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순(56)씨가 처음 마트 노동자로 생계에 뛰어든 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다. 남편이 외환위기 여파로 직장을 잃은 뒤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 공백기가 길어지자, 박씨는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당장 뭐라도 벌어야 했다. 외국계 대형마트와 백화점 선물세트 판매직을 거쳤다. “기왕 돈을 벌러 나왔으니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서울 양천구에 이마트 새 지점이 생기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정규직 캐셔(계산원)’를 뽑는다고 했다. 80 대 1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무늬만 정규직일 줄은 몰랐죠.” 막상 들어와 보니 자꾸만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가 눈에 띄었다. 제때 쉬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갖기 위해선 여전히 투쟁이 필요하다. 박씨가 2022년 8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가한 것도 한 달에 두 번, 최소한의 휴식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따갑게 쏟아지는 햇빛을 견디며 외쳤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개혁 1호’ 안건으로 추진했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8월25일 ‘현행 제도 유지’로 급선회했다. 7월21일 대통령실 누리집 ‘국민제안’ 코너에서 국정과제로 부상한 지 한 달 만이다. 8월4일 첫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해당 안건을 논의했던 국무조정실은 8월24일로 예정됐던 두 번째 회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8월23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를 연 뒤 내려진 결정이다. 8월25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신중하게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소상공인·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대가 이어지자, 폐지 강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는 ‘현행 제도 유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월 2회 공휴일에 의무휴업을 한다’는 현행 법조항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트 노동자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매달 규칙적으로 ‘일요일’에 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모든 노동자가 이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공윤란(56)씨와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유영란(52)씨도 이날 결의대회에서 목청껏 휴식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쳤다. 공씨도 유씨도 외벌이로는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생계전선에 뛰어든 경우다. 일하는 마트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주 5일 일한다. 가능한 한 싼값에,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많은 업무량을 수행하는 것. 중년 여성이 다수인 마트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자 규율이다.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마트 노동자 월급은 오르지 않아요. 롯데마트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정확히 130원 더 많습니다.”(유영란)
대형마트 3사에서 일하는 이들이 8월23일 반차까지 내고 결의대회에 참여한 건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마트 노동자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정작 논의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이 단 한 번도 수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안건을 논의하는 규제심판회의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 기업과 소상공인 대표들은 참석하지만 노동자 의견이 반영될 창구는 없다. 서비스연맹이 대통령집무실에 항의 공문을 보내고,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 등에 ‘일요일에 쉴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팩스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대형마트 대 소상공인의 싸움’이란 프레임으로 쏟아지는 보도 안에서도 마트 노동자의 목소리가 설 곳은 없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이후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휴점하는 제도가 정착됐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주말이 아닌 평일에 쉬는 변칙적인 경우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마트 노동자 10명 중 5명(53.3%)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마트여성노동자의 노동실태와 쉴 권리 찾기’ 토론회, 서비스연맹, 2019년 1월)
유영란씨가 근무하는 롯데마트 지점은 매달 10일과 넷째 일요일에 쉰다. “10일이 만약 일요일이면 그달은 ‘땡잡은 달’이죠. 가족과 함께 밥 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10일이 평일이면 남들이 일할 때 홀로 쉬는 셈이니 지인들과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게 어려워요. 모임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친구들이) 제 휴무를 물어보거든요. 의도찮게 계속 피해를 준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들어요. 휴무일은 지점마다 달라서 다른 지역에선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 지점도 있어요.”(유영란)
매년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의무휴업일을 명절 당일로 바꾸고, 기존 의무휴업일인 일요일에 문을 여는 꼼수도 등장한다. 유통산업발전법에 ‘의무휴업일을 공휴일 중에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점을 이용했다. 명절 당일에는 마트를 찾는 손님이 적은데다 노동자에게 명절 근무 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고, 더 많은 매출이 나오는 주말에 마트를 개장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마트 노동자에게 ‘예측 가능한 휴일’은 며칠 되지 않는다.
