농업 전환 등 경제 부문 계획과 작은도서관, 마을버스, 목욕탕, 마을요양공간 등 복지 부문 계획이 도출됐다.
그 첫 결과물이 2007년 7월 문을 연 배바우작은도서관이다.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이 면 단위에 설치된 첫 사례였다. “책도 읽으면서 주민들 사랑방으로 이용할 수 있고 학생들 방과 후 생활, 보육, 돌봄 공간도 필요했어요. 성인 문예 교육 장소도 필요했고요.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였어요.” 2025년 7월30일 배바우 도농교류센터에서 만난 송윤섭(진보당) 옥천군의원이 말했다. 송 의원은 덕실마을 이장과 안남어머니학교 교장을 지냈다. 배바우도서관에는 논밭이 딸려 있다. 이곳에서 수확한 쌀 등으로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간식과 음식을 제공한다. 혼자 사는 노인 24명에게 반찬도 배달한다.
“10년 전 안남면에 와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이 도서관에서 참 잘 자라줬어요. 다른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는데,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하기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2023년부터 이 모든 일을 운영·관리하는 임진숙 배바우작은도서관 사무국장이 말했다.
컨설팅 결과 주민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한 문제는 교통이었다. 여느 농촌 마을처럼 읍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면 소재지 정도만 다녀갔다. 대부분 마을 주민은 면사무소 프로그램이나 작은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없었다. 이에 안남협의회는 2008년 초 버스를 사들였다. 그런데 옥천군이 관련 법령(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근거로 마을버스 운행에 난색을 보였다. ‘운수 사업자가 아니면 버스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연서명을 제출하고, 직접 운수회사를 찾아가 설득했다. 군청에서 ‘작은도서관 셔틀버스 명목의 마을버스 운행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냈다. 그 과정이 1년6개월 걸렸다. 2009년 6월 윗마을·아랫마을 하루 8번 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주민들이 더 자주 만나고 머리를 맞댈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주민들이 안남면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스스로 결정한 자치 경험은 무형의 생활 기반이 되고 있다. “읍(옥천읍)에 가서 안남에서 왔다고 하면 ‘좋은 데 사시네요’라고들 해요. 주변 읍·면과 분위기가 다른 건 사실이에요. ‘옥천신문이 안남신문이냐’라고 할 정도로 안남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많이 소개해요. 카페·식당만도 4곳씩 있어요.” 임해안 덕실마을 이장(안남초교 학부모회장)이 말했다.
읍·면 단위 행복도 조사는 드문 일인데, 옥천군이 조사한 ‘2014 옥천비전’ 자료를 보면, 9개 읍·면 중 안남면의 행복도가 8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청산면(60%), 안내면(54%), 청성면(47.62%)은 물론 옥천읍(44.84%)보다도 월등히 높았다.
2024년 4월엔 ‘안남 개울가’(목욕탕 겸 체력단련장)가 들어섰다. 옥천군 면 단위에 들어선 첫 번째 공중목욕탕이다. 안남협의회가 최근 가장 역점으로 삼는 일은 ‘마을요양공간’ 마련이다. 죽을 때가 돼 낯선 사람의 돌봄을 받는 일은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함께 늙어온 이웃들과 서로 돌보며 마지막 순간을 맞는 따뜻한 공간 마련에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2025년 7월3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우리동네의원 앞에 금창영 홍동의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서 있다. 김양진 기자
충남 홍성군 홍동면은 주민 3276명이 사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안학교와 협동조합, 유기농업, 지역신문이 들어선 마을이기도 하다. 2025년 8월 현재 40여 협동조합과 100여 소모임이 활동한다.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에서 부족한 생활 기반을 주민들이 협동으로 채워넣고 있다. 이를테면 2011년 3월 들어선 ‘동네마실방 뜰’은 ‘술집 협동조합’이다. 2010년 가을 홍동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술집이 문을 닫자 술꾼(조합원) 100여 명이 1800만원을 출자해 만들었다. 비조합원도 환영이다. 홍동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갓골생협(풀무학교 생협)에서 만든 빵 등을 이용한 안주를 마련해놓았고, 홍동면 주민이 하는 브루어리(이히브루)에서 토종쌀 조동지로 만든 맥주(비온뒤)를 판매한다. 홍동면 여성농업인회와 함께 채식 메뉴를 개발하는 등 채식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읍내까지 (술 마시러) 가면 돌아올 차도 없고 하니 불편해서 만들었죠. 술집을 생업으로 하면 면 단위에서 운영이 쉽지 않지만, 협동조합으로 만들면 수익이 나지 않아도 지역 주민들이 즐길 수 있어요.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고, 또 수익 걱정은 좀 덜하면서 오래 유지할 수 있죠.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를 내고 나면 매출하고 딱 떨어지는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이동근 ‘동네마실방 뜰’ 매니저가 설명했다.
