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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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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코첼라’ 패노메논, 물음표로 남지 않으려면

박진영이 공개한 음악축제 ‘패노메논’(Fanomenon) 밑그림, 4대 기획사 위주의 ‘케이팝 스타 총출동’ 아닌 다채로운 라인업을
등록 2026-08-13 22:42 수정 2026-08-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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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코첼라에서 제니는 45분간 모든 것을 쏟아내는 벅찬 무대를 선보였다. 제니 인스타그램

2025년 코첼라에서 제니는 45분간 모든 것을 쏟아내는 벅찬 무대를 선보였다. 제니 인스타그램


되도록 매년 4월 둘째 주말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때에 따라선 셋째 주를 비우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이 열려서다. 해마다 미국에 다녀오는 건 아니다. 2주에 걸쳐 진행되는 코첼라는 유튜브에서 거의 모든 무대를 생중계한다. 수백만원을 들여 행사가 열리는 사막지대까지 가지 않아도, 인터넷만 연결됐다면 집에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덕분에 2026년에도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의 컴백 무대, ‘팝의 여왕’ 마돈나가 깜짝 등장해 화제를 모은 사브리나 카펜터의 화려한 공연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2026년 7월2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27년 패노메논 추진 계획 발표’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진영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2026년 7월27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27년 패노메논 추진 계획 발표’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진영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한국인의 특기는 국외에서 잘나가는 무언가를 한국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전에도 두바이 초콜릿을 두바이 쫀득 쿠키로 바꿔내지 않았나. 코첼라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한국판 코첼라’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한국 댄스음악의 상징적 인물이자,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케이팝 제작자 박진영이다. 그는 2025년 10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세계 톱스타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미국 코첼라와 롤라팔루자처럼 권위와 신의가 쌓인 축제를 만들 겁니다.” 그가 2026년 7월27일 ‘2027년 패노메논(Fanomenon)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밝힌 포부다.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저스틴 비버 팬의 모습. 누리집 갈무리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저스틴 비버 팬의 모습. 누리집 갈무리


팬덤 소비를 부추기는 시상식?

 

패노메논, 이름도 생소한 이 단어가 오늘의 화두다. ‘팬’(fan)과 현상을 뜻하는 영단어 ‘phenomenon’의 합성어로 ‘팬들이 일으키는 현상’이란 뜻이라고 한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패노메논은 2027년 12월2일부터 12일까지, 총 11일간 열린다. 2027년 5월 완공 예정인 서울 창동의 서울아레나와 경기도 고양에 있는 킨텍스 제2전시장이 주무대다. 행사는 시상식과 공연, 전시와 체험 행사, 세미나 및 비즈니스 포럼까지 다채롭게 구성된다. 주최 쪽은 11일간 총방문객 52만 명, 그중 국외에서 오는 관광객이 20만 명에 달하고, 약 1조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리라 예상한다. “초유의 일”이라는 최휘영 장관의 말처럼, 계획대로라면 우리 대중문화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규모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벌써 초 치긴 싫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시상식부터 살펴보자. 패노메논 시상식의 가장 큰 특징은 팬덤이 수상자가 된다는 점이다. ‘팬들이 일으키는 현상’이라는 행사 명칭에 힌트가 있다. 이들은 분야별로 한 해 동안 어떤 팬덤이 가장 뜨거웠는지를 조사하고 분석해서 톱10을 선정하고, 그중 최고의 팬덤을 뽑겠다고 한다. 케이팝 팬들은 단순히 ‘노래 좋네’ 하고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의 음악과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에 사명감을 갖고 함께하는 파트너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케이팝 팬덤의 특성으로 규정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란다. 편의를 위해 상은 가수가 대리 수상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상의 기쁨에는 흔히 부와 명예, 둘 중 하나는 따라붙기 마련이다. 패노메논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단 부는 확실히 따라오지 않는다. 오히려 도망간다. 상을 받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돈과 시간을 들여 아티스트를 지원했다는 의미 아닌가. 부가 따라올 리 만무하다. 케이팝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덤으로 선정돼 상을 받으면 누군가는 그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게 명예로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팬덤에 그런 명예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그 상을 받기까지 그들은 앨범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팬 사인회에 응모하기 위해 똑같은 앨범을 (최소) 수십 장씩 사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오랫동안 팬에게 과도한 소비를 유도하는 여러 장치를 만들어둔 케이팝 산업이 이제 와서 역시 케이팝 팬덤은 다르다며 치켜세우고 상을 주는 건 어딘가 이상한 일이다.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스웨 리의 공연 사진. 누리집 갈무리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스웨 리의 공연 사진. 누리집 갈무리


코첼라 성공 공식은 ‘다양성’

 

