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전북 김제의 한 중학교에서 복수의 학생이 장기간 이어진 교사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폭력적인 체벌을 호소했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구체적인 피해 정황을 진술한 학생만 10명이 넘는다. 이후 해당 교사는 징계받지 않았고 땜질식 분리조처로 피해 학생들은 2차 가해에 노출됐다. 그 후 1년,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대신해 싸우고 있다.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겨레21>이 그 과정을 따라가봤다. 학생들이 또 다른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학교명과 취재원 이름은 모두 밝히지 않는다. _편집자
‘그 쌤’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실습이 많은 수업을 담당하는 ㄱ교사는 학생들을 불러 간식을 챙겨주거나 가까이 다가와 학습 내용을 알려주곤 했다. 담임을 맡은 학생들의 부모에게도 아이의 사소한 근황을 전해주는 등 친근한 교사였다. “유치원 선생님처럼 신경을 써준다 생각하고 저는 정말 고맙게 받아들였어요.” 2022년 2월14일 전북 김제에서 만난 이 중학교의 한 학부모는 말했다. “그 뒤에 제가 나중에야 깨달은 거죠. 내가 너무 사람을 믿었구나.”
ㄱ교사와의 대화가 불편하다는 걸 아이들은 조금 더 빨리 알게 됐다. 부적절한 신체 접촉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찝찝한 느낌”과 “불편한” 기분을 가지면서도 친구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예민한가’ 고민한 아이들은 그저 어떻게든 불쾌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스스로 노력해야 했다. 용기를 낸 한 학생(당시 중학교 2학년)이 몇몇 1학년 후배의 목소리를 들어 2021년 5월 학교 쪽에 피해를 제보하면서 알음알음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던 비밀이 세상으로 나왔다. 전북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인권센터)가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21>이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인권센터의 이 학교 인권침해 사건 조사 결정문엔 13~14살 학생들이 겪은 혼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첫 피해 신고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전수조사 성격의 설문조사(2021년 6월9일)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고발했다. “(선생님이 수업 때 신체 접촉을 시도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음.” “친구가 (선생님이) 무섭다고 자신이 겪은 일을 쓰지 말라며 울었음.” “내가 직접 본 것(신체 접촉)도 많고, 그걸 본 나도 불쾌했음.” “다른 학생이 (신체 접촉을 두고) 선생님께 불쾌하다고 말씀드렸으나 다음번에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었음. 매우 기분이 안 좋았고 나도 당할까봐 무서웠음.” “선생님이 자꾸 주말에 만나자고 한다는 것을 들었음. 그 친구가 되게 당혹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났음.”
학생들이 쏟아낸 제보를 보면, 이 학교 학생 상당수는 최초 피해 신고가 이뤄지기 전 이미 ㄱ교사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경우에도 타인에게 듣거나 목격한 학생이 여럿이다. 학생들은 ‘ㄱ교사가 여학생들에겐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남학생들에겐 심한 체벌을 일삼았다’고도 입을 모았다. 나중에 인권센터의 조사에 응한 피해 학생 여럿에게서 “ㄱ교사가 남학생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키거나 때리는 걸 봤다”는 증언이 비슷하게 반복됐다.
초기 조사에서 ㄱ교사는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2021년 6월16일 인권센터 면담조사에서 “학생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신체 접촉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사실확인서도 제출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모두 인지하였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많이 남습니다.” 태도는 나중에 돌변했다. 이듬해인 2022년 1월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이뤄진 재조사에서 그는 가해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다 ‘성희롱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남교사는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가 태도를 바꾼 반년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차 조사(2021년 6월) 당시 인권센터가 학교 쪽에 성고충심의위원회를 열어 사건을 조사하고 ㄱ교사의 징계 절차를 진행하라고 권고하면서 사건은 매끄럽게 해결되는 듯 보였다. 피해 학생의 부모들도 학교를 믿어보기로 했을 때다. “학교전담 경찰관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니 고소하시는 게 좋겠다’고 하는데 생각해보겠다고만 했죠. 고소는 너무 무섭고, 학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했어요.”(피해 학생 부모 ㄴ씨)
그러나 학교 쪽의 대처는 교육부가 2020년 9월 내놓은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처리 대응 매뉴얼’과는 거리가 멀었다. 10명이 넘는 학생이 피해를 호소했지만 교내 성고충심의위는 단 한 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만 진행됐다. 피해 관계자들이 성고충심의위가 열렸단 사실도 모른 채 지내는 동안 학교 쪽은 ㄱ교사의 징계 없이 사안을 마무리했다. 학교 쪽은 ‘징계위원회의 결의사항’이라며 △ㄱ교사의 공개 사과 △2021학년도 담임 배제 등의 내용을 담은 문서를 피해 학생 부모 일부에게 발송(2021년 8월)했다. 징계 여부를 의결하기 위한 인사위원회도, 징계 내용을 결정하는 징계위원회도 열리지 않은 것을 학부모들은 나중에야 알았다. 거짓 문서를 꾸며 발송한 것이다.