홍동면에선 2015년 5월 비수도권 면 단위에선 유일한 의료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인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홍동의료사협)이 결성됐다.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우리동네의원’이 매일 문을 연다. 공중보건의가 있어도 인원이 부족해 순회 근무로 보건지소에는 1주 2~3회 모습을 드러내는 일반적인 면 단위 보건의료 현실과 대비된다. “저희는 원장이 항생제도 카피약도 잘 안 써요. 웬만하면 수액 좀 놓아달라고 해도 ‘콩 갈아 마시면 된다’고 돌려보내죠. 물리치료사는 1시간도 넘게 물리치료를 해줘요. 밭일하다 손이 퉁퉁 부어오른 어르신들에게 ‘쉬라’고만 하지 않아요. 시간이 걸려도 방법을 같이 찾아보지요. 진심으로 존엄하게 대해요. 어르신들은 굉장히 행복하죠. 홍동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일부러 저희 의원을 찾아옵니다.” 2025년 7월30일 우리동네의원에서 만난 금창영 홍동의료사협 이사장이 말했다.

홍동의료사협의 ‘창립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건강한 삶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 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마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질병의 치료를 넘어 몸, 마음, 관계의 편안을 돕는다.’
이런 홍동의료사협에선 누가 시키지도 이익이 남지도 않지만 다른 의료사협에서 하지 않는 각종 사업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이동이 불편한 주민의 집을 찾아가고, 건강한 음식을 아픈 주민들에게 배달하고(‘꾸러미 배달부’), 남성 노인들이 함께 모여 점심을 먹는 모임(아버지 정서지원 모임 ‘노들’)을 만들었다.
인구 3천여 명인 작은 농촌에서 이런 선한 일이 끊이지 않고 풍성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금창영 이사장은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동네의원이 금평리에서 운월리로 이전하면서 2023년 1~4월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졌다. 동네 목수 한 명에게 일을 의뢰했지만, 젊은 주민 10여 명이 “도울 일 없냐”며 모여들었다. 점심때가 돼 우르르 식당에 가면 누군가 계산하고 나가버린다. 공사장 앞에 음료 등 간식거리가 줄 세워져 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다 먹지 못할 만큼 긴 줄이 섰다. “정말 감동이었어요.” 금 이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수익을 못 내서 배당도 없고, 특별히 조합원(2025년 7월 기준 686명)이라고 혜택도 주지 못해요. 그런데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요. ‘무슨 혜택? 의원이 있는 게 이미 혜택이지!’라고들 하세요.”
1958년 이찬갑·주옥로 두 독립운동가가 세운 최초의 대안학교, ‘더불어 사는 평민’ 교육을 추구하는 풀무학교(현 농업고등기술학교)는 이렇게 일상적으로 협동하는 홍동면 마을 분위기의 기원이다. “우리나라 첫 협동조합인 풀무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풀무신용협동조합이 각각 1959년, 1969년 풀무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해마다 총회를 하는데, 조합원 700~1천 명이 참석합니다. 예·결산 의결하고 이사장을 뽑는 과정에서 회의합니다. 모여서 의견을 나누는 데 익숙하고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이 체화된 거죠. 부족한 게 있으면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찾게 되죠. 장터 할머니들이 반찬을 팔려고 할머니장터협동조합(2012년)을 결성하고, 각종 농촌 문제를 연구하려고 일소공도(‘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풀무학교 교육관에서 딴 이름) 학회 협동조합(2015년)을 만듭니다.” 풀무학교 1회 졸업생 이번영 ‘풀꽃’(홍동 지역 월간지) 편집인이 설명했다. 그는 1988년 홍성신문 창간을 주도해 첫 10년간 편집국장을 맡았다.

홍동면 협동의 아름다운 전통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법·제도의 뒷받침 없이) 진심으로 연대하고 함께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그런 건 책에만 나오는 거예요. 그런 건 (현실에선) 잘 안 됩니다. 우리 병원이 다른 면에 또 생길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 우리 병원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부정적입니다.” 금 이사장이 말했다.
읍·면·동 주민자치회 구성·운영·재정지원 등 조항은 ‘지방자치법’ 개정 때마다 거론되지만 “역량 부족” “시기상조” 등의 이유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삭제됐다. 하지만 이제 더는 시기상조가 아니라는 게 홍동면 사람들의 견해다.
“2025년 1월부터 보건복지부 ‘재택의료기관 시범사업’에 선정돼 의사 1명을 더 모집하고 있는데, 아예 문의조차 없습니다. 홍동면·장곡면에 중학교는 홍동중 하나뿐이에요. 장곡면 학생들이 등교하려면 매일 아침 6시40분 버스를 탑니다. 군청과 교육청에 30~40분만 버스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몇 년째 요구하고, 마을자치버스의 필요성을 설명해도 ‘생떼 부리는 민원인’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사회적경제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파트너라기보단 수익사업 기관으로 봅니다. 주민 자치 요구는 어쩌면 ‘진짜 소멸’을 앞둔 마지막 발버둥일지 모르겠네요.” 금 이사장이 말했다.

