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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빚에 저당잡힌 청춘

대학생 땐 하루 4시간 자며 알바, 졸업 뒤 200만원대 월급에서 40만원 빚 갚아
학자금대출 10명 중 8명꼴 비정규직부터… ‘학자금 부채 탕감’ 운동 시작돼
등록 2022-11-28 10:24 수정 2022-12-09 01:18
한겨레21 1440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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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17일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논술·면접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분주하고 부모도 덩달아 초조하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 20~30대 청년도 한때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거치면서 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채무자’로 바뀌었다. 대학 간판을 얻으려 채무자가 된 청년도, 채무자가 되기 싫어 간판을 포기한 청년도 청년 체감실업률 27%(2021년 2월 기준) 앞에 절망했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101만6613명에 이른다. 대출잔액 합계는 6조4933억원이다. 이는 학자금대출 중 ‘일반상환 학자금대출’을 제외한 통계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채무자가 100만 명이 넘는 것은, 청년들이 취업해 사회에 첫발을 떼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무자가 된 청년은 ‘묻지마 취업’을 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다.
<한겨레21>은 2022년 9월 중순부터 민주노총 서울본부·서울민중행동·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등이 참여해 출범한 ‘학자금부채탕감운동본부’와 함께 과거 학자금대출을 받았던 청년의 삶이 현재 어떠한지 살펴봤다. 부산·창원·광주 등 지역 청년 4명과 서울 청년 3명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학자금 부채 탕감’은 얼핏 과격해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논의 중인 제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학자금대출 탕감 정책에 공화당이 소송을 내며 반대해, 최근 미국 사회가 시끄럽다. 유럽의 많은 대학은 ‘무상교육’을 시행한다.
한국은 어떤가. 부모 세대의 빈부 격차가 고스란히 아이들의 기회 격차로 이어져 대학 등록금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는 않나. 인터뷰한 서울 사립대 출신 청년은 대출 문제로 한국장학재단 담당자와 실랑이하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냥 돈 없으면 공부하지 말라는 거죠?” _편집자주

“지방, 그것도 나처럼 섬 촌에서 형편이 어렵게 자란다는 건 ‘시야가 좁아진다’는 의미 같다. 시험 하나 삐끗하면 세상이 망한 것처럼, 뭔가 잠깐 삐끗하면 오랫동안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경남 거제도에서 나고 자란 이서진(33·가명)씨는 집안 사정상 사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성적은 좋았다. 비슷한 성적의 친구는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을 갔다. 서진씨는 그럴 수 없었다. “내 생각엔 농어촌 특별전형이라는 것도, 사실 (원서를) 쓸 수 있는 환경의 아이들은 정해져 있었던 거 같다. (나 같은 아이들은) 돈이 없어 대학을 멀리 못 가고, 근처엔 일자리가 없어 공무원임용시험을 준비하고, 또 그게 잘 풀리지 않아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보통 애들보다 10배 이상 노력해야 했어요”

서진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아끼려고 가까운 국립대 사범대에 들어갔지만, 교사임용시험과 공무원임용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따금 서울로 대학 간 친구 소식이 들려왔다. ‘학자금대출을 못 갚고 있다더라’ ‘정규직 취업을 못했다더라’ ‘생활수준이 달라 잘 어울리지 못했다더라’ 따위 얘기였다.

학생들은 대학 입학이라는 관문을 지나면서, 계층에 따라 다른 갈림길에 놓인다. 중산층 이상의 아이에게 대학은 사회적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기회’이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인서울 대학’이나 대학이라는 선택지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 아이에게 대학은 ‘포기’의 동의어다. 서진씨는 2008년 대학에 입학했다. 그 무렵 대학에 들어간, 지금의 30대 중후반 청년들은 6.59~9%에 달하는 고금리로 금융기관에서 학자금을 빌려야 했다.

이듬해인 2009년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됐다. 재단이 학자금대출 사업 등을 벌인 덕분에, 그나마 학자금대출 금리는 5.8%가 됐다. 금리는 해마다 낮아져 2021년 말 기준 1.7%가 됐다. 하지만 이미 고금리로 학자금을 빌린 뒤 30대가 된 청년들에게는 ‘그때 그 선택’으로 인한 빚이 남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대출을 선택한 사람은 선택한 사람대로, 대학을 포기한 사람은 포기한 사람대로 삶이 투쟁 같았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라 서울의 한 사립대에 들어간 신재현(35·가명)씨는 ‘인서울 대학’은 갈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 ‘마음껏 공부하는 대학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재현씨는 아버지가 50대에 퇴직해, 입학 첫 학기부터 학자금을 대출했다. 금리는 7%대 후반. 군에 있을 때 이자를 못 내 신용불량자가 된 적도 있다.(그 뒤 군복무 중 학자금대출 이자 납부를 유예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직장인이 된 재현씨는 월급 230만원 가운데 매달 40만원가량을 학자금대출 상환에 쓴다.

