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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가 난무하는 시대, 트럼프와 싸우는 방법

등록 2026-04-02 22:24 수정 2026-04-09 19:18
2026년 3월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No Kings’ 전국 시위 행진 도중, 기저귀를 찬 아기 모습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형상화한 거대한 풍선이 시위대 행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3월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No Kings’ 전국 시위 행진 도중, 기저귀를 찬 아기 모습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형상화한 거대한 풍선이 시위대 행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AFP 연합뉴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예 관심이 없는 말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이를 ‘개소리’(bullshit)라고 부른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최소한 진실에 관심은 있다. 그러나 개소리꾼은 그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 목적으로 말을 내뱉는다. 개소리꾼은 이 목적을 위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어떤 주장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다. 진실이라는 가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개소리가 난무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가 열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을 선정한 것이 2016년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진리를 다투며 논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폭력과 살해가 난무하는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대에 난무하는 개소리는 전쟁이라는 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어장치를 파괴한다. 전쟁을 일으킨 명분과 전황, 가해에 대한 개소리가 이어지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은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밀려나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설명할 언어를 상실하게 된다.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개시하며 “우리 목표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해 미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조사국과 트럼프 행정부 국가정보국의 조사를 통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쟁 개시 명분이 이미 개소리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한 달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이 “거의 완전히 끝났다”고 거듭 말했지만, 미국 국방부는 보병과 기갑부대 등 1만 명 추가 투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간단한 군사작전”이라고 했다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들이 해협 개방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또 “전임자보다 훨씬 덜 급진적이고 훨씬 더 지적인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이 조금 전 미국에 휴전을 요청해왔다”고 주장했지만, 2024년 7월 대선에서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같은 날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이란 국민은 미국, 유럽, 인접국가 국민을 포함한 그 어떤 민족에 대해서도 적의를 품고 있지 않다”며 “이 전쟁으로 미국 국민의 이익 중 정확히 어떤 것이 실제로 충족되고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해 전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고,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위험 부담으로 비료 원료의 수출길마저 막히면서 빈곤국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전쟁 유발자의 개소리에 맞서, 누가 무엇을 어떤 근거로 말하는지, 그 말과 현실이 얼마나 어긋나는지, 피해자의 언어가 어디에서 끊기는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일이다. 전쟁의 명분과 책임을 정확하게 묻는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만이 개소리를 경유한 전쟁의 폭력이 더는 반복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https://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91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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