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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내린 작업중지명령

극한 폭염에 밭일 대신 ‘냉면 회동’... 가을농사 준비 생각에 벌써부터 ‘아득’
등록 2026-08-06 21:59 수정 2026-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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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 편

더위를 피해 모인 텃밭 동무들과 냉면 한 그릇씩 시원하게 비웠다.

더위를 피해 모인 텃밭 동무들과 냉면 한 그릇씩 시원하게 비웠다.


2026년 5월12일 기상청 예보정책과가 여름철 방재기상대책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놨다. 2008년 도입된 폭염특보에 ‘열대야주의보’와 최상위 단계인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하는 내용이 뼈대다. 기상청은 “최근 5년 동안(2021~2025년) 전국 평균 폭염일수(19일)와 열대야일수(14일)가 모두 1970년대(폭염 8일·열대야 4일)에 비해 2~3배가량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기후변화가 실질적인 국민 안전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특보 체제 강화 이유를 설명했다.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는 각각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3℃, 35℃ 이상이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이에 견줘 폭염중대경보는 폭염경보 수준인 지역에서 하루 최고 체감온도 38℃ 또는 최고기온 39℃ 이상이 하루만 예상돼도 발효된다. 폭염주의보와 경보 수위를 오락가락하는 8월1일 뜨거운 오후, 밭장의 소집에 따라 텃밭 동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말농장이 아니라 서울 은평구의 한 냉면집에서다. 갈수록 불을 뿜는 더위 속에 밭장이 내린 일종의 ‘작업중지명령’인 셈이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온 동무들의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봄농사를 작파한 건 벌써 3~4주 전이다. 늦은 장마가 끝나고 풀이 껑충 키를 키우면서, 삽시간에 텃밭이 풀밭으로 바뀌었다. ‘모든 풀을 다 잘 벨 수 있다’는 이름을 가진 충전식 예초기를 새로 장만해 밭 정리에 나섰다. ‘잘 벨 수 있다’는 평가는 주관적이고도 상대적이다. 충전식 예초기의 성능은 연료식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무게가 가벼워서 다루기 쉽고 힘이 덜 든다는 장점은 확인했다. 연료식의 보조 도구로 사용하면 될 터다.

‘선주후면’이라 했다. 녹두지짐과 수육 한 접시를 주문하고 술잔부터 들었다. 옛 밭장은 최근 무릎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이다. 한동안 밭에 나오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다. 큰형은 퇴직한 회사 동기들과 해마다 강원도로 천렵을 가는데, 이번엔 폭우로 물이 불어나 자칫 위험할 뻔했단다. 더위와 밭일을 화두 삼아 왁자지껄 안부를 나누는 동안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올 봄농사는 평년작 수준이다. 쌈채소 16종을 두루 맛봤고, 열매 채소들도 무난하게 자리를 잡았다. 하나 아쉬운 것은 만차랑단호박이다. 지난해 엄청난 번식력으로 텃밭의 최강자였던 작두콩까지 고개를 숙이게 했다. 올봄 ‘작두콩 보호’를 위해 언덕 밑으로 옮겨 심은 이유다. 씨앗에서 싹은 잘 났다. 그런데 일조량이 적어서인지 작황이 영 신통찮다. 지난해 쌈채소가 수명을 다한 뒤에도 만차랑단호박은 무성한 호박잎을 내줬다. 올해는 아직 호박잎 맛도 못 봤다.

삼복더위가 물러갈 즈음에 가을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초복(7월15일), 중복(7월25일) 다 지나 말복(8월14일·올해는 이른바 ‘월복’이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다)이 코앞이다. 매주 예초기를 돌려도 일주일 뒤면 다시 기세를 올리는 풀을 다 베고, 다시 퇴비 넣어 밭을 만들어야 가을농사가 가능하다. 그런데 더워도 너무 덥다. 밭 가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시원한 냉면 국물 들이켜며 다들 한걱정을 내놓는다. 옛 밭장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올가을 밭은 풀로 채우시죠~.”

냉면 회동 이틀 뒤인 8월3일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표됐다. 아무래도 말복까지는 ‘작업중지명령’이 계속될 듯싶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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