“집에서 지원을 못 받으니까 방학 때는 보통 하루 4시간 자면서 알바했고요. 학기 중에는 공강 꽉 채워 과제 하고, 학교 끝나고 무조건 알바를 갔어요. 편의점, 중국집 설거지, 일용직. 이렇게 공부하면서 어떻게 성적을 유지하고 삶을 계획했겠어요? 저희 과 인원이 한 40명 됐는데, 완전히 자기가 다 벌어서 생활하는 사람은 저 포함 3명 정도였어요. 우리는 보통 애들보다 10배 이상 노력해야 했어요.”

한국장학재단 통계연보를 분석한 한영섭 ‘세상을바꾸는금융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현재 재단에 쌓인 학자금 부채 잔액은 약 10조원이다(학자금 약 6조4천억원, 생활비 약 4조103억원, 2022년 6월 말 기준). 부채를 보유한 채무자는 약 170만 명이다. 학자금대출이 가장 많은 계층은 ‘학자금 지원구간’ 1구간(가구 월소득 약 153만원 이하, 2022년 기준)으로, 이 구간에서만 23만1098명이 1조4672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의 부채 잔액은 4198억원(7만4231명)이다.

‘요즘 것들’이 미래를 그리지 않는 이유

2020년대 들어 대학 진학률이 70%(그림 참조)에 이르렀다. 대학에 가는 청년이 늘었지만, 학자금은 여전히 ‘개인’의 부담이 크다. 학자금 부채는 청년 개인이 스스로 대학을 선택한 결과라는 인식도 많다.

“혹시 <쇳밥일지>란 책 보셨어요? 거기에(지역에서 용접 노동을 한 작가가 현장에서 느낀 차별과 혐오 등 각종 부조리를 기록한 에세이) 사회가 대학에 안 간 청년들을 어떻게 보는지 적나라하게 나와요.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 안 가도 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부산의 한 국립대를 졸업한 이동현(35·가명)씨의 말이다. 그는 당장 결혼을 생각하지 못한다. 2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20만~30만원을 학자금대출 상환에 쓰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빌라에 사는 그는 주거비 겸 용돈으로 아버지께 월 30만원도 드린다. “사실 국립대 학비는 당시 한 학기에 200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는데 왜 대출을 했냐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집이 어려워졌어요. 아버지가 옷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경공업이 쇠퇴했잖아요. 어머니는 암에 걸려서 병원비도 내야 했고.” 동현씨는 주변 30~40대 지인 가운데 학자금대출 등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사람이 꽤 많다고 했다.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청년들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는다. 맛있는 음식, 여행, 결혼 없는 연애에 기대게 된다. ‘요즘 것들’은 배가 불렀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저희는 부모님 지원을 아낌없이 받은 세대잖아요. 근데 지역 대학 문과생이 부모님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잖아요. 차, 집, 우리가 그런 걸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해요.” 경남의 한 국립대에 다니는 김정현(23·가명)씨가 말했다.

학자금 부채로 ‘묻지마 취업’에 내몰리는 청년

‘대학을 나왔나. 인서울 대학인가. 스카이인가. 대기업인가.’ 작은 차이로 시선과 대우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더 좋은 ‘간판’을 획득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학자금 부채를 짊어진 사람들은 더 그랬다. ‘안정적 일자리’와 ‘꿈’을 생각하면서도 대충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저는 시간적 여유가 더 나은 선택지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졸업 뒤 직업 선택은 부모 자산이나 노동상태에 따라 현저히 달라져요.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부채 압박 때문에 졸업 뒤 바로 노동시장에 뛰어들었어요. 부모님 신용도가 안 좋아 20% 되는 엄청난 고금리 캐피털로 첫 학자금대출을 받았거든요.”

