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방법이 없을까. 기업과 정부 탓을 하며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어진 에너지도 제품도 결국은 인간이 사용한다. 이 때문에 국외에선 개인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서 탄소배출량 감소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소비 변화가 기업을 바꾸고 에너지 사용 변화가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겨레21은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라는 제목의 실험을 기획했다. 기후붕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한 달 동안 자신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시도도 함께하는 실험이다. 기록하는 분야는 소비와 먹거리, 주거, 교통, 여가 및 서비스 등이다. 참가자들의 탄소배출량 줄이기 목표는 2030년까지 40% 감축인 한국의 탄소중립 계획에 맞췄다. 한국인 1명당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13.6t(2018년 기준)인데, 여기에서 도로 등 공공 인프라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빼고 가구 및 개인 소비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은 9.8t 정도다. 이 9.8t에서 40%를 감축한 5.9t이 참가자들의 연평균 탄소배출량 목표 수치다. 결과부터 말하면, 23명의 시민이 참여한 이번 실험은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시민 23명의 도전기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한겨레21이 한 달 동안 매주 간담회 등을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 기후붕괴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구조적 모순에는 대중교통이나 의료 인프라의 지역 격차 문제, 최근 한겨레21이 집중적으로 다룬 학교급식실 조리원들의 노동환경 문제 등이 엮여 있었다.
소비 부문의 감축 계획을 명시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달리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은 평범한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이번 실험은 그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시작됐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줄일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 어떤 시스템은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닐까. 이번 표지이야기는 이런 문제에 관한 심층 탐사다.-편집자주
‘1.5도 라이프 도전기①’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는 10개의 발전기가 있다. 이 10개의 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매일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표시된다.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영훈(31)씨는 매일 이 숫자를 본다. 그는 이곳에서 전기 설비와 관련된 유지보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em>“발전량에 따라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가히 천문학적 수치다. 유연탄, 발전효율 25%, 배출계수 0.95, 석유환산톤 0.67이라 가정했을 때 태안화력 10호기 하나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하루에 약 3만t이다. 몇백만 명이 아껴야 하루에 3만t을 줄일 수 있을까.”</em> 김영훈씨가 남긴 실험 참여 후기다.
하루 3만t은 실험 참여자들의 감축 목표인 연평균 5.9t을 배출하는 시민 187만 명이 하루에 배출하는 탄소량이다. “개인이 아무리 줄여봤자 1.5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에도 그가 실험에 참여한 건 자신이 일하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는 국내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4분의 1이 나온다. 특히 태안석탄화력발전소는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연간 약 2400만t의 탄소가 배출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때 화력발전소를 점차 없애기로 하면서, 태안석탄화력발전소는 2025년 1호기를 시작으로 순차 폐쇄를 앞두고 있다. 김씨는 2025년 이후 일자리가 사라질 불안을 안고 매일 시설을 관리하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실험에 적극 참여해 첫 주는 연 9.4t의 탄소를 배출했다가 감축을 시도한 2~4주에는 연 5.7t까지 줄였다. 김씨의 감축 전략은 자신의 삶을 극도로 제한하는 방식이었다. 김씨는 주로 주거 분야에서 물과 전기 같은 에너지를 아꼈다. 또 채식 위주로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먹거리 분야 탄소배출도 줄였다. 한 달 동안 다른 분야 배출량은 줄었지만 교통 분야(39%)로 배출량이 몰렸다.
그는 주로 주중에 자동차를 운전해 출퇴근한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인 김씨에게는 숙소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발전소에서 약 17㎞ 떨어진 곳에 원룸을 구했다. 숙소에 살지 않아도 회사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할 수 있었다면 탄소배출량을 한 달에 약 61㎏까지 줄일 수 있었지만,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인 그의 신분이 이를 가로막았다. “한전KPS는 출근 버스가 있는데 저희는 그 버스를 못 타요. 정직원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마을버스를 타면 출근 시간이 안 맞아 무조건 지각할 수밖에 없어서 운전을 하는 거죠.” 김씨가 7월1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 실험 중간점검 때 한겨레21과 만나 한 얘기다.
