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한 유가족이 김혜영 가톨릭평화방송(cpbc) 전 앵커에게 보라색 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cpbc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4년 4월16일 저녁, 서울광장의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추모 미사가 열렸다. 두 참사 유가족이 모인 자리에 가톨릭평화방송(cpbc)에서 <김혜영의 뉴스공감>을 진행했던 김혜영 전 앵커도 참석했다. 리포트를 마치고 분향하던 김 전 앵커 곁으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하나둘씩 다가왔다. 한 유가족은 말없이 보라색 리본을 달아줬고, 다른 유가족은 “기운 내라”고 했다. 기운을 주고 싶었던 이들에게 기운을 받으며 그는 애써 울음을 참았다.
cpbc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에서 법정제재 처분을 받았다. 김 전 앵커가 진행하던 <뉴스공감>에 제재가 집중됐다. 법정제재 2건과 행정지도 1건을 받았는데, 이 중 2건이 이태원 참사를 다룬 방송이었다. <뉴스공감>의 패널 김준일 시사평론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공직자들 중 책임을 지고 사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한 발언 등을 선방위는 문제 삼았다.
<한겨레21>은 제22대 총선 선방위의 법정제재를 받은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진행자, 패널 등을 인터뷰해 제1516호 표지이야기에 실었다. 김 전 앵커도 섭외 대상이었지만 불발됐다. 기사를 마감한 뒤에야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스공감>에서 하차한 뒤 밀린 휴가를 다녀왔다는 김 전 앵커와 늦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cpbc가 선방위 제재와 관련해 언론에 이야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죠. 그런데 (이번 선방위 결정은) 이해를 못하겠어요. 선방위에 제출한 진술서도 제가 쓰긴 했지만 계속 의문이었거든요. (이태원 참사 관련해) 아무도 책임 안 졌다는 건, 정치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윗선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실무진은 기소됐지만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윗선 책임자들을 말하는 거잖아요.” 김 전 앵커가 말했다.
선방위 위원들은 진행자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김혜영 진행자가 어떤 가치중립이라든가 그런 어떤 균형성, 공정성, 형평성, 이런 개념이 없는 분 같다”(손형기 위원)거나 “진행자가 그래도 균형을 잡아주는 그런 균형추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되는데 패널과 같은 분위기로 끌려들어 간다”(권재홍 의원)는 등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도 시사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했고, 보도국에서 앵커를 가장 많이 하면서 보도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는 충실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균형을 생각하지 않는 언론사는 없어요. 나름 신경도 쓰고 사안에 따라 노력했는데도 시사 프로그램에 관해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시니까… 내가 이렇게 잘 못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방위의 첫 법정제재 이후 선방위가 문제 삼은 발언을 한 패널 김준일 시사평론가가 <뉴스공감> 제작진에게 사과했다. 다만 김 평론가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 얘기는 저 말고도 많이 얘기됐던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사실관계가 틀린 게 없다’고 의견서를 썼지만 선방위는 묵살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 사안과 관련해 “실제 참사를 책임지고 처벌받은 이가 없는 상황에서 지적할 수 있었던 사실”이라며 선방위에 의견서도 냈다. 그러나 선방위에선 “이 사안은 평화방송의 방송 프로그램에 관련된 지적이지 이태원 참사 문제하고는 특별하게 큰 연결고리가 없다”(백선기 위원장)며 유가족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김 전 앵커나 제작진 모두 선방위에서 처음 법정제재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단발적으로 발생한 이벤트에 그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제재가 이어지면서 회사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내 분위기보다 더 큰 문제는 김 전 앵커가 진행하면서 스스로 위축됐다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3건으로 끝났지만 이게 4건이 될지 5건이 될지 모르니 매주 선방위 회의 때마다 긴장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자기검열이 되는 걸 느꼈어요. 진행하면서 이런 말을 하면 나중에 선방위에서 문제를 삼을까 하면서 삼키는 거죠. 스스로 더 조심하게 되고 출연하는 분들에게도 음악이 나갈 때 저희한테 징계가 쏟아지고 있으니까 주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김 전 앵커는 2024년 4월 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그 자리는 김준일 평론가가 이어받았다. 김 전 앵커는 “저는 선방위 제재 전부터 피로 누적이 심해서 물러나야겠다고 얘기가 돼 있었다”며 “김 평론가가 진행을 맡게 된 것은 회사의 전략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첫 법정제재와 관련이 있는 김 평론가를 후임자로 정한 것 자체가 선방위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김 평론가가 <뉴스공감>을 진행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엔 벌써 <뉴스공감>에 대한 민원이 여러 건 접수된 상태다. 선방위는 활동이 끝났지만 제재는 끝나지 않았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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