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언더도그마(‘사회적 약자는 선하다’는 맹목적 믿음)에 빠진 대중과 정치권 탓에 제대로 통제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 비판의 최전선에 있다. 막강한 발언력을 지닌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민을 볼모로 한 불법시위를 멈추라며 장애인 단체에 대한 언더도그마를 지적했다. 전장연은 가장 뜨거운 비판과 논쟁의 중심에 섰다.
정말 우리 사회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에 관해 언더도그마에 빠져 있을까?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하다는 부당한(?) 취급을 받기보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민폐의 존재라고 여겨진 일이 많을 것이다. 몇몇 대표적인 온라인 게시판을 둘러봤다. 장애인을 선하다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고, 오히려 “장애인들 직접 상대해보면 어떤지 실체를 알게 된다”는 유의 주장이 있었다. 장애인 단체가 건물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제도를 이용해 갑질을 한다는 고발도 있었다(이준석을 지지하는 어떤 유튜버는 페이스북에 좌파-중국-장애인 단체의 커넥션을 암시하며 “건물주인 당신, 주사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BF 인증 사업을 가장 크게 하는 단체는 이준석이 협력을 공언한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이고, 전장연은 BF 인증 사업을 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한 여러 쟁점에서 합리적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태도만을 취해왔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2021년 4월12일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 ‘감 떨어진 민주당 ‘갬성’ 정치에…2030 어리둥절’) 이준석은 페미니즘 논란을 비롯해 관련된 여러 사안에서 자신을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과 대척점에 있는 이성적인 인물로 재현하려 애썼다. 전장연에 대한 언더도그마를 비판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민주당이 감성정치로 일관했다는 주장이 타당한지는 더 따져볼 일이지만 172석을 가진 여당이 그간 지하철 시위에 진지한 해결 노력을 보이지 않다가 이준석에 의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자 “약자의 하소연”(양이원영 의원 페이스북)을 들어야 한다고 말을 얹고, 의원 10여 명이 느닷없이 휠체어를 타고 출근길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감성이 충만함은 분명해 보인다.
출근길 지하철 안의 그 장애인 활동가들은 그저 ‘약자’가 아니다. 이들은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경쟁하고 협동하는 동등한 시민이지, 체험하고 들어주고 감동하는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다수 시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민들은 동정심에 눈물을 훔치느라 시위를 묵인하지 않았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자립생활 권리를 지지하는 이성적인 이유에서 지하철 안 불편을 감수하거나 활동가들에게 커피를 사주며 격려했다. 반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비판하고 욕하며 소리를 지르고 수사기관에 고발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동아시아에서 다섯 번째쯤 많은 욕을 먹었고 전과 27범이 됐다. 동시에 나를 포함해 많은 장애인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엄청난 부채감을 느끼는 장애인 인권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전장연은 강하고 정당한 만큼의 지지를 받고 있고, 나쁘고 불법을 저지르는 만큼의 욕과 비판을 받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장애를 체험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장애인들 비판도 못하냐고 따지지만, 지하철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동등한 시민들 간의 주장과 지지, 비판과 갈등이다. 여기에 언더도그마가 어디 있는가?
이준석은 ‘용기 있게’ 일주일 남짓 사이 수십 개의 페이스북 게시물로 전장연을 폭격했다. 정당의 대표이자 방송인인 그의 계정 팔로어는 17만 명이 넘고, 방송사와 인터뷰할 기회도 언제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불법시위를 하는 것은 ‘비문명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어쩌면,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에 열광하던 지식인들 가운데서 고고히 혁명의 ‘비문명적’ 행태를 비판했던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전통을 이으려 했는지 모른다. 지적이고 용감한 정치인이던 버크는 1790년 11월 펴낸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법률과 전통 속에 구현된 한 사회의 질서를 대중이 보편적 인권(자연권)을 내세워 공격할 때 공동체는 분별력을 상실하고 폭력과 무질서의 길로 접어든다고 지적했다. 버크는 혁명적 분위기에 휩싸인 대중(People)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왕과 왕비를 끌고 가 목을 치는 모습에 경악했다. 버크는 앙시앵레짐(구체제)에 억압받는 대중의 삶에 동정심을 가졌지만 민중의 봉기로 사회를 뒤집는 일은 결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믿었다. 프랑스혁명은 이후 버크의 예상대로 흘러가 결국 민주적 공화정을 수립하기는커녕 나폴레옹 제국의 시대로 가는 문을 연다.
