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다음 누군가, 또 느닷없이 당할까봐…”

2026년 7월31일 경기도 평택시 안중장례문화센터에서 진행된 고 김승모씨 추모문화제에서 유족이 발언하고 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제공
2026년 7월22일 낮 12시48분께,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에이치엘(HL)만도 평택공장. 에이비에스(ABS·미끄럼방지제동장치) 가공라인에서 돌연 ‘쾅’ 하는 충격음이 울렸다. 머시닝센터(MCT) 12호기에서 하청업체 피아로딕스 소속인 김승모(28)씨가 기계에 끼인 것이다. 원청 작업자가 누군가 작업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기계 운전 버튼을 누른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김씨는 평택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입사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당한 참변이었다.
8월4일 평택시 안중장례문화센터에는 ‘고 김승모님 만도 중대재해 투쟁 13일차’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김씨의 유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이날까지 장례 절차를 밟지 않고 있었다. 이날 빈소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아버지 김아무개(60)씨는 흙먼지가 묻은 작업모와 작업복, 출입증이 놓인 아들의 영정 앞에서 사고 이후 13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놨다.
“사고 직후에는 눈물도 안 났어요. 아내는 옆에서 계속 울고 있는데… 병원과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다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죠.”
사고 당일인 7월22일, 김씨가 안치실에서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단 1시간뿐이었다. 그마저도 안치실 안팎을 드나들며 전화 통화를 하느라 아들을 충분히 눈에 담지 못했다. 애초 김씨는 사고를 수습하느라 아들의 사건을 공론화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가슴에 묻고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전국금속노동조합 만도지부에서 연락이 왔다.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상대를 안 하려다가 ‘얘기나 들어보자’ 해서 만도에 갔습니다. 아들이 출퇴근용으로 몰았던 1t 화물차를 가져올 겸 해서요.”
사고 현장에 방문한 뒤 김씨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아들이 발견된 MCT 12호기를 확인해보니 입구가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 버거울 만큼 비좁았다. 바닥은 기계에서 흘러내린 절삭유로 몹시 미끄러웠다. 아들이 처했던 열악한 작업 환경을 처음 본 김씨는 브리핑을 듣고 공장을 나선 뒤에야 울음을 터뜨렸다. “현실감이 들면서 감정이 폭발했어요. ‘내 아들 죽기까지 뭐 했느냐’고 노조한테 욕도 했습니다. 그러다 내 또래 친구 자식들이 생각났어요. 다들 20대이거나 30대 초반인데 ‘그 애들도 느닷없이 당할 수 있겠구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아들의 사고를)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끼임 사고를 당한 건 김승모씨뿐이 아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작성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하청노동자 고 김승모 사망 사고조사서’에 따르면, 10년 전에도 MCT 12호기의 구형 모델인 ‘에이치피(HP) 400’에서 끼임 사고가 일어났다. 2016년 당시 보전작업(기계나 설비를 사용 가능 상태로 유지하거나 고장·결함시 정상 상태로 돌리기 위한 활동)을 하던 정규직 노동자가 기계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외주업체 작업자가 이를 모르고 가동 버튼을 눌렀다. 끼임 사고를 당한 작업자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타 부서에 배치됐다.
김승모씨가 사고 때 작업했던 MCT 12호기도 2005년 출시돼 인터로크가 설치되지 않는 구형 제품이다. 인터로크는 기계 가동 도중에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가동이 멈추는 안전장치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HL만도 평택공장에서는 모두 248대의 MCT가 가동 중인데, 이 가운데 59.7%에 이르는 148대에 인터로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2016년 사고 발생 때 작업자들이 사 쪽에 HP 400의 위험성을 알렸지만, 회사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전장치를 보완하거나 노후 설비를 교체하지 않았다.

2026년 8월4일 경기도 평택 안중장례문화센터에 마련된 김승모씨 빈소 입구에 세워진 팻말. 공주경 기자
무엇보다 김승모씨가 작업하던 현장에 안전관리자나 현장감독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아버지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이 어떤 자세로 들어가서 일했는지 자꾸 되새긴다”며 “얼마나 급했으면 (아들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버튼을 눌렀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사고 당시 피아로딕스와 다른 하청업체가 각각 MCT 11호기 윤활유 작업과 MCT 12호기 절삭유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두 업체가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수행하니 안전관리자나 현장감독이 현장에 입회해 혼재 작업을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계 내부에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전띠도 설치되지 않았고, 작업 반경 내 다른 노동자의 접근을 통제하는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원청이 피아로딕스와 도급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상시적으로 작업을 지시한 점도 드러났다. 모든 안전 절차와 기본 요건이 사라진 채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 쪽이 사고가 발생한 생산라인을 다시 가동하려는 점도 김씨의 속을 타들어가게 한다. 이에 금속노조 관계자들은 24시간 철야 대기하며 공장을 교대로 순회하고 있다. 김씨는 “나 역시 만도처럼 회사를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사람이다. 내가 회사를 미워할 이유가 있겠느냐”면서도 “사고가 났는데 기계를 다시 돌리려는 모습을 보니 점점 미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 쪽이 생산 재개를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 쪽은 HL만도의 생산 중심 경영 기조를 꼽는다. HL만도가 공시한 2026년 1분기 자료를 보면, 평택공장 가동률은 88%에 달했다. 사실상 공장을 쉬지 않고 돌리는 수준이다.
유족으로부터 사고 대응을 위임받은 금속노조 관계자들은 사 쪽의 조문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7월31일 김현욱 HL만도 총괄대표를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았지만 노조의 저지로 조문하지 못했다. 8월3일에는 조성현 대표이사(부회장)의 조문도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여기서 인사하고 묵념하는 게 뭐가 중요해요. 제가 미쳤다고 아들을 차가운 영안실에 집어넣고 있겠습니까. 사 쪽이 성의 있게 나와서 대화하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안을 갖고 와야지 그런 조문은 형식일 뿐입니다.” 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당시 24살)씨가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뒤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는데도 여전히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7월28일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빈소에 찾아왔다”며 “김 대표가 나와 아내에게 ‘지금 너무 힘들고 아프겠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영정 사진 속 아들과 눈을 마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 이렇게 해서 죽었대,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가면 만나자. 이래야 되잖아요. 왜 죽었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저 아이를 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
평택(경기)=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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