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고엽제 3세 유전 가능성을 확인하겠다면서 인체 유전과 무관한 연구기관의 자문을 받겠다고 밝혔다. 정작 ‘조사 사례자로 참여하겠다’는 피해자들의 요청은 거절했다.
보훈부는 2024년 10월2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고엽제 3세 의학적 유전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 자문을 실시해 가능성이 확인되면 역학조사 근거 마련을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시로 “국립환경과학원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등 다이옥신 관련 전문기관 및 전문가 등”을 들었다.
이는 사흘 전인 10월22일 ‘고엽제 3세 유전 피해에 대한 역학조사를 검토해달라’는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요구로 보훈부가 만든 계획이다. 앞서 한겨레21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고엽제 후유증이 자녀를 넘어 손자에게도 발현되는데 법적 보상은 여전히 2세대에 한정돼 있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손자의 척추기형, 연결고리는 할아버지의 고엽제)
그러나 보훈부가 자문받겠다는 기관은 생식 독성 물질의 후세대 유전을 연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산업단지 폐수 등 환경 오염에 따른 유해성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식품·화장품 등의 유해성을 연구한다. 두 기관은 고엽제 관련 연구도 진행한 바 없다.
게다가 다이옥신의 반감기(체내 활동 기간)는 7~11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1세대 참전군인 몸에서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2·3세대는 다이옥신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다이옥신으로 손상된 세포가 유전돼 병을 얻은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다이옥신 자체를 분석하겠다는 접근으로는 3세대 유전을 의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렵다.
고엽제 피해자를 20년 이상 진료한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기관이 독성물질의 인체 영향을 파악하려면 역학조사 경험을 보유하고 의학적 지식과 독성학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두 연구기관이 그 분야 전문성을 갖췄는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지우 고엽제2·3세피해자연대 대표도 “고엽제 유전 위험은 이미 여러 논문으로 밝혀졌고 베트남과 미국에서도 3세 유전 사례가 많다. 또다시 과학적 검증 논란을 할 이유가 뭐냐”고 비판했다.
정작 정부는 ‘우릴 직접 조사해달라’는 피해자들은 외면했다. 앞서 고엽제2세·3세피해자연대 회원 50여 명은 ‘제도 개선을 위해서라면 직접 연구 대상자가 되겠다’며 역학조사 참여 의사를 밝혔다. 3세 어린아이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분류되는 질병을 가졌거나(척추이분증 등) 원인 모를 병을 호소하는 경우(무혈성괴사 등)다. 그러나 보훈부는 “현재로서는 (피해자를 직접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보훈부는 고엽제 2세 판정 절차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현재 6명인 신체검사 전문의를 20명까지 늘리고 재활의학과·신경과 의사를 추가 위촉하는 등 인력 충원 방안만 제시했다. 피해자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해당’ 처분하고 그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 보훈부의 ‘깜깜이 행정’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대표는 “의사 소견이 멀쩡히 적힌 서류를 내도 ‘의사 소견이 없다’며 비해당 처분하고 일부 서류는 아예 접수를 누락하는 등 행정이 마구잡이다”라며 “이런 결함부터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그 피해를 환자들이 다 떠안는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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