김씨가 통근버스를 타게 해달라고 건의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회사 쪽의 답변은 거절이었다. “정직원이 아니라 한전KPS에는 요구할 수 없고, 저희를 고용한 하청업체에 요구해야 하는데, 하청업체에선 우리가 너무 소규모 인원이니 지원할 수 없다는 말만 하는 거예요.”
김씨와 달리 집과 직장이 가깝고 서울에 살아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돼 있어도, 개인의 의지만으로 교통 분야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서울 구로구의 한 환경기술업체에서 일하는 실험 참여자 송한철(62)씨가 그런 경우다. 송씨는 경기 광명시에서 직장까지 약 5㎞를 출퇴근한다. 날이 선선하면 걸어서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있다. 송씨의 실험 결과를 보면, 식사를 거의 밖에서 해결해 먹거리 분야 탄소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많은데도 교통 분야 탄소배출량이 전체의 50%에 이른다. 이유는 잦은 출장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3번 정도 출장을 간다. 플라스틱을 선별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송씨는 지역의 재활용 선별장을 많이 돌아다닌다. 선별장들이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에 있어 차를 운전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장지에 따라 150~200㎞를 이동하는데, 이 경우 하루에 약 30㎏의 탄소를 배출한다. 실험에서 정한 하루 탄소배출 목표치인 16㎏을 이미 교통 분야에서만 두 배 가까이 초과하는 셈이다. 송씨는 실험 참여자 가운데 교통 분야에서 가장 많은 탄소(423㎏)를 배출했다.
실험을 시작하고 2주차인 7월12일, 울산의 산업단지로 출장을 가게 됐을 때 송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결심했다. 차가 아니라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울산역에 가서 30분을 기다린 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전 같으면 울산역에서 목적지인 산업단지까지 약 26㎞ 거리를 택시로 이동했겠지만, 이날은 버스를 타고 20㎞ 정도 이동했다. 하지만 시내에서 산업단지로 이동하는 버스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면 약속 시간에 늦어 결국은 택시를 타고 나머지 6㎞를 이동했다. “결국 이동한다는 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도 탄소를 배출하지만 상대적으로 봤을 때는 (이동보다) 적은 양이죠.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찾아가도 될까 말까인데, 제가 먼저 상대에게 (온라인 화상으로 대화하자며) ‘화면 앞에 앉으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얘기예요.”
실험 참여자 23명 가운데 내연기관차를 주로 이용하는 10명과 전기차나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13명의 탄소배출량은 큰 차이를 보였는데, 각각 9t과 5.8t이었다. 한 달 동안 교통 분야 탄소배출량만 견주면, 10명은 156㎏으로 13명의 49㎏보다 3.2배나 많았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판할 수는 없다. 경북 상주에 사는 김정열씨나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영훈씨처럼 사는 지역 교통 인프라나 하청업체 비정규직 신분 때문에 차를 써야 하는 경우도 그렇고, 송씨처럼 업무상 출장이 잦은 경우도 그렇고 이들 개인의 의지에만 기대 대중교통을 활용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것이다. 그래도 송씨는 대안 제시를 잊지 않았다. “비대면 회의를 하려면 공직 사회부터 진행돼야 해요. 정부 부처부터 비대면 회의를 활성화해야죠. 그러면 대기업도 따라가게 되거든요. 비대면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문화가 되면 탄소배출량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7월22일 송씨의 직장에서 한 인터뷰에서 송씨가 한 말이다.
결국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조건이 그만큼 함께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시작점은 정치다. 과천시의원인 실험 참여자 박주리(39)씨를 만난 건 비가 온 뒤 무더위가 찾아온 7월26일 아침 과천의 한 아파트 앞이었다. 박씨는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과천정부청사역에서 내려 시의회로 걸어서 출근했다.
그가 시의원이 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과천시가 소유한 버스를 전기버스로 바꾸는 것이었다. 2022년까지 과천시가 소유한 버스는 마을버스 11대와 시내버스 12대 등 23대였는데 전기버스는 없었다. 2024년 현재, 과천시 보유 버스는 35대로 늘었고, 이 가운데 전기버스가 22대가 됐다. 나머지 13대도 올해 안에 모두 전기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자가용보다도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차들이 빨리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인 게 택시나 버스, 화물차 같은 차들이거든요. 택시나 화물차는 민간의 영역이다보니 당장은 어렵고, 제일 먼저 바꿀 수 있는 게 버스더라고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당선되고) 시청 관련 부서에 계속 말씀을 드렸는데 받아들여졌어요.”
