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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여성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명예살인, 지참금 살인, 신부 화장… 고유한 문화와 경제에 기반한, 문명의 기원과 동일한 페미사이드
등록 2021-12-22 00:03 수정 2022-01-03 16:19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2020년 5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나와 자매의 안녕을 바라는 여자들 모임’ 소속 회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2020년 5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나와 자매의 안녕을 바라는 여자들 모임’ 소속 회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박완서의 장편 <도시의 흉년>의 주인공은 남녀 쌍둥이다. 전통사회에서 쌍둥이가 남녀로 태어났을 때 여아의 운명은 이러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울지 못하도록 질식시킨 다음 유기한다. 여아를 살해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여아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아들의 먹을거리를 뺏어 먹은 ‘나쁜 ×’인데다 둘이 근친상간을 했을 것이라는 미신이다. 작가는 이를 “상피(相避) 붙는다”고 썼다. 근친 간의 섹스를 의미하는 이 표현은 고려시대 친족이 같은 업무에 종사할 때부터 사용됐다.

아들의 것을 빼앗아 먹어 죽임당하는, 여아 살해

여성혐오에 기반한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살해). 이 단어가 번역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페미사이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혐, 남혐” 같은 황당한 대칭이 생긴다. 박완서의 작품은 페미사이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설명한다. 아들이 딸의 먹을거리를 빼앗았으니 그 벌로 태어나자마자 남아를 죽인다는 설정이 가능한가? 또 근친상간이라면 왜 여아만 죽어야 하는가? 출산이든 쾌락이든 ‘동의하의 섹스’도 여자는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미신이 아니다. 음식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사회의 이중 메시지, 즉 여성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지만 먹어서는 안 되고, 남자는 섹스를 해야 하는데 그 대상인 여성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정신분열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페미사이드다.

만연한 페미사이드는 남성만이 인간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남녀 쌍둥이의 여아 살해는 현대의 여아 임신중지(낙태)로 이어졌다. 저출생 담론 이전까지,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여아 살해 국가였다. 한국의 태아 성감별을 위한 초음파 기술은 미국보다 100년 이상 앞서 있다. 여성은 태어나자마자 가족에 의해 죽었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자 여성의 몸 내부에서 살해되다가, 이제는 길거리 ‘강남역’에서 죽는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젠더를 생물학적 본질주의로 호도하기 쉽고, 맞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피살자인 경우, 범인의 70%는 남성 파트너다. 이것은 사회적 현상이다. 물론 남성도 살해(Homicide·성 중립적 표현이다)되지만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같은 남성에 의해서다.

2016년 5월 ‘강남역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당시 ‘1004개의 추모 포스트잇’ 가운데 피해 여성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의 글을 읽고 울었다. 나열하기도 숨찬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유곽(집결지), 기지촌, ‘일반’ 성산업, 성폭력, 아내폭력(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폭력), 실종, 데이트폭력, 스토킹,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 시술로 인한 여성의 죽음은 흔한 일이다. 나는 당시 여성들의 충격과 분노가 놀라웠다. 이들은 ‘변질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평범한 여성이다. 여성은 여전히 분노한다. 왜일까. 여성도 사회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어도 ‘남성 프로파일러’의 말만 믿는다.

마녀로 지목된 여자들을 화형시키는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그림. 도서출판 궁리 제공

마녀로 지목된 여자들을 화형시키는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그림. 도서출판 궁리 제공

당연하고도 쉬워서 안 보이는

페미사이드는 문명의 기원과 같다. 중세의 마녀 화형부터 조선시대의 열녀문(烈女門, 남편이 죽고 아내가 자살하면 임금의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친정에서 딸에게 자살을 권유했다)문화까지. ‘미망인’(未亡人)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남성이 자신을 남성(인간)으로 개념화하려면, 반드시 남성이 아닌 이들이 필요하다. 자신(one) 외 타자(the others)의 존재가 그것이다. 주체는 타자 없이 존재할 수 없는, “타자의 인질”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이 때문에 남성문화는 무의식적, 제도적 차원에서 타자를 통제한다. 이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요, 여성살해다. 이는 개인적 차원부터 국제정치까지 관통하는데, 페미니스트 국제관계학자들은 이를 “개인적인 것은 국제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international)라고 개념화했다.

