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 단속, 치마·바지 길이와 폭 제한, 체벌, 성차별, 언어폭력, 보충학습 강요, 교내 휴대전화 소지·사용 금지… . 학생인권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대전의 한 공립고교는 매달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교사들이 학생의 앞머리를 일일이 눌러가며 머리 길이를 단속한다. ‘앞머리를 눌렀을 때 눈썹에 닿지 않아야 하고, 옆·뒷머리는 기계를 이용해 경사지게 깎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하면 벌점을 부과한다. 부산의 한 사립고교는 매일 담임교사가 조회 시간에 학생들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해 종례 전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23년 4월12일 학생 생활지도 규정 개정을 권고했지만,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학생인권 침해를 막고 학교를 인권친화적인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제정된 법령이 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생활의 자유, 개성을 실현할 권리 등을 보장하고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구제기구와 절차를 정하고 있다. 경기(2010년),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 충남(2020년), 제주(2021년) 등 6개 광역시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청소년들이 2000년 ‘노컷 운동’(두발 규제 반대운동)으로 학교에서의 학생인권 침해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합심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 교육이 무너진다’는 반대 주장을 뚫고 어렵게 이뤄낸 성취다.
그런 학생인권조례가 위기를 맞았다. 국민의힘 소속 충남도·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주도해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충남도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이 폐지조례안 무효확인소송과 함께 낸 폐지조례안 집행정지 신청을 대법원이 인용해 두 지역 학생인권조례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두 교육청이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 한 대법원 판결로 학생인권조례 운명이 결정된다.
이 와중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2024년 10월16일 예정된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보수 진영 후보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8대 국회 때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을 지낸 조전혁 후보는 9월5일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학생인권조례를 ‘학생권리의무조례’로 개정해 교권을 보호하고 학생들에게 책임 있는 권리 개념을 심어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22년 1월 한 인터넷 교육신문에 ‘학생인권조례, 이제 폐기하자’는 제목의 칼럼도 썼다. 안양옥 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9월9일 발표한 출마선언문에서도 학생인권 관련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안양옥 후보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당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을 지내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례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 조례 때문에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즉각 징계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생을 설득하고 변화를 유도하기보다, 벌을 주고 겁을 줘서 단번에 학생 행동을 통제하려는 교사일수록 이런 반감이 크다. 한국교총이 2023년 7월27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교 교사(99.1%)와 교육전문직(0.9%) 3만2921명 중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비율은 83.1%(2만7703명)다.
실제 통계 수치를 보면 그렇지 않다.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국회에 제출된 교육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 2023년 7월26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광역시도의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2017년 0.59건→2019년 0.61건→2021년 0.51건)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광역시도 교육활동 침해 사례(2017년 0.61건→2019년 0.62건→2021년 0.54건)가 더 많다. 현행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은 학생 또는 보호자가 교사에게 폭행, 협박, 업무방해, 성폭력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 등을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정의한다.
올해로 17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교 교사 ㄱ(42)씨는 “고교에서 주로 나타나는 교권침해 행위는 학생이 교사 생활지도에 불응하는 경우,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의 문제 행동은 교사 개인을 향한 원한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라며 “아동·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사라면 시간을 들여 그 학생의 성장 환경, 그 학생이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두루 살피면서 문제가 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교육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사가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ㄱ씨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 인권은 망했다’는 일부 교사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것을 우려했다.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순직사건 발생 이후 교권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을 때 교사들 사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목소리만 나온 건 아니었다. 일명 ‘독박 교실’ 문제, 즉 교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학교와 교육청이 공동 대응하지 않고 담당 교사 1명이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학교 문화와 제도, 사회적 인식이야말로 교사를 힘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책 ‘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의 공동 저자인 이희진 교사는 “의사도 처음에는 혼자 의료 행위를 했지만, 지금은 어떤 의사도 혼자 일할 수 없다. 간호 인력을 비롯해 병원 직원들의 협업 속에서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의사 양성 과정에서는 비정형적이지만 간호사를 대하고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진다”며 “하지만 학교는 기본적으로 팀플레이를 상정하지 않는 문화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 교사 1인 독박 체제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수년간 여러 차례 확인했으면서도, 학교에서는 공동체가 협력해서 함께 결정하고 함께 추진하는 방식보다는 특정 개인에게 각각의 업무를 독박으로 맡기는 방식만이 기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독 학생들의 의무를 강조한다. ‘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만 강조하고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는 소홀히 하느냐’는 것이다. 이희진 교사와 함께 책을 쓴 공현 청소년 인권운동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의무’를 꺼내 드는 것은 인권에 대한 해묵은 오해를 반영하고 있다. 의무를 먼저 다해야만 인권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오해다. 인권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며,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먼저 수행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공현 활동가는 “‘학생인권’이란 학생만 가지는 특별한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있고 보장돼야 하는데, 학생들이 놓여 있는 상황과 사회구조 때문에 그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왔다”며 “학생‘도’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조례 폐지를 줄곧 외치고 있다. 조전혁 후보도 출마 선언 때 “동성애 코드 등이 걸러지지 않고 학교에 침투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들과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에게 실재하는 다양한 성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남과 여 이렇게 두 개의 성으로만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은,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로 제시한 조항을 문제 삼는다.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학교는 안전하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펴낸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학교에 다니는 13~18살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중 92%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교사로부터 혐오 발언을 들었다는 응답자 비율도 80%에 달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2024년 1월9일 발표한 ‘부산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조사’는 청소년 성소수자 208명 중 76%가 학교에서 커밍아웃(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다른 누군가에게 공개)하는 것을 어려워함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은 교사로부터 “여기 성소수자 그런 거 없지?” “동성애는 금기이며 더러운 것”이라는 혐오표현을 듣거나(33%), 또래 학생들로부터 “징그럽다” “피해야겠다”는 따돌림의 말(71%)을 들어야 했다.
수영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활동가는 “학교 현장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이 겪는 인권침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교우 관계, 교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학교 시설도 성소수자를 배제한다”며 “특히 트랜스젠더(태어날 때 지정된 신체 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또는 그런 정체성) 학생은 성 정체성이 드러날까봐 ‘여자’와 ‘남자’ 이분법적 성별로만 나뉜 화장실·탈의실 이용조차 어렵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탈학교를 하는 트랜스젠더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학생들이 따돌림과 폭력을 당할까봐 자신의 존재를 말하지 못하고 아우팅(타인이 성소수자 의사에 반해 그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걱정하며 매 순간 불안을 느끼는 곳이 지금의 학교 환경이다. 이처럼 성소수자 학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학교를 포용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금지돼야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대표는 “법령 차별 금지 사유에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명시하는 조항은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당장 해소해주지는 않더라도 ‘나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알리는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라며 “우리가 지금 발견하지 못하는 차별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조항의 차별 금지 사유는 늘리면 늘렸지, 반대 목소리 때문에 축소되거나 차별 금지 조항이 삭제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학생인권조례 차별 금지 사유에서 빠지거나 조례 자체가 없어진다면, 학교가 자체적으로 성소수자 학생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고 인권침해를 낳는 문화와 구조를 스스로 바꿀 기회가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학교 밖 제도인 인권위 진정 외에 해결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서울 지역 중학교 교사인 ㄴ(43)씨는 “학생들의 다양한 삶을 존중해야 할 학교가 성소수자 학생을 포용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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