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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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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골프장 개발에 제주 주민은 어디 있나

개발업체만을 위한 특별법과 국제자유도시 지정, 늘어나는 관광객에 맞춰
난개발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제주도민 삶의 질은 최하위
등록 2022-06-13 15:02 수정 2022-06-14 00:30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에 찻길 확장 공사가 재개된 지 사흘 뒤인 2022년 6월2일, 베어진 삼나무의 밑동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4년 전 시작된 이 공사로 1천 그루 넘는 나무가 잘렸고, 앞으로도 1천 그루 이상이 베어질 예정이다. 박승화 기자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에 찻길 확장 공사가 재개된 지 사흘 뒤인 2022년 6월2일, 베어진 삼나무의 밑동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4년 전 시작된 이 공사로 1천 그루 넘는 나무가 잘렸고, 앞으로도 1천 그루 이상이 베어질 예정이다. 박승화 기자

이 글은 제주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제주 최초의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인 ‘제주 중문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한 한국관광공사가 펴낸 <중문관광단지 개발 백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제주도 개발은 도민에 의해서, 도민을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적극 홍보해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호응하고 참여하게 할 것.”

강력범죄 발생률 1위, 서울 다음으로 비싼 아파트

1978년 중문관광단지 개발사업에 착수한 이후, 한국관광공사는 1980년까지 1단계 개발을 마무리하고 2단계 개발을 추진했다. 백서에 나온 이 말은 공사가 대규모 토지수용을 예고한 뒤, 2단계 개발계획에 포함된 대포마을에서 주민 450명이 운집한 반대집회가 열린 것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같은 백서에는 중문관광단지 개발의 목적을 ‘외화 수입 증대’라고 밝힌다. 대규모 숙박시설, 스포츠시설, 위락시설, 마리나(해변관광)시설 등으로 채운 중문관광단지 개발 계획은 도민을 위한 사업이 전혀 아니고, 도민에 의해 이뤄질 수 없는 사업임을 고백한 셈이다.

중문관광단지 2단계 개발에 대한 도민의 저항은 외화 수입이 중요했던 군부정권 앞에서 부질없이 무너졌다. ‘별이 내리는 냇가’라는 뜻을 가진 한적한 어촌마을인 ‘베릿내 마을’은 중문관광단지 개발로 진짜 어촌마을이 허물어지고 가짜 어촌마을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베릿내 마을 사람들의 수난을 담은 극단 ‘한라산’의 마당극 <설운 땅 일어서는 사람들>은 땅을 뺏기고 울분에 겨워 술로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과 사정해 자리를 얻은 골프장에 다니는 딸이 몸종 취급을 당하는 현실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을 위한, 제주도 사람에 의한 개발은 그 뒤로도 없었다. 1991년 12월31일 통과된 ‘제주도개발특별법’의 목적에는 ‘도민 복리 증진’이라는 문구가 담겼지만, 수백만 평에 이르고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제주도민이 범접할 수 없는 골프장 개발이 줄을 이었다. 골프장은 제주도민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하수 함양대이자 오름과 곶자왈, 초원이 펼쳐진 중산간 지역을 차지했다. 중산간 지역은 제주 환경과 제주도민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지만, 제주도특별법은 개발을 위해 빗장을 풀었다. 거저 받는 거나 다름없이 땅을 매입해서 개발 승인을 받는 순간 이미 땅값은 수십 배 뛰었다. 개발업자 상당수가 땅만 팔고 사라지는 이른바 ‘먹튀’가 판쳤다. 그 와중에 제주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던 마을공동목장이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목장 주인에서 내려와 골프장 잔디를 관리하는 자리를 얻으려 다투는 신세가 됐다.