군사학에서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이 대표적이다. 이 개념은 남성문화의 합리적 공포를 정확히 표현한다. “네가 나를 무시할 것 ‘같으니까’, 너를 먼저 공격하는 것은 정당방위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합리화된다. 미국의 중동 지역이나 북한에 대한 압박이 이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같으니까’라는 확신이다. 최근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비무장 흑인 2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18살 백인 카일 리튼하우스가 완전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남성문화의 대표적인 편집증이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공포와 우월의식의 도착(倒錯), 즉 젠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페미사이드는 사이코패스 언설로 포장되기 쉽다. 특히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당연하고 쉬운 타깃’이다. 가장 비가시화된 현상이다. 이 비가시화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만연해서이다. ‘군 위안부’ 운동에도 참여한 샬럿 번치는 성차별과 페미사이드가 당연시되는 이유를 “성차별과 페미사이드가 너무 많아서 손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기와 같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숫자(Dark Figure)는 모든 정치의 열쇠다. 보이지 않는 문제, 외면하고 싶은 문제, 파악할 수 없는 문제. 왜 어떤 문제는 드러나고 어떤 문제는 덮이는가, 어떤 문제는 문제로도 상정되지 않는가.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가. 권력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질문이다. 무엇이 진실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공동체 앎의 경계 문제다.

아내가 숨지면 과실치사, 남편이 숨지면 살해

우리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 예술 작품에 재현된 여성의 죽음, 납치, 고문에 익숙하다. 페미사이드는 대표적인 숨겨진 범죄다. 2018년 김태균 감독의 <암수살인>(暗數殺人)은 매우 윤리적인 보고서이다. <암수살인>의 감독은 6년간의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주인공인 경찰은 “암수살인이 경찰청 통계로만 한 해 200건”이라고 호소한다. 실제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완전범죄를 지능싸움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비윤리적이다. 암수살인처럼 피해를 파악할 수 없는 범죄가 완전범죄다. 신고도, 주검도, 증거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머리 좋은 가해자도 없다. 유일한 증인은 범인이다. 미제 사건도 아니고 범죄 자체가 가시화되지 않은 경우가 완전범죄다.

하룻밤에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아내폭력으로 혹은 성산업에 종사하다가 사망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강남역 사건’은 드러났을 뿐이다. 현행 성폭력 관련법은 1991년 제정 운동이 시작돼 1994년부터 시행됐다. 법이 제정된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젠더폭력은 줄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점점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뿐이고 그나마 ‘극단적 사례만 매스컴을 탄다’.

남성문화는 ‘여성의 비명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성의 일상적 주취폭력(酒醉暴力)은 “남자는 원래 저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아내폭력 사건에서, 남편이 때리다가 아내가 숨지면 ‘과실치사’인데 여성의 정당방위로 남편이 숨지면 ‘살해’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에는 남성이 여성을 구타·고문하는 것은 당연해서 과실(過失, 실수)에 불과하지만, 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뚜렷한 목적과 의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이 때리는 남편에게 저항하면 더 맞거나 ‘부부싸움’이 된다. 그러므로 정당방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은 남편이 잠들거나 만취 상태일 때뿐이다. 이 순간 외에는 남편의 폭력을 멈추게 할 수가 없다. 남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내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여성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가 없다. 여성의 정당방위(Self-defence, Fair Fight)는 인정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몬스터>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이다. 1992년 성착취 피해 여성이던 에일린 캐럴 워노스는 남성 6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워노스는 전형적인 빈곤과 가정 내 학대로 고통받았지만, 그의 변호사는 다른 남성 연쇄살인범처럼 이러한 ‘가해자 서사’를 내세우지 말라고 종용했다. 첫 ‘살인’은 성구매자의 살해 위협으로 시작된 우발적 사고였다.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정당방위였지만, 연쇄살인범과 피해자는 언제나 성별화된다. 여성 연쇄살인범과 남성 성판매자라는 구조는 없다. 이것이 페미사이드다.

페미사이드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각 사회에서 그 형태가 다르다. 한국은 여아 임신중지와 가정폭력으로 유명했다(페미사이드는 아니지만, 지금은 성형시술로 바뀌었다).

젠더에 기반한 정치경제학

성인 통과 의례로 여겨지는 음핵 절개, 명예살인(Honor Killing·남성의 명예를 더 훼손했을 때 여성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행위), 스토닝(돌로 때려서 살해), 지참금 살인, 신부 화장(Bride Burning), 남성의 구애를 거절했을 때나 집안 간 원한으로 상대 여성의 얼굴에 황산을 여러 차례 뿌리는 행위, 10살 이하 여자 어린이의 조기 결혼으로 인한 사망, 아내 순장(Sati·인도에서 브라만 계급의 남편이 죽어서 화장할 때 아내도 불길에 같이 뛰어들어 숨지면 내세에도 같은 계급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에서 행해짐), 인신매매(이전에는 성매매 성격이 강했으나 지금은 태아의 유전자를 끄집어내기 위해 임신할 여성을 구매) 등 폭력과 살해의 성격은 각기 다르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

젠더에 기반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음핵 절개 시술자는 나이 든 여성들인데, 시술비는 이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미개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경제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저자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stop-femicide.hani.co.kr)에 접속해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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