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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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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하다 자연스레 비건… 이것이 ‘시대적 추구미’

[1.5도 라이프 도전기①] 23명의 자급자족·대중교통·채식·재택
누구나 노력하지만 환경의 불균형 속에서 닿기 어려운 탄소배출 목표량 5.9t
등록 2024-08-10 16:31 수정 2024-08-14 11:42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김정열씨가 경북 상주 봉강마을의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한다. 그는 음식 대부분을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서 나오는 농작물로 해먹는다. 류석우 기자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김정열씨가 경북 상주 봉강마을의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한다. 그는 음식 대부분을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서 나오는 농작물로 해먹는다. 류석우 기자


2023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견줘 1.45도 올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향후 5년 내 1.5도를 넘길 가능성은 80%다. 전세계가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외치는 지구온도 1.5도 상승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반복되는 폭우와 폭염 같은, 기후붕괴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까. 기업과 정부 탓을 하며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어진 에너지도 제품도 결국은 인간이 사용한다. 이 때문에 국외에선 개인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서 탄소배출량 감소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소비 변화가 기업을 바꾸고 에너지 사용 변화가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겨레21은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라는 제목의 실험을 기획했다. 기후붕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한 달 동안 자신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시도도 함께하는 실험이다. 기록하는 분야는 소비와 먹거리, 주거, 교통, 여가 및 서비스 등이다. 참가자들의 탄소배출량 줄이기 목표는 2030년까지 40% 감축인 한국의 탄소중립 계획에 맞췄다. 한국인 1명당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13.6t(2018년 기준)인데, 여기에서 도로 등 공공 인프라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빼고 가구 및 개인 소비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은 9.8t 정도다. 이 9.8t에서 40%를 감축한 5.9t이 참가자들의 연평균 탄소배출량 목표 수치다. 결과부터 말하면, 23명의 시민이 참여한 이번 실험은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시민 23명의 도전기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한겨레21이 한 달 동안 매주 간담회 등을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 기후붕괴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구조적 모순에는 대중교통이나 의료 인프라의 지역 격차 문제, 최근 한겨레21이 집중적으로 다룬 학교급식실 조리원들의 노동환경 문제 등이 엮여 있었다.

소비 부문의 감축 계획을 명시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달리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은 평범한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이번 실험은 그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시작됐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줄일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 어떤 시스템은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닐까. 이번 표지이야기는 이런 문제에 관한 심층 탐사다.-편집자주

김정열(58)씨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그는 텃밭에 키우는 오크라 주변에 무성하게 난 잡초를 거침없이 베어나갔다. 잡초들 사이로 발을 옮길 때마다 메뚜기와 방아깨비 같은 곤충 수십 마리가 솟구쳤다. 2024년 7월11일, 뜨거운 여름 햇볕이 누그러진 오후 5시쯤 경북 상주시 외서면 봉강마을에 있는 김씨의 텃밭을 찾았을 때 풍경이다. 이 텃밭에서는 오이와 호박, 양배추, 단호박, 상추, 참깨, 깻잎, 토마토 등 수십 종의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김씨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작물을 길러내 소비자들과 직거래하는 농부다.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 참여한 김씨는 한 달 동안 343㎏의 탄소를 배출했다. 연평균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4.5t이다. 실험에서 목표로 정한 5.9t보다 적은 양이다. 그가 목표치 이하로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었던 건 식재료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뒤 30년 넘게 상주에 살며 농사를 지은 김씨는 10여 년 전부터는 여성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언니네 텃밭’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10명의 농부가 1년 동안 짓는 농작물 가짓수만 150여 개에 이른다. 팔고 남은 농작물은 상주 시내 장터에 팔거나 농부들끼리 나누기 때문에 김씨가 기르지 않는 농작물도 식재료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원래 고기를 즐기지 않던 김씨는 자연스레 비건이 됐다.