그렇다면 케이팝 4대 기획사(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가 합작법인 설립까지 추진하며 준비 중이라는 ‘한국판 코첼라’는 어떨까. 창동에 생기는 2만 석 규모의 서울아레나에서는 행사 2주간 금·토·일 총 6일에 걸쳐 케이팝 그룹들이 무대에 오르는 헤드라이너급 공연이,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는 여러 가수가 출연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특히 킨텍스의 전시관 5개를 빌려 축구장 7개 정도의 공간에서 공연도 보고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푸드, 패션, 뷰티 등 한국의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복합 전시·체험 공간을 마련한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 코첼라에서도 음악 공연만큼이나 각종 전시와 체험 부스, 여러 설치미술 작품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최근에는 2년 연속 코첼라에 참여한 삼양식품의 불닭소스가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일단 겉보기엔 꽤 그럴듯한 모양새다.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그 대단한 무대에 오르는 가수가 누구냐는 것이다. 박진영 위원장은 아직 라인업을 발표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2026년 4월 열린 코첼라의 라인업은 행사 개최 7개월 전인 2025년 9월에 나왔다. 2027년 12월에 열리는 패노메논은 아직 1년하고도 4개월이나 남았으니 이르긴 하다. “‘코첼라’만 해도 우리나라 가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레벨로만 가면 톱스타들이 다 참여하려고 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좀 의문이 남는다. 막연히 코첼라처럼 대형 페스티벌이면 톱스타들의 섭외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얘기처럼 들려서다.

코첼라는 톱스타들이 다 참여해서 코첼라가 아니다. 출발부터 그랬다. 코첼라는 1993년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펄 잼이 티켓 판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티켓마스터에 반발하며 캘리포니아주 사막도시 인디오에 2만5천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공연한 일에서 결정적 힌트를 얻었다. 그렇게 1999년 열린 첫 번째 코첼라는 벡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헤드라이너 아래 일렉트로닉과 언더그라운드 힙합, 인디록을 두텁게 채워 장르 다양성을 챙겼다. 물론 지금의 코첼라는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사브리나 카펜터, 저스틴 비버 같은 팝의 기수를 앞세우는가 하면, 티켓 판매를 보장하는 주류 뮤지션을 적극 포용하고 글로벌 브랜드의 마케팅 각축전이 벌어지는 초대형 상업 행사다. 그렇다고 태초의 정신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코첼라에는 여전히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얼터너티브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도 턴스타일, 웻 레그 같은 팀이 음악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혹자는 ‘한국판 코첼라’는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적 표현일 뿐인데, 너무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비유도 알맞게 들어야 비유다. 케이팝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공연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팬클럽별로 모여 앉아 세차게 풍선을 흔들었던 드림콘서트다. 톱스타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만으로는 드림콘서트 이상이 되지 않는다. 진정 원하는 그림이 코첼라라면, 4대 기획사 외에 더 많은 케이팝 기획사, 나아가 가요 기획사와 힙합, 인디펜던트 레이블 등이 논의에 참여하며 풍성하고 다채로운 라인업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에스파만 나올 게 아니라 다비치, 이승철, 나우아임영, 잔나비, 임영웅, 옥상달빛, 백지영, 공원 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한국판 코첼라’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공연 사진. 누리집 갈무리

코첼라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공연 사진. 누리집 갈무리



대중문화교류위원회 본질 잊지 말아야

 

사실 4대 기획사가 순수하게 모여 합작법인을 내고 공연을 하는 거라면야 그게 드림콘서트가 되든 코첼라가 되든 관계없다. 문제는 여기에 정부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4사가 한목소리, 한 팀으로 움직이려고 회사까지 만들었다. 이 회사와 정부가 힘을 합쳐서 공익적인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는 박진영 위원장의 말처럼, 정부가 참여하는 순간 공익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박 위원장이 말하는 ‘공익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미 세계시장에서 충분한 영향력과 경쟁력을 확보한 거대 케이팝 기획사와 아티스트에게 국가적 지원으로 추진력을 더하기? 그보단 대중음악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아티스트와 레이블에도 무대를 제공하며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공익에 걸맞지 않을까.

2025년 코첼라에서 제니가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코첼라에서 제니가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영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진짜 힘든 일”을 하려고 한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이해한다. 수많은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일이니, 얼마나 많은 조율과 조정과 절차를 거쳐 만들어가야 하겠나. 여기에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나오지 않고,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일에 이렇게 구구절절 날을 세우는 사람까지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구체적 계획이 나오지 않고,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일이기에 구태여 말한다. 음악산업 종사자이자, 음악 팬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패노메논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단, 4대 기획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 케이팝만의 성공이 아닌, 대중음악과 한국 문화 전반이 다 같이 아름답게 성공하길 바란다. 이를 추진하는 곳이 케이팝부흥위원회가 아닌 대중문화교류위원회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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