“원래대로 일요일에 쉬고 명절에 근무하고 싶어도 어려워요. 명절에 문 열면 (수당을) 2.5배 주는데 (그게 싫으니)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하는 식이죠. 오전 1명, 마감 1명 이렇게요. 그나마도 현장의 여성 판매직 노동자가 근무하는 자리는 줄여놓고 남성 관리자에게만 (근무) 기회를 줘요. 이런 근무수당 때문에 남성과 여성 직원 간 임금도 꽤 차이가 나고요.”(공윤란)
법정 의무휴업일임에도 유급휴가인 개인 연차를 강제로 소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연차를 한 달에 두 번씩 24개를 소진하고, 정작 연차가 필요한 날에는 대체휴일제도를 이용해 쉬어야 해요. 회사는 ‘가능한 한 연차를 쓰는 걸 권고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론 연차를 안 쓰기 어려운 분위기죠.”(박상순)
듣고 있던 유영란씨도 말을 보탠다. “롯데마트에서도 아프면 안 돼요. 내 연차를 다 써야 병가를 주거든요. 저희는 두 번의 의무휴업일 중 하루를 연차를 쓰게 해요. 그리고 그렇게 남은 연차를 다 써야 비로소 병가를 쓸 수 있죠.”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몸이 좋지 않을 때, 그리고 휴무를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연차를 쓸 수 없는 건 홈플러스에 근무하는 공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은 필요할 때 연차를 내고 가족과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없다. “주말에라도 온전히 쉬고 싶다”(유영란)는 바람뿐이다.
마트 전체가 문을 닫는 정기휴무는 노동자가 ‘온전히 쉴 권리’와도 직결된다. “마트가 문을 닫고 쉬는 날과 마트는 영업하는데 나만 쉬는 날은 완전히 달라요. 예컨대 평일에 나만 쉴 경우 마트에서 계속 연락이 와요. 고객센터에 진상 손님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물어보는 식이죠. 반면 마트가 문 닫은 날은 누구도 연락을 안 해요. 마음이 엄청 편하죠.”(박상순)
유통업계 변화로 인한 인력 부족 문제 역시 이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요소다. 국내 유통산업의 중심축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쇼핑으로 옮겨가면서 대형마트 3사 모두 오프라인 매장을 매각하거나 폐점하고 대신 온라인사업의 핵심 경쟁력인 배송서비스 확대나 물류센터 설립에 집중하는 추세다. 2017~2020년 유통업체 매출 증감률을 보면,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 비중은 2017년 13.2%에서 2020년 17.5%까지 늘었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체 비중은 매년 줄어 2020년엔 -6%를 기록했다. 특히 유통업체 전체 매출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27.8%에서 2020년 18.2%로 크게 줄었다. 영업실적도 함께 정체되거나 하락하면서, 고용인원 감소도 두드러진다.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2015~2020년 6년 사이에 이마트는 3만85명에서 2만5596명으로 직원 4489명이 줄었다. 홈플러스 고용 인원도 2만8492명에서 2만1700명으로 6792명이 줄었고, 롯데마트 역시 1만3611명에서 1만2877명으로 734명이 줄었다. 오프라인 점포 매각도 이어지고 있다. 줄어든 인원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마트 노동자가 아픈 건 일상이 됐다.