2022년 11월21일 경희대 안 취업정보게시판 주변에서 졸업생들이 구인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2022년 11월21일 경희대 안 취업정보게시판 주변에서 졸업생들이 구인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지역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박수민(37)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이 말했다. 그의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IMF 금융위기 이후 직장을 잃으면서 집안 형편이 기울었다. “등록금 내는 시기엔 항상 슬펐던 기억이 나요. 자존감이나 나 자신이 굉장히 낮아지는. 학자금을 갚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수민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논문 ‘청년층의 학자금대출에 따른 노동시장 간 이행률 분석’(이용호, 2021)을 보면, 학자금대출 보유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을 졸업(2014년, 2015년)하고 5년 동안 한 번이라도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 789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는데, 학자금대출 보유자 10명 중 약 2명(18.92%) 이하가 1차 노동시장(고용 안정성, 높은 임금, 좋은 근무환경 등)에서 첫 일자리를 잡았고, 8명가량(81.08%)은 첫 직장을 2차 노동시장(고용 불안정성, 낮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찾았다.

캠퍼스도 알바족과 명품족 양극화

최근 들어 학자금대출 금리가 낮아지기도 했고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도 늘었다. 한국장학재단은 ‘학자금 지원구간’ 8구간 이하 학생의 경우 소득수준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원한다. 연간 350만원부터 시작해 등록금 전액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학자금 걱정을 덜었으니, 이제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고민이 사라졌을까.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장은영(29·가명)씨는 “이제는 (걱정이) 학자금보다 주거비와 생활비, 상대적 빈곤감”이라고 말했다.

“2011년 대학에 입학했다가 휴학하고 10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어요. 휴학한 이유 중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어요. 돌아와서 느끼는 게 학비는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요. 문제는 주거비와 식비가 엄청나게 비싸졌다는 거예요. 학교 내 빈부 격차는 10년 전보다 훨씬 심해진 게 눈으로 보여요.”

10년 전 2500원이던 학교식당(학식) 음식 가격은 5500원이 됐다. 학교 앞 저렴한 음식 가격도 7천원, 8천원에 이르렀다. 주거비·통신비·식비·교재비 등은 한국장학재단 생활비 대출로는 어림도 없다. 한국장학재단의 한 학기 생활비 대출액은 최대 150만원이다.

“회기역 근처 자취하는 친구들 원룸이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60만원이에요. 아니면 1천만원에 50만원. 10년 전에 반지하 투룸에 3명이 같이 살았는데 월 50만원짜리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곳이었는데, 어쨌든 월 12만원 주거비로 쓴 거죠. 요즘은 물가가 너무 비싸요.”

차상위계층으로 한국장학재단 장학금을 이용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곽지환(25·가명)씨도 “아껴 써도 월 90만원은 든다”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 이율이 2.7%인데 (전세자금) 7천만원 중에 6300만원을 대출했어요. 연 200만원 가까이 이자가 나오니까, 아무것도 안 먹어도 관리비까지 월 30만원이 주거비로 나가는 거예요. 교통비, 밥값, 책, 생필품 사면 아껴 써도 월 60만원이에요. 제일 자주 먹는 게 컵라면, 햄버거.”

지환씨는 캠퍼스 내 명품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 과거보다 훨씬 늘었다고 느꼈다. 그는 콘서트와 뮤지컬을 수시로 보러 가는 친구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요즘 것들’의 빈부 격차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간극이 컸고,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중계된다.

딸 학비 500만원 못 빌려 목숨 끊은 엄마

청년들이 이처럼 공부하느라 가난을 감내하지 않도록, 여러 나라에서는 ‘고등교육 받을 권리’를 정부가 보장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내 고등교육기관들은 평균적으로 총수입의 3분의 2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OECD 각국의 고등교육 지원 동향’, 외교부 주OECD대표부 자료, 2020) 노르웨이·핀란드·오스트리아에선 정부 지원율이 90% 이상이다. 스웨덴·핀란드는 민간 가구 부담률이 5% 미만에 불과하다.

세계 곳곳에서 ‘학자금 부채 탕감’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학자금대출 탕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교육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승차권이다. 나와 아버지, 수많은 부모가 그렇게 믿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값이 너무 비싸졌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움직임은 시작됐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민중행동,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등으로 꾸려진 ‘학자금부채탕감운동본부’는 2022년 10월24일 국회 앞에서 운동 시작을 알렸다. 나경채 ‘전환’ 사회운동위원장은 말했다.

“5년 전 저수지에서 승용차를 타고 딸과 함께 목숨을 끊은 어느 엄마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광주 사립대에 다니던 딸의 등록금 마감일을 앞두고였다. 500만원을 빌리지 못해 삶을 마감한 인생이 큰 충격이었다. 그 뒤에도 세상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학자금부채탕감운동본부는 2022년 12월 초 국가가 고등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 학자금 부채 현황 등을 분석한 ‘학자금 부채 감사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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