시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하기 전부터 박씨는 기후붕괴에 관심이 많은 간호사였다. 그는 정당에서 과천 지역 탄소중립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박씨가 보기에 현직 정치인들에게 기후는 늘 ‘뒷순위’였다. ‘답답해서 내가 뛴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한 계기다. “토론회도 하고 정치인도 쫓아다니면서 이런 것 좀 해달라고 하는데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예산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고 하더라고요. 그런 거 하라고 정치인이 있는 건데 무슨 소리냐면서 싸우기도 했죠.”
정치인으로서 기후붕괴에 맞서 싸우는 일을 하고 있는 박씨지만, 일상생활에서 실험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해도 연평균 5.9t 탄소배출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다만 23명의 참가자 가운데 탄소배출량을 가장 많이 줄였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실험 첫 주 박씨의 탄소배출량은 연평균 26t으로 참여자 23명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인 1명당 연평균 탄소배출량인 13.6t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하지만 감축에 들어간 2~4주차에 박씨는 연평균 탄소배출량을 13t으로 줄였다. 분야별로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소비(51%)와 먹거리(26%) 분야에서 절반 이하로 줄인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박씨가 유독 탄소배출량이 많았던 건 정치인이라는 직업적 특성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까닭이 컸다. 7월13일 실험 중간점검 때 박씨는 이렇게 고백했다. “사실 쿠팡 월회원이에요. 핑계일 수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급하게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쿠팡 로켓배송이 너무 손쉽게 오다보니까 끊는 게 힘들어요.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박씨는 한 달 실험이 끝난 뒤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추구미’(‘추구하다’의 추구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 미(美)가 합쳐진 말로, 나만이 갖고 있는 개성과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게 있어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멋진 모습이죠. 제가 처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땐 이것까지 잘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했거든요. 막상 해보니 현실에서의 내 모습은 ‘기후악당’이더라고요.” 박씨는 인터뷰 동안에도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이런 ‘죄책감’이 성찰로 이어져 개인의 탄소중립 참여에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은 쿠팡이든 에어컨이든 사용에 죄책감을 느끼고 절대 쓰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시작한 게 아니다. 개인의 탄소중립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구조에는 무엇이 있는지 직접 경험해보자는 게 실험의 핵심 취지다. 실험 참여자인 김미정씨가 후기에서 쓴 글이 이런 취지를 잘 담고 있다. <em>“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목표가 가사 노동을 주로 하는 여성들에게 더욱 죄책감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 기저귀, 의류 정리, 세탁·청소 등. 걱정하는 마음들이 모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개개인이 지나친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em>
이 때문에 박씨도 “작은 노력으로도 효능감을 얻을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과천시에 고장 난 제품을 버리지 않고 수리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수리센터 설치와 식당에 채식 메뉴 표기를 의무화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것 등이 그런 노력이다.
다만 더욱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세다. “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대해 돈을 내게끔 정부에서 가격을 매겨야죠. 예를 들어 쿠팡에서 탄소세를 덜 내려면 (배송을) 다 전기차로 전환할 수 있죠. 그럼 소비자가 부담하는 탄소배출도 줄어드니까요.”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은 참여자 23명의 연평균 탄소배출량을 5.9t으로 감축하는 데 실패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기후붕괴를 막기 위한 시민의 실천과 구조적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끝날 수 없다. 7월25일 방학을 맞은 이봄씨는 그래서, 기후에 관심 있는 교내 학생들과 처음으로 기후 관련 시위를 하기 위해 경남 진주 개양오거리 앞에 모였다. 학생들은 저마다 적어 온 손팻말을 들었다. 미리 문구를 적어 오지 않은 이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 자리에 앉아 휙휙 글자를 적어나갔다.
‘기후위기,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천(경기)·상주(경북)·서울·진주(경남)=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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