ㄱ교사의 ‘사과’도 없었다. 학교 쪽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학생들은 새로운 피해를 맞닥뜨렸다. 학교 성폭력 매뉴얼엔 ‘가해자와 적극 분리해 최대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학교 수업에서 배제된 ㄱ교사가 고등학교 수업을 위해 중·고교가 공유하는 실습실을 찾을 때마다 피해 학생들은 곳곳에서 그를 마주쳤다. “학교에서 마주친 ㄱ교사가 아이에게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고 지나가라’거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학부모 ㄴ씨의 설명이다. 청소년들에게 노골적인 2차 가해가 이뤄진 것이다. 나중에 학교 앞에서 ㄱ교사를 마주쳤던 학부모 ㄷ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분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아이들은 오죽했을까요?”
학교는 학부모의 마지막 믿음까지 저버리고믿고 맡겨둔 학교 쪽의 대응에 실망한 학부모들은 결국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을 찾아 신고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지킬 방법을 찾으려 법조문과 매뉴얼을 뒤졌다. 학교 쪽은 뒤늦게 복수의 피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고충심의위를 다시 열고 ㄱ교사를 2개월 직위해제 처분(2021년 11월)했지만 끝내 ‘징계’엔 나서지 않았다. 직위해제는 일시적으로 보직을 맡기지 않는 것이어서 징계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즈음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선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니냐”는 말도 새어나왔다. 자녀가 직접 피해를 당하진 않았지만 피해 학생 부모들과 발을 맞춰온 학부모 ㄹ씨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저도 아이들이 오해했나 했어요. 그런데 사과 없는 그 선생님과 무책임한 학교를 보면서 이대로 두면 누구든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학교는 학부모들의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 지켜주지 않았다. ㄱ교사의 직위해제 처분기간이 만료되는 2022년 1월이 다가오는데도 학교가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자 학교를 옹호해온 학부모들마저 등을 돌렸다. 당시 이 학교 1·2학년 학생 학부모들은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마음을 모아 학교 쪽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학교는 대응 주체로서 절차에 맞게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나 미흡했으며, 이로 인해 학부모 사이에 오해와 억측이 발생하고 학교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었습니다.” 내용증명에서 이들은 △ㄱ교사와 학생 분리 △해당 과목 기간제 교사 채용 등을 요구했다. 그제야 학교는 “피해 부모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ㄱ교사의 휴직 소식을 학부모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학부모들의 요구로 재조사한 인권센터의 결정문이 나왔다. 이 사건을 살핀 전북도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피해 학생들이 피해가 지속되는 동안 피신청인(ㄱ교사)과 종전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어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지속될 거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상당했을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지 못한 자괴감과 분노,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해 다른 학생에게도 피해를 입혔다는 자괴감 등도 상당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피신청인의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하여, 피해 학생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고 밝혔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2021년 이 사건에 대한 교육청의 징계 권고를 학교 쪽이 이행하지 않아 지역 교육계에 큰 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올해 사립학교법이 개정돼 사학의 징계를 지도·감독할 교육청의 권한이 강화된 만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도 아직 진행 중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적절한 분리조처만 제때 이뤄졌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나 피해 학생들은 사과 한 번 받지 못한 채 14살의 1년을 견뎠다. “아이가 ‘엄마, 어른들이 다 잘못한 건데 왜 내가 그걸 책임져야 해?’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더군요.” 엄마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 엄마들이 지켜보지 않으면 학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테니까. 남은 것은 ㄱ교사의 징계와 피해자 회복이다.
<한겨레21>은 이 학교 교장과 가해자로 지목된 ㄱ교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양쪽 다 연락을 받지 않았다.
김제=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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