이날 함께한 저녁 식사도 그랬다. 김씨는 텃밭에서 양배추와 호박잎을 따서 집으로 온 뒤 채소찜을 만들었다. 강된장과 직접 만든 막걸리까지 상에 올리니 금세 근사한 밥상이 완성됐다. 점심때 다른 농부에게 받아 온 두부로 부침도 만들었다.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김정열씨가 자신의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저녁 한 상을 차렸다. 두부를 제외한 모든 음식이 그의 텃밭에서 나왔다. 류석우 기자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김정열씨가 자신의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저녁 한 상을 차렸다. 두부를 제외한 모든 음식이 그의 텃밭에서 나왔다. 류석우 기자


직접 먹을 것 생산하지만 내연기관 탄소배출 많아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서 탄소배출량을 기록하는 분야는 소비와 먹거리, 주거, 교통, 여가 및 서비스 등이다. 23명의 시민 참여자는 4주 기간 중 첫 주는 평소와 같이 생활하며 탄소배출량을 기록했고, 2~4주는 평소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생활을 하며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23명의 실험 결과를 종합한 결과, 먹거리 분야 탄소배출량이 감축 전인 첫 주에는 28.4%, 감축 뒤인 2~4주에는 24%로 공히 소비(첫 주 35%, 2~4주 3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김씨는 한 달 동안 먹거리 분야에서 105㎏의 탄소를 배출해 전체 참가자 평균인 148㎏보다 29%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 배경엔 육류를 소비하지 않고 채식 위주로 자급자족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었다.

김씨가 기후붕괴에 관심을 갖고 실험에 참여한 것도 농촌 현장에서 피부로 문제를 느껴서다.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던 2018년 여름에는 동네 할아버지가 일하다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밭에 펼쳐두고 말리던 양파가 화상을 입고 썩는 경험도 했다. 비가 오는 강도도 이전과 다름을 느낀다. 당장 이날에도 직전까지 내린 폭우 탓에 상추 끝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지역 농촌에 사는 것이 탄소배출량 줄이기에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튿날인 7월12일 아침, 텃밭에서 일을 마친 김씨는 치과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봉강마을에서 치과가 있는 상주 시내까지는 10㎞가 조금 안 되는 거리인데,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버스가 하루 3번밖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버스를 놓치면 30분 넘게 걸어가 다른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버스 역시 배차 간격이 1시간 이상이다. 김씨가 직접 차를 몰고 시내로 나선 까닭이다. “버스는 할머니들이 많이 타고, 차 있는 사람은 안 타요. 우리도 일을 하는데 시내 가려고 몇 시간을 기다릴 수 없잖아요. 바쁘니까 빨리 볼일만 보고 들어와야 하는데, 버스는 서는 곳도 한정돼 있고, 내 볼일 장소는 정류장이랑 멀리 떨어져 있어 차를 몰 수밖에 없는 거죠.”

봉강마을만 그런 게 아니다. 상주 시내에 나가도 버스는 적다. 상주시에 시내버스 회사는 ‘상주여객’이 유일하다. 이 회사가 보유한 버스는 모두 47대다. 상주시 면적이 1254㎢로 서울(605㎢)의 두 배가 넘는데도 그렇다.

게다가 치과에 가는 특수한 날만 차를 쓰는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차는 빈번하게 쓰인다. “(수확한) 농산물을 갖고 와야 하니까 걸어서 다닐 수도 없죠. 동네 슈퍼도 차로 5분 정도 가야 되고요. 계속 차를 갖고 다니니까 (탄소배출을) 줄일 수가 없어요.”

지역 교통 인프라 문제에 더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김씨의 탄소배출량을 키운 요소다. 김씨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한 달에 1~2번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닌다. 결국 김씨의 교통 분야 탄소배출량은 103㎏을 기록해 전체 참여자 평균(95㎏)보다 약 10% 많았다. “류머티즘인 것 같다는 진단은 상주에 있는 병원에서 받았는데, 잘 못 믿겠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다시 진단받았어요. 그래도 서울에 가요. 상주에도 병원은 있지만 다들 안 믿어요. 도시 사람들이 그러더구만요. 은퇴하고 나서 농촌으로 안 내려오는 이유 중 하나가 의료 문제라고.”


회사에서 채식 위주 식단 추천했다가…

그렇다면 김씨와 달리 대중교통이나 병원 같은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에 살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 경기 과천에 사는 실험 참여자 송지은(31)씨는 한 달 동안 교통 분야에선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았다. 그의 교통 분야 탄소배출량은 51㎏으로 전체 참여자 평균(95㎏)의 절반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송씨는 집과 직장인 학교의 거리가 지하철 두 정거장인데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10분, 지하철역에서 학교는 바로 앞이다. 내연기관차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중교통으로만 교통 소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송씨의 복병은 김씨와 정반대로 먹거리 분야에 있었다. 송씨는 한 달 동안 먹거리 분야에서 231㎏의 탄소를 배출해 전체 참가자 평균인 148㎏보다 56% 많은 탄소를 배출했다.

