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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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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폭력, 가장 사소한 죽음

판결로 기록된 지난 5년11개월 성매매 여성 살해 29건, ‘성매매 굴레’와 ‘사소한 이유’ 사이 보호장치도 애도도 없이 목숨 잃은 여성들
등록 2021-12-22 13:31 수정 2021-12-23 05:07
일러스트레이션 정다은

일러스트레이션 정다은

2021년 12월2일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 법정, ‘노래방 도우미’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은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판부가 강도살인 혐의를 묻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항변했다. “제가 살해한 건 맞는데요. (공소사실이) 왜곡되고 변형됐다는 말씀을….” 그는 울먹거렸다. “순순히 자백했는데 수사기관이 그걸 빌미로 저를 더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물엔 피해자를 향한 애도는 전혀 없었다.

사건이 되지 않는 죽음

강윤성이 8월 살해한 두 명의 여성은 모두 직업소개소를 통해 연결된 ‘노래방 도우미’다. 두 여성 모두 강씨가 자수할 때까지 실종 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다.(1) 성매매 여성이나 유흥업소 등에서 일하는 여성은 언제든 강씨 같은 이를 마주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실종되거나 살해당해도 이런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 ‘범죄’로 인식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강력범죄의 위협 앞에서 가장 취약한 피해자가 된다.

신박진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전국연대) 정책팀장은 “강씨 사례처럼 가해자가 자백하지 않는 한 성매매 여성 살해 사건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사화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유색인종보다 백인이 실종됐을 때 언론보도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른바 ‘실종 백인여성 증후군’은 성매매 여성의 죽음에도 나타난다.

<한겨레21>은 성매매라는 거대한 착취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의 죽음에 주목했다. 가장 오래된 여성폭력 문제인 성매매를 짚고 넘어가지 않는 한 여성혐오에 기반한 ‘여성살해’의 사슬을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시스템과 판결문검색시스템을 이용해 2016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1심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 가운데 살해된 성매매 여성 관련 판결문만 따로 추려 흔적을 좇았다. 유흥업소 등에서 처음 만났더라도 교제관계로 발전한 경우를 제외하면 성매매 여성 살해 판결문은 총 29건이었다. 같은 기간 아내살해(205건)나 교제살해(142건)에 견줘 현저히 적은 수다. 정미례 전국연대 정책자문위원은 “(성구매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정체 모를 다이어트약 등을 먹다가 돌연사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최근까지도 너무 많이 있는데 단순 사망으로 처리되다보니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는다. 유가족도 (성매매 여성의 죽음을) 쉬쉬하거나 업주가 위로금을 주고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여관에서 월세 살 때 죽으려고 수면유도제를 먹었어요.”(이도)
“난 두통약을 먹었지. 티켓다방에 있을 때인데 손님이 티켓비를 안 줬어요. 돈을 못 받은 채 업소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 지역에 약국이 딱 3개밖에 없어서 (약국마다) 10알씩 샀는데 1알씩 서비스로 더 넣어줘서 33알을 술과 같이 털어 먹었어요.”(세일)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지음)

순간적 분노, 성매매 대금 때문

그나마 ‘공식적으로’ 성매매 여성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가해자가 재판받은 판결문 29건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빼앗긴 여성의 고통이 담겨 있다. 성구매 남성들이 살해를 결심한 이유는 대개 사소했다. 가해자들은 성매매 대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의정부지법 2016고합○○○), 피해자가 30만원을 가져갔다가 안 돌려줬다는 이유로(의정부지법 2016고합○○○), “(상대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어서(부산지법 2016고합○○○), 돈을 지불했는데도 관계를 거부해서(수원지법 2016고합○○○), 성매매 대금 환불을 요구했는데 주인이 거절하자(광주지법 2019고합○○),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들어서(인천지법 2016고합○○○, 대전지법 2019고합○○○) 성매매 여성을 살해했다. 심지어 성매매 대가로 지불한 8만원을 다시 빼앗기 위해 “40만원을 주려고 뽑아놓았다”며 피해자를 재차 모텔로 유인한 뒤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인천지법 2019고합○○○)

29건 가운데 51.7%(15건)는 가해자가 순간적으로 분노하거나 격분해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성매매 대금 때문에 발생한 살해는 9건(31%), 성관계 요구를 거절당해 살해한 경우는 8건(27.6%)이었다.

“실제 성매매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 행위에 가깝다. 여성이 노동자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고 일정 가치를 기대하는 구매자들이 존재하며 그 기대를 배반할 때 가차 없이 훼손당하고 버려지는 이 과정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존중되지 않는다.”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신박진영 지음)

판결문 속 여성들은 남성의 성적인 욕구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마트 정육코너에서 일하던 30대 남성 ㄱ은 실직과 채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흥주점을 찾았다. 그는 술을 마시는 자리에 동석한 ‘도우미’ 여성에게 “오늘 누군가를 죽이고 자살할 거야”라고 말했다. 여성의 몸을 만지려다 거부당하자 가방 속에 있던 흉기를 꺼내 피해자를 찔렀다. 단지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유였다.(의정부지법 2019고합○○) 살해한 뒤 주검을 추행하는 등 욕되게 한 경우도 있다.

