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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은 줄여보았어요… 1년을 줄이려면?

[1.5도 라이프 도전기④] 50명 출발했지만 23명 한 달 실험 마쳐
소비와 먹거리에서 가장 많은 탄소배출량, 노동시간 줄이고 이동시간 줄이는 방법은
등록 2024-08-09 15:35 수정 2024-08-15 14:16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 참가자들이 2024년 8월3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후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 참가자들이 2024년 8월3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후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2023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견줘 1.45도 올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향후 5년 내 1.5도를 넘길 가능성은 80%다. 전세계가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외치는 지구온도 1.5도 상승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반복되는 폭우와 폭염 같은, 기후붕괴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까. 기업과 정부 탓을 하며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만들어진 에너지도 제품도 결국은 인간이 사용한다. 이 때문에 국외에선 개인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서 탄소배출량 감소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소비 변화가 기업을 바꾸고 에너지 사용 변화가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겨레21은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라는 제목의 실험을 기획했다. 기후붕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한 달 동안 자신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시도도 함께하는 실험이다. 기록하는 분야는 소비와 먹거리, 주거, 교통, 여가 및 서비스 등이다. 참가자들의 탄소배출량 줄이기 목표는 2030년까지 40% 감축인 한국의 탄소중립 계획에 맞췄다. 한국인 1명당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13.6t(2018년 기준)인데, 여기에서 도로 등 공공 인프라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빼고 가구 및 개인 소비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은 9.8t 정도다. 이 9.8t에서 40%를 감축한 5.9t이 참가자들의 연평균 탄소배출량 목표 수치다. 결과부터 말하면, 23명의 시민이 참여한 이번 실험은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시민 23명의 도전기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한겨레21이 한 달 동안 매주 간담회 등을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 기후붕괴 문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구조적 모순에는 대중교통이나 의료 인프라의 지역 격차 문제, 최근 한겨레21이 집중적으로 다룬 학교급식실 조리원들의 노동환경 문제 등이 엮여 있었다.

소비 부문의 감축 계획을 명시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달리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은 평범한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이번 실험은 그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시작됐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줄일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 어떤 시스템은 탄소배출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닐까. 이번 표지이야기는 이런 문제에 관한 심층 탐사다.-편집자주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가 기획한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엔 애초 시민 50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27명이 중간에 이탈하고 23명이 마지막까지 남아 탄소배출량을 기록했다. 참여자들은 4주 기간 중 첫 주는 평소와 같이 생활하며 탄소배출량을 기록했고, 2~4주는 평소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생활을 하며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1명당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첫 주 8.4t에서 2~4주차 땐 6.9t으로 줄었다. 하루 평균으로 치면 23.1㎏에서 18.9㎏으로 줄어든 셈이다. 1주차 8.4t 가운데에는 소비 분야가 2.9t으로 가장 많은 배출량을 차지했고 먹거리 분야 2.4t, 주거 1.4t, 교통 1.3t, 여가 및 서비스 0.4t이 뒤를 이었다. 2~4주차에 가면 6.9t 가운데 소비가 2.3t, 먹거리가 1.7t을 차지했다.주거는 배출량이 변하지 않았고, 교통과 여가 및 서비스는 비슷하거나 소폭 감소했다.

‘한 달’이라는 한계… 참거나 대체하거나

고이지선 선임연구원은 “전체 탄소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소비와 먹거리에서 나왔다”며 “소비의 경우 사용하거나 구매할 때만 배출된다고 생각하지만, 제작이나 폐기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배출량을 포함하면 배출량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축 이후에도 소비가 가장 많았는데, (새로 구매하지 않아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 당장 줄이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주거의 경우도 집의 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는데다 전기나 물 사용량 등도 한 달 사이에 줄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실험엔 처음에 200여 명의 시민이 지원했다. 그중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탄소배출의 특성을 고려해 50명의 참가자를 선정했다. 세부적으로는 자동차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지(소득수준), 수도권에 거주하는지(거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지(교통), 채식하는지(먹거리), 지난 1년 동안 국외 여행을 3회 이상 갔는지(여가) 등을 사전에 묻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참여자들은 실험 시작과 함께 자신이 보유한 모든 소비재와 구입 연도를 써넣어야 했다. 또 한 달 동안 매일 이동량이나 에어컨 사용량 등을 입력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기입했다. 연구소가 개발한 산식을 삽입해둔 엑셀 파일에 단위를 입력하면 이에 따른 탄소배출량이 표시됐다. 특히 휴대전화나 세탁기 같은 눈에 보이는 물건뿐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이나 금융서비스까지 계산했다. 먹거리나 이동 외에도 소비재, 서비스 등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전체 탄소를 측정하기 위해 물건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질 때 배출되는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간접 배출량까지 고려한 자료를 인용했다. 써넣어야 할 항목만 300개가 넘었다. 많은 참여자가 실험을 중간에 포기한 까닭이다.

