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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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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2세 후유증, 딱 세 질환만 인정… 이마저 ‘원님 재판’”

김지우 고엽제2세3세피해자연대 대표 “1세대처럼 다양한 질병 인정하고 종합 판정 체계도 갖춰야”
등록 2025-07-17 21:10 수정 2025-07-23 11:05
2024년 7월29일 강원도 원주의 자택에서 만난 김지우씨가 고엽제 후유증인 염소성 여드름 증상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염소성 여드름은 고엽제 독성에 의해 일어나는 독성 피부발진으로, 대법원도 고엽제와 연관성 있는 질병으로 인정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4년 7월29일 강원도 원주의 자택에서 만난 김지우씨가 고엽제 후유증인 염소성 여드름 증상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염소성 여드름은 고엽제 독성에 의해 일어나는 독성 피부발진으로, 대법원도 고엽제와 연관성 있는 질병으로 인정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김지우(사진)씨는 고엽제 후유증의 대물림을 알리는 ‘고엽제2세·3세피해자연대’의 대표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아버지의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돼 기형아로 태어났다. 척추 기형에 따른 하지마비로 보행 및 배뇨 장애가 있다. 30대부턴 온몸을 찌르는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말초신경병을 진단받았다. 평생 몰랐던 선천성 장애와 고엽제의 연결고리를 40대에 깨달았다(“고엽제 후유증 인정 받으려 1만5천장 병원기록 봤다”).

권리에 눈뜬 고엽제 2세를 보호하기에 현행법 체계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고엽제법에 따라 24가지 질병이 후유증으로 인정되는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3가지 질병( 말초신경병·척추이분증·하지마비척추병변)만 인정된다. 그마저도 중복장애(두 종류 이상의 장애가 중복됨) 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김씨는 척추 기형으로 파생된 3가지 질환을 모두 가지고 있으나, 법적으론 척추이분증과 하지마비척추병변 장애만 ‘중등도’로 인정받았다. 그가 고엽제 2세의 장애 판정 체계를 대폭 손질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2025년 7월16일 김씨와 유선으로 이야기 나눴다.

 

—법이 보호하는 고엽제 2세 범위가 매우 좁다.

“고엽제 2세로 인정되려면 법이 정한 3가지 장애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 그것도 법 시행령에 따라 ‘등급’(장애의 심각성)을 달리 준다. 예를 들어 똑같이 척추이분증이 있어도 ‘한 손 또는 한 발에 경도의 기능장애’가 있으면 경도, ‘간병인이나 보조기(지팡이는 제외)에 의존해야 보행 가능’하면 중등도인 식이다. 여러 장애를 가졌어도 등급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중등도 장애가 4가지나 있는데도 계속 고도가 아닌 중등도다. 왜 정부가 마음대로 정한 기준에 우리를 끼워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1세대 참전군인에 견줘 2세의 장애 판정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문제 제기했다.

“중복장애가 있으면 그만큼 일상생활이 힘들다. 그래서 1세대 고엽제후유의증환자는 장애가 많으면 등급을 올려서 판정한다. 경도 장애가 셋 이상이면 중등도 장애, 중등도 장애가 둘 이상이면 고도 장애로 판정하는 식이다.(고엽제법 시행령 별표1) 그런데 고엽제 2세한텐 그런 기준이 없다.(고엽제법 시행령 별표2) 장애가 얼마나 겹치든 그냥 단일 등급으로만 판정한다.”

 

—등급 승격이 왜 중요한가.

“나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몸 쓰는 일을 할 수 없다. 체력이 떨어지면 바로 염증이 온몸에 번져 병원 신세를 진다. 하지마비로 보행장애가 있어 자주 넘어지고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렵다. 배뇨장애로 비뇨기과와 재활의학과를 다닌다. 말초신경병 통증으로 항정신성 약을 먹기에 사무 업무도 오래 할 수 없다. 한 달 약값만 50만원씩 나온다. 중등도 장애에서 고도 장애로 판정이 바뀌면서 수당이 느는 건 단순 금전 문제가 아니다. 간단한 외출조차 부담되는 상황에서 생활 안정성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토대다. 대를 이어 유전되는 고엽제 후유증에 국가가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

 

—국가보훈부의 장애 판단 기준도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준 적용이 고무줄이다. 같은 질병을 진단받은 회원들이 고엽제 2세를 신청하면 어떤 것은 인정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 말로는 진단서 문구가 시행령 기준과 똑같아야만 등급을 준다는데, 인정된 사람들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 차이를 보훈병원에 문의하면 ‘의사 판단’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합당한 설명도 없이 ‘불복하면 행정심판하라’는 식이다. 돈 없는 사람이 행정심판까지 해야 하나.”

 

—판단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고엽제 2세도 1세 와 동일하게 증상을 폭넓게 인정하고 장애 종합 판정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보훈부의 깜깜이식 판정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1세에겐 국가유공자법 등이 있지만 고엽제 2세에겐 이 법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장애등급제도 등 다른 방법은 없나.

“거기서도 떨어졌다. 복지부 장애등급을 받으려면 장루와 요루 장애, 즉 장기에 구멍이 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어서다. 근로능력 불가 판정을 받았고 일상이 힘들 만큼 장애가 있는데 꼭 그런 기준으로만 판정해야 하나. 의학적·기능적 유사성으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국가유공자법상 유공자 자녀의 미성년장애에도 해당이 안 된다. 고엽제법으론 선천적 척추 기형이라는데 국가유공자법으론 미성년장애가 아니란다. 정작 나는 병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데, 희귀질환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 여기도 저기도 해당이 안 된다는 게 황당하다.”

 

—한겨레21에 하실 말씀이 있다면.

“피해자연대에 조언해주신 임종한 인하대 교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에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하더라. 2024년 9월 한겨레21(제1531호 참조) 기사 덕분에 기존 300명이던 회원이 순식간에 1200명으로 늘었다. 보도가 없었더라면 이분들은 지금도 정보 부족과 절차 미비로 구제를 못 받았을 거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현실을 더 많은 분께 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피해자연대도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많은 분이 자신의 증상과 가족력 등을 공유해주셨다. 연대가 그 질환 유형별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 국가보훈부에 직접 제출할 예정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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