빠른 이익 회수를 바라는 국제 투자자들

2002년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라는 법정계획이 세워지고, 2006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도특별법)이 제정된다. 이때 ‘국제자유도시’라는 생소한 단어가 출현한다. 국제자유도시의 정의는 이렇다. ‘사람·상품·자본이 자유로운 곳.’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화하면 사람이 자유로운 곳은 ‘노비자’를 의미한다. 상품은 ‘노택스’(무관세), 자본은 ‘무규제’(규제완화)를 의미한다. 제주도는 ‘노비자’ 지역이고, 제주도특별법의 목적이 ‘규제완화를 통한 국제자유도시 조성’이다. 제주도 전역이 무관세 지역은 아니지만, 제주 관광수익의 거의 절반이 면세점 수익이니 사실 제주는 국제자유도시가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국제자유도시 제주는 어떨까? 제주는 우리나라의 보물섬이라 불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이 제주에 있다. 세계적으로 아끼고 지켜야 할 섬에 매년 관광객 1500만 명 이상이 밀려온다. 제주도 면적보다 15배 큰 하와이 군도보다 1.5배 가까운 관광객 수(2019년 기준)다. 골프장이 30곳 정도 있고, 특급호텔이 즐비하다. 화려한 모습이다. 반면 △제주도민 임금소득 전국 최하위 △강력범죄 발생률 전국 1위 △쓰레기 하수 포화 △서울 다음으로 비싼 아파트 가격 △지하수 고갈 △교통정체 등 제주도민 삶의 질은 전국 최하위다. 과잉관광과 난개발이 그 원인이다.

과잉관광과 난개발은 국제자유도시와 맞닿아 있다. 자본의 속성은 최소 투자로 빨리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한다.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라고 하지만, 자본에 무한 자유를 주면 가장 빨리 많은 이익을 낼 방법을 찾는다. 2013년께부터 중국 자본이 제주땅을 사들여, ‘부동산 영주권제’(부동산투자이민제, 5억원 이상의 분양형 숙박시설을 외국인이 사서 5년을 소유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를 이용해 중국인에게 매우 비싸게 파는 사업이 유행했다.

외부에서는 제주도민이 왜 그것을 막지 못하느냐, 도지사를 잘못 뽑아서 그렇다, 왜 중국 자본에 땅을 파느냐 하는 우려와 원망의 목소리가 크게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제주도에 중국 총영사로 있던 사람은 중국 자본이 왜 제주땅을 싹쓸이하듯 사느냐는 원망에 “제주에 땅 말고 투자할 것이 있느냐?”고 대꾸해 충격을 줬다. 망언이었지만 사실을 반영한 말이다. 제주땅을 싼값에 사서, 분양형 숙박시설을 지어 비싼 값에 팔고, 그 이익으로 초대형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지어 빠른 이익 회수를 바라는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이런 투자가 허용된다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기이한 일이다.

국가는 이런 폐해를 몰라서 방관하고 있을까? 아니다. 국가는 1963년 ‘제주 자유항 구상’부터 줄곧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특정자유구역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의 이익은 때로 ‘외화 수입’이었다가 ‘세수 증대’로 바뀌긴 했지만, 제주를 사들인 자본과 같이 돈이 목적이었다.

하수처리 안 되자 관광객 수 제한한 보라카이

제주의 진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제주공항에 내린 관광객들이 “제주도 공기가 달라”라고 말하던 감탄은 사라졌다. 하수처리도 쓰레기처리도 안 되는 상황에 공항을 하나 더 지어서 관광객을 더 받겠다는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국토교통부 장관이 됐다. 필리핀의 섬 보라카이는 하수처리가 안 되자 관광객을 전면 통제하고, 하수처리 시설을 갖추기 위해 관광객 수를 제한해 들이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유네스코 3관왕’이라 자랑하는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100m 떨어진 곳에 하수처리장을 증설하려 한다. 이를 막기 위해 해녀들이 200일간 노숙농성을 했다. 하수량이 많아 하수처리장을 늘린다는 것이 언뜻 타당해 보이지만, 하수처리장을 늘리더라도 빗물과 하수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처리하지 않은 하수를 바다로 방류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속가능하려면 관광객을 제주도의 수용력에 맞춰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하는데, 늘어나는 관광객에 맞춰 난개발을 확대재생산하는 제주의 잔혹사는 계속되고 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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