2023년 전북 정읍시 옹동면 상두산 한 석산개발업체 앞에 주민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옹동면환경연대 제공
전북 정읍시 옹동면도 처음부터 주민 자치가 활성화한 곳은 아니었다. 농촌이 쇠퇴하고 ‘석산 개발’(산을 깎아 골재 채취) 등 막개발까지 맞물리면서 옹동면 인구는 1995년 3332명에서 2025년 1562명으로 줄었다. 면 전체에 마트라곤 하나로마트 옹동점이 전부이고, 식당 한 곳 없다. 하지만 대도시에만 있는 환경단체가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옹동면에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3월 결성된 옹동면환경연대다. 2025년 8월 현재 회원은 60여 명이다.
시작은 옹동면에 있는 상두산(해발고도 574m)과 비봉산(332m)에 석산개발업체가 난립하면서다. 1997년 상두산에 석산개발업체 ㄱ사가 들어섰고, 이 업체는 2024년 11월 종료 예정이던 상두산 석산 개발 연장 신청을 2022년 8월 냈다. 2021년 2월엔 또 다른 석산개발업체 ㄴ사가 비봉산 자락에 골재선별장 신규 허가를 신청했다. “처음엔 ㄱ사가 ‘흙 좀 몇 차 퍼가겠다’고 집집이 음료수 한 상자씩 사들고 찾아와 도장을 받아갔어요. 이런 건 줄 몰랐죠. 발파 소음과 비산먼지 등으로 20년을 고통받았어요. 그런데 정읍시를 찾아가니 시는 오히려 업체들 편을 들었어요. 덤프트럭을 경운기로 막아 세웠더니 경찰은 농민들을 잡아다 구속했어요. 저희 환경운동은 기본권 운동 같은 거예요.” 박운성 옹동면환경연대 부회장이 말했다.
주민들은 107일 동안 돌아가면서 옹동면사무소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옹동면환경연대는 석산개발업체들이 환경영향평가서에 써놓은 저감 대책들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은 점 등을 발로 뛰며 조사했다. 엄성자 옹동면환경연대 기획실장도 2022년 집에서 300m 거리에 신규 석산 개발이 시작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자료 찾는 일을 거들면서 무보수 상근자로 일하게 됐다. “경험이 없어서 처음엔 등기부부터 떼고 시청·환경청에 물어보는 일을 시작했어요. (석산개발업체가) 산을 파먹을 때 서류에는 단계별로 복구한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안 했어요. 계단식으로 20m씩 파고 들어가는데, 계획보다 몇 계단을 더 깊게 파냈더라고요. 발파도 비산먼지도 더 많았겠죠? 하천 오염도 더 심각했던 거고요.”

2025년 7월24일 전북 정읍시 옹동면 상두산에 석산개발업체가 굴착기로 산을 파고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24일 전북 정읍시 옹동면사무소 옆 소나무에 옹동면환경연대의 ‘석산 개발 반대’ 팻말이 붙어 있다. 김양진 기자
피해는 심각했다. 소송 과정에서 정읍시동학시정감시단 등 요청으로 정읍시가 2023년 ‘상두산 환경오염도’를 조사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5개 석산개발업체가 풀가동하면서 하루에 드나드는 덤프트럭이 1천여 대에 달했다. 매일 반복되는 발파에 집 벽에 금이 갔다. 마을에 비산먼지가 풀풀 날리고 냇가 바닥에 돌가루가 내려앉아 흔했던 다슬기·미꾸라지·중태기(버들치)·민물새우가 자취를 감췄다. 물이 오염되고 메말라 농사지을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석산 인근 영상·상기·저상 지역 주민들이 폐병과 피부병 등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렀다. 가축들도 죽어나갔다.
정읍시는 결국 개발 연장 신청 불허 결정을 내렸고, ㄱ업체와 ㄴ업체의 반발로 행정소송까지 갔지만 2025년 5월 모두 승소했다. 2025년 5월23일 승소 축하 ‘옹동면 마을잔치’가 열렸다. “폐암을 앓던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석산은 가슴속 돌덩어리’라고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한 달도 안 돼 돌아가셨어요.” 엄성자 기획실장의 회고다.
환경 문제로 모인 주민들의 자치 역량은 각종 다른 현안에도 달라진 대응을 낳았다. 2024년 경찰청의 면 단위 치안센터 축소 방침에 따라 옹동면 치안센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장협의회가 옹동면환경연대와 펼침막을 내걸고 정읍경찰서 등에 반대 의견을 냈다. 2021년 982곳이던 치안센터가 2024년 741곳으로 241곳이나 줄었지만, 옹동면 치안센터는 지켜낼 수 있었다.
옹동면 마을 주민들은 앞으로 면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마을 보물지도 만들기’ 등 사업을 준비하고 있고, 마을 식당과 카페 등도 만들 계획이다. 주민 오은섭씨는 “옹동면환경연대 활동으로 옹동면 주민들이 전보다 훨씬 더 연합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아직도 직접 나서지 않는 주민이 많지만 속으로라도 응원하고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장협의회 등 단체들이 있지만 지역 현안을 의논하는 역할보다는 ‘위’에서 내려온 걸 전달하는 일에만 치중해왔어요. 시가 아니라 면 주민들이 결정하고 고민하게 하는, ‘아래’에서 시작되는 자치가 됐으면 해요.” 엄성자 기획실장이 말했다.
옥천(충북)·홍성(충남)·정읍(전북)=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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