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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녕 남민전 아니다”, 이재오의 정체성 투쟁

등록 2024-10-11 20:40 수정 2024-10-14 08:51
2005년 1월19일 홍세화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오른쪽)과 대담하고 있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의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05년 1월19일 홍세화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오른쪽)과 대담하고 있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의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024년 10월8일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45년 만이다. 당시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된 이 이사장은 2024년 5월 재심을 신청했고, 법정 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다만 대부분의 공안사건 피해 당사자가 재심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다투는 것과 달리, 이 이사장은 자신이 남민전과 무관함을 인정받고자 했다. 재판부는 남민전 가담 근거가 없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이사장은 전부터 남민전과 ‘선 긋기’를 해왔다. 2005년 1월 홍세화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과 한 대담에서 “나는 민투(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전선(남민전) 쪽과는 좀 달랐다”며 “남민전은 ‘진보적 민주주의’, 민투는 ‘폭넓은 민주주의 실현’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2006년 남민전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을 때, 신청조차 하지 않은 단 두 사람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홍세화와 이재오였다. 홍세화는 자신이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 선배와 동료들이 겪은 고문에 “무임승차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밝혔다. 이재오의 경우 이번 재심이 이유를 대변한다.

이 이사장은 대표적인 전향 정치인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총 10년6개월 옥살이까지 했으나,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하며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가령,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이던 1989년 범민족대회 실무회담을 하러 판문점에 가다 구속된 그는 2001년 8·15방북단 파문의 책임을 물어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주도했다. 이명박 정권 때는 최고 실세였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장으로, ‘전향 동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뉴라이트 사관을 비판한다. 이번 재심이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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