실험 종료 이후 참여자들에게 분야별 감축 전략을 물었다. 참여자들은 대체로 먹거리와 소비, 주거, 여가 분야에선 절대량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고 교통 분야에선 대체 방법을 찾았다. 먹거리의 경우 외식과 배달, 육식을 줄였고 주거에선 에어컨 같은 전력이나 물 사용량을 줄였다. 참여자 대부분이 실험 기간에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여행을 가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 다만 이는 ‘한 달’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실험 이후 여름휴가를 가거나 소비 계획이 있음을 밝힌 참여자도 있었다.


의지가 있다 해도 넘을 수 없는 벽

참여자들은 특히 주거 분야에서 물과 전력 사용량을 크게 줄이기 어려워했다. 대표적인 것이 에어컨 사용량이다. “너무 습해서 에어컨을 안 틀면 잘 수가 없다”(이봄)거나 “함께 사는 사람이 에어컨을 절대 끄지 않아 어려웠다”(황선영), “에어컨을 줄이는 건 도저히 못하겠더라”(배보람) 등의 반응이 나왔다. 다만 주거 분야에서 크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이 있었는데,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넘어야 할 벽은 있었다. 전남 순천시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민혜씨는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해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2년 전 한 세대에서 설치했는데 다른 주민들 반대에 시달리다 결국 철거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고이지선 연구원은 실험 기간 아파트입주민협회의 허가를 받았고, 조만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한 달 동안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기 쉽지 않았다”며 “재생에너지 설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을 가장 적게 기록한 참가자들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김미정씨와 최지선씨는 각각 연평균 배출량 1.5t과 2.2t을 기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먹거리와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다른 참가자들에 견줘 적었다는 점이었다. 김씨의 경우 단독주택에서 직접 설치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전기를 생산했다. 이 에너지로 집 안의 모든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차도 충전한다. 또 20년 이상 비건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먹거리 배출도 극히 적었다.

최씨도 비건이다. 거기에 외식까지 줄이면서 먹거리 탄소배출량을 줄였다. 또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이동에서 나오는 탄소배출이 적었다. 두 참가자 모두 실험 참여 전부터 탄소배출을 적게 할 조건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실제 이들의 감축 전 연평균 배출량은 각각 2.3t과 4.7t으로 목표 배출량인 5.9t에 훨씬 못 미쳤다.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2024년 7월13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중간 모임을 진행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2024년 7월13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중간 모임을 진행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차 타고 가서 플로깅, 안 가는 게 나을까?

실험을 진행하면서 더 구체화된 고민도 있다. 제주도에서 ‘플로깅’(쓰레기 주우면서 걷기)을 하는 최준석씨는 플로깅을 위해 왕복 수십㎞를 내연기관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털어놨다. “(플로깅을) 안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다고 전기차를 사기 위해 멀쩡한 차를 버릴 수도 없고…. 전기차를 산다고 해도 그 소비로 인한 배출량이 발생하는 거잖아요.”

송지은씨는 문화생활에 관한 어려움을 털어놨다. “영화 한 편만 하더라도 탄소배출량이 높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예 보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송씨는 매년 여름 페스티벌에 갔지만 올해는 가지 않았다. 2023년 참여한 페스티벌에서 사용하고 남은 물총이 산처럼 쌓여 있던 게 떠올랐다. 당시엔 크게 생각 못했지만 음식과 술을 담고 버려지는 일회용기도 생각났다.

“이전에는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기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진 않아요. 다만 페스티벌 같은 것도 주최하는 사람이 좀 더 환경을 신경 써서 만들어준다면 참여하는 사람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너무 소비적으로만 진행되고 끝나는 것 같아요.” 송씨가 말했다. 이들의 고민 모두 우리 사회가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연구소는 이번 실험 결과를 토대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구조적으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도 제시했다. 먼저 노동시간을 줄이고 이동을 줄여야 한다고 봤다. 연구소는 “노동시간과 형태는 라이프스타일 항목에 없었지만 많은 사람의 삶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며 “긴 노동과 하루 2시간 이상의 출퇴근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비에 기반을 둔 식사와 생활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제도적 지원책과 동네 인프라 보충이다. 주거와 같이 개인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부분이나 재생에너지 설치 같은 부분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또 자동차의 경우에도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하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형태가 아니라 소유하지 않는 이들의 편의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당장 국가 계획이 수정되긴 어렵기 때문에 자전거도로나 수리센터 활성화 등 동네별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엔 기업을 움직이는 것도 소비자다. 탄소배출과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 탄소배출량이 표시된 품목은 매우 드물다. 고이지선 연구원은 “환경부에서 시행하는 탄소성적표가 있지만 적용되는 제품도 적고 의무화되지 않아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건 드물다”며 “이를테면 유럽은 제조회사와 연식만 알면 거의 모든 자동차의 탄소배출량을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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