“정년퇴직 등으로 인원이 줄었는데도 신규 채용을 2~3년간 안 했어요. 젊은 인원은 채워지지 않고 노쇠한 직원만 남는 거죠. 사람 보충을 안 해주는 상황에서 죽어라 일하다가 진짜 죽으면 어쩌나 싶어요.”(공윤란)
박씨가 “똑같다”며 거든다. 이마트에서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프다는 얘기다. “각자 몸이 아파도 사람이 너무 없으니 서로 협의하에 병가를 써요. 병가 쓰는 직원이 늘어나면 파트타이머를 고용해주는데 보통 석 달, 길어야 여섯 달 정도 일해요. 그분들이 일에 익숙해질 무렵 떠나는 거죠. 인력 충원을 요구하면 ‘곧 폐점하는 다른 지점에서 직원들이 올 테니 기다려라’ 하는 식이죠.”적은 인원을 ‘돌려막는’ 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모바일쇼핑 부서를 만들었다가 계획만큼 활성화되지 않자 해당 부서에 충원한 인원을 다시 줄이고 나머지 인원을 조리, 축산 부서 등에 보내는 거예요. 인력을 돌려막는 거죠.”(유영란) 옆에서 박씨가 “여기는 점포 돌려막기, 거기는 부서 돌려막기”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실제로 마트 노동자는 백화점, 면세점 등 전체 판매직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2020년 서비스연맹이 진행한 판매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안정·노동강도·산업안전 등 여러 면에서 마트 노동자는 전체 응답자 평균보다 만족도가 낮았다. ‘업무시간 대비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다’는 질문에 과반(‘약간 그렇다’ 29.9%, ‘매우 그렇다’ 25.4%)이 ‘그렇다’고 답했고, 조직 내 인력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집단 역시 마트 노동자였다. 마트 노동자의 64.3%가 ‘업무 인력이 부족하다’(매우 부족하다 27.9%, 부족한 편이다 36.4%)고 답했다. 인력이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업무량이 증가한다. 마트 노동자 10명 중 7명꼴로 ‘업무량이 늘어났다’(다소 증가했다 46.6%, 매우 증가했다 23.1%)고 답했다.(표 참조)
이미 존재하는 의무휴업일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노동환경은 해마다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갑작스럽게 들고나온 ‘의무휴업 폐지’는 이들에게 날벼락 같았다. “건강권이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피 같은 날”(공윤란)이자 “가뭄의 단비 같은 휴일”(박상순)이 사라질 위기였다. “회사는 온라인쇼핑 회사보다 규제가 많아 역차별이라고 하는데 저희 입장에선 이 문제를 ‘의무휴업 폐지’로 해결하려는 게 불공정한 일이죠. (불가피한) 경기 변화를 결국 노동자가 책임지라는 꼴이니까요.”(박상순)
대형마트 3사를 주축으로 의무휴업일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지금까지 헌법기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마트 노동자의 손을 들어왔다. 2015년 대법원은 의무휴업일 지정이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상생발전 등 해당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2018년 헌법재판소 역시 의무휴업일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위헌소송에서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라는 입법 목적도 매우 중요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는 한발 더 나아가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에 의무휴업일 적용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근무실태를 확인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일단 당장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폐지될 급한 위기는 넘겼지만, 끊임없이 영업제한 완화를 주장해온 유통기업들은 언제든 다시 ‘의무휴업 폐지’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유영란씨는 “뭔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마음은 일의 능률에도 좋지 않은데 굳이 매달 두 번의 휴일을 없애서 이윤을 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참고 문헌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2020년 12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무산됐지만
윤석열 정부가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꺼낸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정책이 한 달 만에 좌초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25일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에서 제6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관련해 “소상공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한 달에 두 번 공휴일에 쉬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한 현행 규제를 유지하자는 취지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지금 당장 제도를 변경하거나 이런 것 없이 현행 유지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특히 소상공인 의견을 많이 경청하겠다고 말씀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도 대형마트 노동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은 성명을 내어 의무휴업 폐지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점을 환영하면서도 “노동자의 휴식권을 두고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하려 했던 것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윤 정부의 노동자 무시, 배제라는 일관된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마트 노동자는 전국에서 일요일 의무휴업이 시행되도록 하고 (백화점, 면세점 등) 전체 유통서비스 노동자가 의무휴업을 적용받아 ‘모두의 일요일’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배준경 마트노조 정책국장은 “2016년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에스컬레이터(무빙워크 포함) 사고의 52%가 대형마트 3사에서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매달 두 차례 휴일이 있는 상태에서도 안전관리에 빈틈이 있는데 (의무휴업이 폐지돼) 쉴 틈 없이 운영된다면 안전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일요일에 쉴 권리는 곧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8월24일 발족한 ‘윤석열 정부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업 폐지 저지를 위한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공동행동’은 이후 ‘의무휴업 확대’를 중심으로 입법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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