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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저격한 이스라엘 쿼드콥터 ‘하브소라’, 뜻은

등록 2024-08-02 22:43 수정 2024-08-09 16:45
2024년 7월10일 피란민이 몰린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학교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당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벽면에 현장을 살피는 주민의 그림자가 보인다. REUTERS

2024년 7월10일 피란민이 몰린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학교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당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벽면에 현장을 살피는 주민의 그림자가 보인다. REUTERS


사람을 인식한 감시카메라가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본다. ‘새’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의 화면을 보려다 유리창에 부딪히고, 휴대전화를 보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 뒤를 총총 따라오고, 떼로 몰려와 등 뒤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본다. 에스에프(SF) 영화에 담길 법한 이 장면들은 애플이 최근 공개한 광고다. 애플의 브라우저인 ‘사파리’를 켜면 ‘새’가 추적을 멈추고 폭발하는 장면에서 사파리의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임을 알 수 있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광고를 광고로만 읽을 수 있을까. 감시카메라가 사람을 표적 삼아 추적하고 날아와 개인정보가 아니라 무기로 사람을 공격하고 심지어 살상하는 일이 동시대 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민간인들은 감시카메라와 저격용 총을 탑재한 이스라엘군의 쿼드콥터(프로펠러 4개 달린 드론)가 저공 비행하며 쏜 총알에 희생당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사람들 위치를 파악하는 데 ‘하브소라’(‘복음’이란 뜻의 히브리어)라는 이름을 지닌 인공지능 표적 시스템을 사용한다. 하브소라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할 능력이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애플의 광고 ‘플록’(Flock·떼)의 한 장면. 새로 변신한 감시 카메라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애플 유튜브 갈무리

애플의 광고 ‘플록’(Flock·떼)의 한 장면. 새로 변신한 감시 카메라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애플 유튜브 갈무리


실제 2024년 4월1일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인도지원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구호팀 차량 3대가 중부 데이르알발라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엘비트 헤르메스 450’ 드론의 공격을 받아 활동가 7명이 폭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의도치 않게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했다. 전쟁터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폴란드 총리, 미국 대통령, 캐나다 총리, 영국 총리가 잇따라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이후로 넉 달째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나흘 뒤인 4월5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세계 각국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는데, 미국과 독일은 반대표를 던졌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2019~2023년 전체 수입 무기의 69%를 미국에서, 30%를 독일에서 사들였다. 합치면 99%다.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2023년 10월7일 가자전쟁이 일어난 이후 한국은 최소 128만달러(약 17억6천만원)어치의 무기를 이스라엘에 수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인공지능과 드론이 동원된 이 전쟁은 당사국 사이에 유례없는 사망자 불균형 상태를 낳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의하면 2023년 10월7일 가자전쟁이 시작되고 299일째가 된 2024년 7월31일까지 가자지구 주민 3만9445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에 의하면 2024년 7월28일까지 이스라엘 군인 689명, 경찰 63명 등 752명이 숨졌다. 죽음은 모두에게 불행이지만, 한쪽의 죽음이 52.5배나 많고, 심지어 그들이 죄다 민간인이라면, 이것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 집단학살로 불러야 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 하원의원인 라시다 틀라이브가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국민을 집단학살한 전범”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겨레21>은 이번호에도 빠지지 않고 참극을 기록한다. 집단학살이 낳은 참혹한 불균형을 직시하면서 말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2023~2024 가자의 참극 기사 보기

https://h21.hani.co.kr/arti/COLUMN/3096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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