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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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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의 벼랑 끝에서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난무하는 폭력과 세상의 방관 속 성매매 현장에서 지낸 20년, 누구도 착취당하지 않는 삶을 위해 여성 지원 확대하고 성매매 수요 차단해야
등록 2021-12-22 23:12 수정 2021-12-23 23:52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여성인권단체가 2018년 9월19일 ‘성착취 반대 여성 인권 공동행동’ 행사를 열고 성매매 방지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여성인권단체가 2018년 9월19일 ‘성착취 반대 여성 인권 공동행동’ 행사를 열고 성매매 방지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내가 만난 자갈마당의 성매매 여성들은 상품으로서 몸을 준비하느라 아팠고, 그 몸을 상품으로 사용하면서 또 아팠다. 낮밤의 경계가 없는 생활로 인해 이른 폐경과 불면증을 얻었다. 그들은 엉망이 된 생체리듬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불면증에 이어 우울증은 성매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증상이었다. 이들은 자해나 자살 시도를 했고, 자살에 이른 사례도 많다.”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신박진영 지음) 중에서

성매매로 유입됐을 때 나는 18살 미성년자였다. 업주들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제는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돈을 벌어야 했던 나는 돈벌이 수단과 방법을 고민한 적이 없었다. 돈이 없어 고생하는 가족 모습을 보기 싫었고, 나 또한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부자가 될 생각도 없었고, 단지 궁핍한 생활만 벗어나면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계획도 있었다.

비참함이 짓누를 때 자책과 자학

그러나 성매매는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정폭력, 성폭력과는 다른 차원의 폭력이 나를 기다렸다. 나는 성매매로 모든 것을 잃었다. 나이도, 이름도, 살아왔던 고향도.

폭력적인 아버지와 나를 방임하는 어머니에게 받은 폭력으로 나는 수면장애를 겪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언제 들어와서 나를 때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 늘 긴장하고 예민하게 지냈다. 그런 수면장애는 성매매라는 폭력이 가해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신체리듬을 박살 냈다.

성매매 업소는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경제적 수단이었기에 힘들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고통스럽다는 말도 한 잔의 술로 날려버렸다. 돈이 없어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참함이 나를 짓누를 때마다 나를 원망하고 자학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다량의 수면제를 먹거나, 술을 잔뜩 마시고 바닷가 방파제 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나를 돈 몇 푼으로 웃음거리로 삼는 성구매자와 내 고통을 뒤로하고 돈 잘 버는 업주가 너무나 싫었다.

죽지 못하고 다시 업소로 돌아갔을 때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니 오히려 편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느끼지 못했다.

업소에서는 살이 쪘다는 이유로 강제로 병원에 다니게 했다.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면서 얼굴색이 까매지고 손이 심하게 떨리고 물만 계속해서 마셨다. 원하던 몸무게로 살이 빠지니까 성구매자의 입맛에 맞는 여성이 됐다고 업주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다이어트 약을 끊으면서 다시 살이 찌고 극도로 불안한 증상을 느꼈다. 탈성매매를 한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업소에서 친하게 지낸 여성이 업주의 선불금 독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나는 오히려 그가 부러웠다. 나는 죽을 용기도 없었다.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업주는 그를 기억이나 할까. 업주들이 ‘죽어도 빚은 갚고 죽으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빚을 받아낼 테니 도망가보라’고 하던 그 말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해리현상을 겪었다. 무척이나 괴롭던 장면이 부분적으로 사라져 앞뒤 맥락이 없어졌다. 탈성매매 이후 오랫동안 진행한 심리상담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고, 그날 그 장면이 소환됐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살아내려고 했던 행위’라고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나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늘 울음 앞에서 부모도, 업주도, 성구매자도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폭력당해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성매매 현장에서 많은 여성이 죽어간다. 성구매자에게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하다. 성구매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역겨운 성행위와 온갖 변태 짓을 요구해도 죽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업주들은 ‘엄마’ ‘아빠’ ‘삼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막상 성매매 여성이 폭력을 당하면 손님을 끊기게 했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잘못을 따진다.

사회를 뒤흔드는 연쇄살인이나 범죄의 피해자로 성매매 여성이 숨지는 일이 종종 보도된다. 범죄자는 성매매 여성이 몸을 잘못 관리했다며 죽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성매매 여성이 범죄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가족과 단절됐고, 업주나 업소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있어서다. 그래서 성매매 여성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드물다.

“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남의 성을 사는 행위를 쉬쉬하고 덮어주는 것, 더 어린 여자의 성을 구매하기 위해 어플을 만들고, 성행위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해서 돌려보며 웃는 구매자들을 심판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회 모두가 방관자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봄날 지음) 중에서

모든 폭력은 나만 겪은 피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든 사람을 만났나보다.’ ‘악질 업주를 만났나보다.’ 그러나 내 존재를 찾아준 성매매 경험 당사자 네트워크 ‘뭉치’로 인해 이 모든 폭력은 성매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은 폭력임을 알았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비참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는 성매매 현장에서 나는 20년을 견뎌왔다. 내가 겪었던 폭력을 폭력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끊임없는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과 그루밍(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 등 비난을 일삼는 정서적인 폭력 상황에서 나는 나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고, 성매매는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고 그래서 비난받은 것이라고 자학했다. 온갖 폭력으로 둘러싸인 성매매 현장을 ‘돈 버는 곳’이라고, ‘여성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나는 탈성매매 이후 “성매매가 폭력”임을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수하게 던졌던 욕을 기억한다. 그렇게 짓밟혔던 경험이 나에게 용기를 줬고, 다시 사는 인생에 윤활유가 됐다.

기억하고 위로하고 애도하고

여성의 성을 사서 폭력의 환희를 느끼려는 성구매자와, 성구매 수요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된 알선업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이 사회 때문에 성착취가 더욱 범죄로 진화한다. 사람들이 성착취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나쁜 범죄’라는 한마디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반인륜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착취를 막는 유일한 길은 ‘수요 차단’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안녕하기를 바란다. 누구도 착취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성매매로 인한 트라우마와 여러 질병을 앓는 여성에게 지원을 확대하고, 그들이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몫이라 말하고 싶다.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저자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stop-femicide.hani.co.kr)에 접속해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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