문제의 원인은 채식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송씨는 김씨처럼 텃밭을 둘 환경이 안 되기 때문에 자급자족은 꿈꿀 수 없다. 하루에 점심과 저녁 두 끼만 먹는데, 학교급식으로 먹는 점심에는 채식 메뉴가 배식되지 않고, 저녁때 외식으로 채식을 먹으려고 해도 과천에서는 채식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학교에 (채식을) 얘기해볼 수는 있지만, 저 혼자만의 의견이잖아요. 최소한 학부모나 학생 의견 수렴도 있어야 하고, (만약 한다고 해도) 학교에서 지원하는 금액이 제한적일 텐데, 그 안에서 영양사 선생님이 식단을 짜야 되잖아요. 현실적으로 어렵죠. 게다가 (밖에서도) 비건 메뉴를 먹기 힘든 게 대부분의 가게가 오후 5시면 닫더라고요. 저녁 약속으로 비건 식당을 가고 싶어도 갈 만한 곳이 없는 거죠. 그런 제약이 많았어요.”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송지은씨.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그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송지은 제공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참가자인 송지은씨.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그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송지은 제공


다만 송씨는 에어컨 사용량을 최소화해 주거 분야 탄소배출량을 줄였다. “제가 더위를 많이 안 타서 늘 부채를 써요. 집에 서큘레이터도 있고요. 최근엔 열대야 때 에어컨 사용량을 줄이려고 냉각패드도 샀어요.” 7월16일 인터뷰 때도 그는 부채를 들고 나타났다.

먹거리 분야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있어서 채식은 중요한 식습관이다. 실험 참여자 23명 가운데 비건 지향인 14명과 육식 위주로 먹는 9명을 견줘봤더니, 비건 지향 14명의 연간 평균 탄소배출량은 6t으로 감축 목표량인 5.9t과 거의 유사한 반면 육식 위주 식단을 한 9명의 연간 평균 탄소배출량은 8t이었다. 한 달에 배출하는 총탄소량도 비건 지향 14명은 먹거리 분야에서 평균 122㎏을 배출해 전체 탄소량은 평균 490㎏을 기록했는데, 육식 위주 식단을 한 이들은 먹거리 분야에서 평균 186㎏을 배출해 전체 탄소량은 평균 650㎏을 나타냈다.

최연소 실험 참여자인 고등학생 이봄(16)씨도 학교급식 상황 때문에 채식에 도전하지 못했다. 이씨가 다니는 간디고등학교에서는 채식과 비채식, 페스코 등 세 가지 식단을 제공한다. 그런데 2024년 1학기엔 급식실 인력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못하면서 이씨처럼 새로 입학한 학생들의 채식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학생들에게만 세 가지 식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려면 그만큼 학교급식실 영양사와 조리실무사 인력이 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씨는 실험 기간 동안 연평균 6.2t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만약 학교급식에서 채식 식단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5.9t 배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일반 직장에서도 채식의 길은 여전히 멀다. 경기도의 한 창업지원기관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 실험 참여자 문강현씨도 한 달 동안 채식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em>“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보려고 했어요. 업무 모임이 많아서 식당을 정해야 하는데, 고기만은 피해보자는 생각에 국수 종류와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는 곳으로 잡았거든요. 선임에게 아주 크게 혼났어요, 1시간 동안.”</em> 문씨가 남긴 실험 참여 후기다.


실험을 기획하고 자신도 실험에 참여한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연구팀장은 노동의 조건과 식습관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먹거리는 노동시간과 긴밀하게 연결돼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보통 오후 8시~8시30분이거든요. 씻고 밥 먹으면 밤 9시예요. 선택할 수 있는 건 (직접 해 먹는 게 아니라) 외식인 거죠. 혼자 사니까 돌봐줄 사람도 없고요. 특히 일이 많은 시즌에는 배달 음식도 많이 먹어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직장생활하는 사람 대부분이 비슷할 거예요.”

녹색전환연구소는 외식과 배달을 할 경우 음식과 상관없이 각각 3.4㎏, 3.7㎏의 탄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계산했다. 이는 식당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와 운영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배달의 경우 포장과 운송 과정에서 탄소가 추가로 발생한다.

*‘1.5도 라이프 도전기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923.html

과천(경기)·상주(경북)·서울·진주(경남)=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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