1970년대 일본 장애인단체 푸른잔디회는 “비장애인의 문명을 부정한다”는 행동강령을 내세우고 버스와 목욕탕, 도로를 점거했다. 주디스 휴먼이 이끄는 미국의 장애인들은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연방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하고 교차로 한가운데를 휠체어로 점령했다. 영국의 장애인들은 런던 시내의 버스를 휠체어로 가로막았다. 전장연을 비롯해 한국의 장애인들도 지난 20여 년간 지하철과 버스를 세우는 시위를 통해 이동권과 자립생활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왔다. 이 역사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에 근거해 기존 법질서와 ‘문명’에 도전한 상징으로서 선명하다. 이러한 도전이 오늘날에는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으로 불린다는 점을 강조해두자. 지하철과 버스를 세우는 행위는 장애인이 시민들의 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민’인 장애인이 지배적인 질서에 불복종하는 것이며, 시민적(civil)이라는 말 자체가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에드먼드 버크와 그 후계자들의 생각처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한 사회의 법과 질서를 뒤흔드는 시도는 종종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은 충분히 정당하다. 전장연이 지하철을 타는 행위는 왕비의 목을 치는 것과 관련이 없고, 이준석이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행위는 버크의 저술에 비교하기 민망하지만, 장애인의 용감한 지하철 시위와 정당 대표의 주저 없는 비판은 전통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사상적 가치 논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준석과 그를 지지하는 일부 유튜버는 지하철을 점거하기는커녕 휠체어를 탄 6명이 탑승하느라 20여 분을 지연시킨 행위에 관해서조차 분별력 있게 대응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이준석의 페이스북 포스팅은 전장연이 박원순 서울시장일 때 하지 않던 시위를 오세훈이 시장이 되자 한다는 코멘트로 시작한다. 박경석은 이명박부터 박원순까지 모든 서울시장을 괴롭힌 사람임을 알 텐데도, 그는 뒷배경이 있다는 듯 의혹을 던진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는 시민에게 한 시위 참가자가 ‘버스를 타고 가라’고 외치는 영상을 게재한다. 이 참가자는 사과하면서 버스를 타고 가시라고 말했지만, 그 맥락은 편집된 영상이었다. YTN에 출연해서는, 박경석의 부인이 정의당의 부대표이며 전장연의 전 정책국장 부인이 김예지 의원실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언급한다(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전장연을 찾아가 정치인으로서 책임지고 사과했다). 이에 호응하듯 한 보수 진영의 대표 유튜버는 언급된 이들의 실명을 공개했고 이들이 ‘주사파’와 연계됐다는 의혹을 (아무 근거도 없이) 제기했다. 그는 TBS에서 일하는 어떤 진행자의 자리를 탐내는 꿈나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억압받는 사회적 소수자가 법질서에 맞서 제기하는 시민불복종의 당위성과, 공동체 운영의 책임을 맡은 정당 대표의 문제 제기에 관한 가치 있는 정치적 논쟁은 등장할 여지가 사라지고 말았다. 늘어난 것은 장애인 단체와 주사파의 커넥션을 제기한 유튜버의 구독자 수, 이준석의 포스팅 아래 달린 강렬한 댓글이었다. 댓글 가운데는, 장애인을 모두 한군데 모아 불을 지르자거나 “몸만 병신이 아니라 마음도 병신인” 자들을 선로에서 밀어버리자는 증오가 가득했다.
정치인 이준석은 혁명적인 열정을 품은 ‘약자’의 저항을 온건히 포섭해 건설적인 사회를 추구하려 했던 위대한 보수주의자와 조금도 유사한 점이 없었고, ‘감성정치’를 비판하던 자신의 입장과도 정반대로 향했다. 공론장에는 증오의 감정이 넘실거리는데, 그는 여전히 장애인들에 대한 세상의 ‘언더도그마’(이 무슨 역설일까?)를 공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약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감상주의’를 단호히 꾸짖는 자칭 합리적 자유주의자들이 결국 강력한 반동의 정서를 집결시켜 누구보다 감성적인 정치로 나아가는 일은, 정치의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마크 릴라의 <난파된 정신>을 보라).
필요한 말과 보여주는 말4월13일 JTBC에서 박경석과 이준석은 생방송 토론을 예정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박경석은 달변이 아니고 생방송 토론 경험 따위도 없으므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굴욕을 당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세상에 필요한 말이라면 하고야 말 것이다. 반면 자신을 구체제에 맞서는 영웅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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