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려지는 듯했던 ‘출생의 비밀'은 2세에게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3세마저 영향이 이어졌다. 아프면서도 이유를 몰랐던 참전군인의 자녀가 자신과 똑같은 병명을 아버지 병원 기록에서 찾았다. 혹은 선천성 기형을 가진 3세 자녀를 낳았다. 혹은 자기 자신도 태어날 때 선천적 기형아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유 없이 아픈 줄 알았던 몸엔 사실 명징한 이유가 있었다. 모든 시작점은 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살포된 고엽제였다.
장편기사는 분량을 쪼개어 독자들께 선보입니다.
이 기사는 “손자의 척추기형, 연결고리는 할아버지의 고엽제”에서 이어집니다.
“제가 월남 참전군인 자녀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봐요. 평소에 허리 통증이나 손발 저림이 없는지. 물어보면 처음엔 다들 ‘난 괜찮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 가서 전문 검사받아보면 아니나 달라요? 뭐가 하나씩 다 있는 거예요.”
피해자 연대 대표 김지우씨는 1978년 샴쌍둥이로 태어났다. 국내 최초로 분리술을 받아 기형종을 떼어내고 장기를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자라면서도 배뇨장애와 보행장애로 불편을 겪었다. 2017년 온몸을 찌르는 통증으로 입원했다가 말초신경병의 존재를 알게 됐다. 법이 정한 몇 안 되는 고엽제 후유증이다. 그길로 온몸 구석구석을 찍어보며 몰랐던 질병을 하나씩 발견했다. 현미경적 혈뇨, 파킨슨증, 염소성 여드름….
“그 전엔 막연히 ‘내가 아프게 태어났나보다’ 했어요. 그런데 40대 들어서니까 일상이 안 될 만큼 몸이 아프고 말초신경병 진단까지 받은 거예요. 아이는 20대 중반인데 다낭성 난소증후군이고요. 그러면서 고엽제와의 연관성이 보였어요.”
아버지 김석기씨는 생전 베트남에 관한 언급을 일체 피했다. 베트남전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우들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 탓이다. 안케패스 전투는 베트남전 참전 이래 단일 전투 중 가장 많은 한국군 사상자(군인 쪽 집계 173명)를 낸 전투다. 지우씨는 성인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것과 자신이 선천성 기형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점차 나이 들수록 몸 곳곳이 아프면서 본격적으로 고엽제 후유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법이 인정하는 고엽제 피해자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1세의 경우 병명에 따라 피해자 자격이 달라진다. 다발성경화증, 당뇨, 염소성 여드름 등은 법이 정하는 ‘고엽제 후유증’인 반면 뇌경색과 중추신경장애 등은 후유증 의심 증상, 즉 ‘후유의증’으로만 분류된다. 후유증인 자는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지만 후유의증인 자는 소정의 수당과 진료비를 감액받을 뿐이다. 다이옥신 피해가 전신에 나타나도 법적 피해자 자격은 병명에 따라 차등을 두는 셈이다.
2세의 피해자 인정 범위는 더 좁다. 말초신경병과 척추이분증, 하지마비 척추 병변 3가지만 인정된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후유의증이 아니라 후유증을 인정받아세야 한다. 법적으로 후유의증자의 자녀는 고엽제 2세로 인정받을 수 없다. 2011년 이를 문제 삼은 후유의증 자녀가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합헌 판단을 받았다.
지우씨도 2세 등록이 안 됐다. 아버지의 질병이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석기씨는 2007년 방광암을 진단받아 후유의증자로 등록됐다. 2013년엔 상세불명의 악성종양이 발견돼 신경계내분비암 진단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후유증 아닌 후유의증으로 분류됐다. 그래도 그는 2014년 급격한 건강 악화로 사망할 때까지 보훈병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1만5천 장 병원 기록이 유산처럼 남았다.
국가의 행정편의적 분류에 분노한 지우씨는 아버지의 병원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아버지 병명이 잘못 진단된 건 아닐까? 후유의증 외에 후유증도 함께 앓았던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어서 자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번역기를 돌려가며 수개월 씨름하다 서류를 하나 찾았다. 아버지의 질병이 신경계내분비암이 아니라 연조직 육종암이라는 2013년 보훈병원 진단서였다. 육종암은 고엽제 후유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초음파 검사 결과지도 있었다. ‘Soft tissue sarcoma’(연조직 육종암)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지우씨는 그 자료를 쥐고 보훈병원에 찾아갔다. 사망자 이름으로 예약을 걸 수 없어 매일 현장 접수를 했다. 아버지를 수술한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육종암이 아니냐, 이 서류들은 다 뭐냐’고.
2021년 9월, 보훈부는 김석기씨의 질병이 신경계내분비암이라는 기존 판단을 뒤집고 연조직 육종암으로 진단명을 수정했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지우씨는 담당 의사로부터 ‘착오에 따른 오진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훈부는 사실 여부를 한겨레21에 확인해주지 않았다. “김석기씨의 질병은 고엽제 검진을 통해 전문의의 의학적 소견으로 결정됐다”고만 답했다.
결국 김석기씨는 사망한 뒤에야 고엽제 후유의증이 아닌 후유증으로 판단받았다. 그는 2025년 2월 호국원에서 현충원으로 이장될 예정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확신했어요. 보훈부가 고엽제 후유증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을요.” 지우씨가 말했다.
아버지가 후유증자로 변경되자 지우씨도 마침내 2세로 등록될 법적 자격이 생겼다. 지우씨는 자신을 분리 수술한 의사를 찾아가 출생 당시와 현재 몸 상태를 비교한 진단서를 손에 넣었다. 선천성 척추기형과 심장 및 신장 기형이 진단서에 자세히 적혔다. 여기엔 고엽제 2세 질병으로 인정되는 ‘척추이분증’도 있었다. 이 역시도 두 번을 비해당 처분받고 세 번째 청구한 끝에야 고엽제 2세로 인정받았다. 인정 결정이 나온 건 2023년 6월, 지우씨가 싸움을 시작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지우씨 가정만의 일은 아니다. 피해자 연대 회원들은 저마다 보훈부와 긴 서류 싸움을 벌인 경험이 있다. 고엽제 후유의증과 고엽제 2세는 대학병원 진단서가 있어도 보훈병원 신체검사를 의무적으로 다시 받아야 하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한다. 보훈부의 판단 기준은 비공개이며 탈락 사유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만 국가유공자라는 이유로 신체검사를 면제받는다.
1993년 법 제정 이래 현재까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된 인원은 7만5371명, 후유의증으로 인정된 자는 8만6114명이다. 반면 고엽제 2세는 211명에 그친다. 1998년 2세 지원이 법에 추가된 이후부터 셈하면, 연평균 8명씩 인정된 셈이다. 법이 정한 병의 심각성(등급)을 통과 못해 수당 대신 진료비만 일부 감액하는 ‘등급외’도 포함한 인원이다.
20여 년간 법이 정한 후유증 및 후유의증 인정 범위가 점차 늘어난 반면 2세 질병은 조금도 확대되지 않은 탓이다. 또한 보훈부가 책정한 예산이 지나치게 적다는 문제도 있다. 보훈부가 매년 고엽제 수당으로 책정하는 예산은 3천억원. 이 돈으로 후유의증자(상이군경 중복 지원 제외)와 고엽제 2세를 모두 지원해야 한다. 보훈부가 피해자 관점에서 신청을 폭넓게 받아들이기보다 까다로운 진단기준을 들이미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30만 명이 1명씩만 애를 낳아도 30만 명 아닌가요. 근데 보훈부가 인정한 고엽제 피해자가 고작 200명밖에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오승미씨는 4년째 고엽제 2세 ‘등록 중’이다. 2019년 순천향대병원 등에서 말초신경병을 진단받았으나 아픈 부위가 몸 전체 신경의 50%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록이 거절됐다. 보훈부가 참고한 의학 논문 자료까지 찾아내 소송을 준비했지만 최근 패소했다. ‘몸의 19 신경 중 5 신경’만 이상 소견을 보였다는 이유다.
승미씨 역시 자녀가 아프기 시작한 뒤에야 고엽제 유전 가능성에 직면했다. “저도 어려서부터 아팠죠. 20대부터 당뇨가 왔고 가슴엔 원인 모를 혹이 20개나 있어요. 생리 불순도 엄청 심했고요. 막연하게 ‘고엽제 영향 받았겠구나’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 출산 2년 뒤인 2019년부터 손발 저림이 심해졌어요. 하루 종일 손이 떨리니까 아기를 안다가 놓칠 뻔하고요. 병원에서 말초신경병 진단을 받고 (유전을) 확신한 거죠.”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승미씨 아버지도 같은 병을 앓았다. 승미씨가 정보공개청구로 확인한 아버지의 병명엔 고혈압과 당뇨, 말초신경병, 비호지킨임파선암이 있었다. 모두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되는 병이다. 이 중 말초신경병과 당뇨는 승미씨도 어릴 적부터 앓았다. 유년 시절의 신체적 고통이 단번에 이해됐다.
3세 아이에게도 증상이 찾아왔다. 아이가 놀이터에 가면 자꾸만 넘어졌다. 병원을 전전하며 알게 된 병명은 무혈성 괴사. 대퇴골두에 피가 돌지 않아 뼈가 썩는 병이다. 발달도 느렸다. 말문이 잘 터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2022년 지적장애를 진단받았다. “무혈성 괴사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을 때 올 게 왔구나, 그게(고엽제) 아이한테도 갔구나 생각했죠. 저만 아팠으면 그냥 있었을 텐데 아이가 아프니까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승미씨가 말했다.
승미씨는 아직도 자신이 고엽제 후손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제가 최근 보훈병원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옆에 앉은 참전군인 아내분이 ‘너는 왜 왔니’ 묻더라고요. 노인들 사이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니 신기했겠죠. 고엽제 2세라서 왔다니까 엄청 놀라면서 ‘그게 유전이 되냐’는 거예요. 본인은 아직도 자녀들에게 (남편 고엽제 후유증을) 말 안 했다고요.”
많은 참전군인이 트라우마 때문에 전쟁 자체를 언급하기 꺼린다. 고엽제 후유증인지도 모른 채 혼자 앓는다. 그로 인해 병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할 시간을 놓친다. 지우씨가 틈날 때마다 참전군인 모임에 찾아가 고엽제 피해를 알리는 이유다. “아버지처럼 억울하게 잘못 진단된 사람 있을까봐, 사람들이 죽을 만큼 아파야 고엽제구나 생각할까봐”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다.
피해자 연대의 요구는 간명하다. 피해가 확인된 2·3세 유전 사례에 대해 국가가 전문적인 연구·조사를 할 것. 그 결과를 토대로 고엽제 피해자를 책임지는 법체계를 만들 것. 참전군인 자녀의 고엽제 유전 위험을 국가가 직접 알릴 것.
“고엽제 피해의 본질은 독성물질에 의한 환경재난이에요.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요.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여러 양상으로 피해가 계속돼요. 정부가 그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우씨가 말했다.
원주·청주·천안·인천=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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