“(약물 하는 남성이) 갑자기 문을 탁 잠그는데 자물쇠가 몇 개나 있고 침대에 눕더니 주사기를 딱 꺼내는 거예요. 같이 맞고 빨리 하자는데,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계속 빌었더니 ‘그럼 너 맞자’ 그래서 밤새도록 맞았어요. 혈관이 다 터졌는데 업주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이로)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

성구매 남성과 단둘이 있어야만 하는 특성 탓에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폭력성에 대항할 수 있는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장소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중국동포인 ㄴ은 숙박업소에서 침대 매트에 깔린 전기장판의 전선으로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인천지법 2016고합○○○)

이중삼중의 취약함

<한겨레21>이 분석한 여성살해 판결문 427건 가운데 판결문에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있거나 탈북민 출신 등이라고 명시된 피해 여성은 28명인데, 이 중 11명(39.3%)이 유흥업소 등에서 일했다. 중국동포, 타이인, 난민 신청을 한 중국 여성 등이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 여성에 견줘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망도 취약하다. 가장 취약한 처지의 여성이 성매매라는 거대한 시장에 진입했고, 이러한 취약함이 다시 여성을 이중삼중으로 옭아매는 굴레가 된 셈이다.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던 타이 국적 여성 2명은 함께 일하는 남성 직원의 부주의로 업소에 불이 났는데 아무런 구조를 받지 못한 채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인천지법 2016고단○○○○) 이들의 죽음은 남성 가해자가 직접 의도적으로 살해한 경우는 아니지만, 남성에 의한 성착취 구조의 피해자로 밀실 같은 곳에서 지내며 최소한의 안전 조처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페미사이드에 포함될 수 있다. ㄷ은 탈북해 중국으로 간 뒤 현지에서 브로커에게 붙잡혀 강제 결혼했다가 2006년 한국에 입국했다. 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던 그는 빌려준 돈 1천만원을 다방 주인이 돌려주지 않아 “갚아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부터 살해당했다.(대구지법 경주지원 2016고합○○)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노래방 도우미’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2021년 8월31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던 중 질문하는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차고 있다. 연합뉴스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노래방 도우미’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2021년 8월31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던 중 질문하는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차고 있다. 연합뉴스

재생산되는 폭력의 굴레

지적장애 여성이나 미성년 피해자들은 업주에 의해 감금된 채 폭력에 노출됐다.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업주 ㄹ은 지적장애 3급 여성을 좁은 세탁실에 가두고 식사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성매매를 강요해오다가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한 뒤 살해했다.(전주지법 군산지원 2019고합○○○) 여성을 유흥업소에 소개하고 돈을 받는 ‘보도방’과 노래연습장 등에 고용됐던 미성년자 ㅁ과 ㅂ은 꼬박 하루가 넘도록 행거봉과 덤벨 등으로 무차별 구타당했다. ㅁ은 숨을 거뒀고 ㅂ은 상해를 입었다.(대전지법 천안지원 2016고합○○) 이들이 폭행을 당한 건, 가해자가 미성년자 고용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살아남은 ㅂ은 한 달 뒤 또다시 업주에게 두들겨 맞았다.

여성의 몸을 ‘거래 가능한’ 도구로 만드는 성매매는 그 자체로 성별을 기반으로 한 폭력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여성폭력을 재생산한다. 신박진영 전국연대 정책팀장은 “(여성살해에서 드러나는) ‘나와만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집착도 성매매와 맞닿아 있다”고 짚는다. “여성을 욕할 때 ‘창녀’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호명하며 ‘(여성이) 헤프게 굴면 (남성인) 내가 징계하겠다’는 인식”이 존재하고 이러한 인식은 다시 성매매 여성을 “아무 짓이나 해도 상관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강간 문화는 진공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규범에 의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안전을 위해 존중받을 자격을 사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 자격으로부터 한 걸음만 떨어져도 강간을 당한 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미키 켄들 지음)

성매매 여성에게 성구매 남성이 신체적 폭력을 행할지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라면, 성매매를 거대한 산업으로 확장해 운용하는 업주는 경제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다. 업주는 선불금을 미끼로 삼아 여성의 몸을 착취한다. 성매매 여성의 옷과 화장, 이동할 때 이용하는 콜 차량 운전 등을 맡은 이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이룬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성매매 여성은 “마담 언니가 ‘손님 레벨에 맞게 우리도 꾸미고 쓰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며 “출근 첫날 하루에 200만원을 벌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빚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서울 오면서 ‘품위유지비’라며 떠밀리듯 산 것들과 각종 비용으로 빚은 이미 8천만원으로 늘어나 있었다”고 했다.(2)

결국 성매매 시장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성매매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성매매 알선업자와 성구매자만을 형사처벌하고,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빈곤·차별·폭행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원해주는 이른바 ‘노르딕모델’이 필요한 이유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 시행하는 노르딕모델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명확하게 규정한다. 노르딕모델은 성매매 수요를 원천 차단하고,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128억원의 수익을 올린 경기도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업주 2명을 2021년 구속하고 수도권 최대 출장 성매매 업주를 검거한 한광규 경기남부경찰청 생활질서계장은 “성매매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도 성매매를 하도록 (업주로부터) 강요당하는데도 검찰이 ‘자발적 성매매’로 보다보니 (업주를) 기소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업자와 구매자가 만든 거대 시장

성매매는 ‘업자’와 ‘성구매자’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장이며 여성을 향한 폭력을 재생산하는 곳이다. 사회가 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여성의 죽음은 계속 보이지 않는 사소한 문제로 굳어진다.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탈성매매 활동가는 “‘성매매가 합법화된 이후 오히려 여성들의 죽음이 더욱 사소한 것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3)

“한국의 성매매는 집단문화다. 남성 집단 내 결속의 장으로 기능한다. 어린 시절부터 남성 동성 집단 내 학습으로 성구매는 당연시된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가 성구매가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 본능이 성구매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게 가능한 사회적 환경이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한국 사회는 여성의 몸을 제물로 삼아 성매매를 묵인하고 때론 권장하며 발전해왔다. ‘죽음 또는 폭력’이란 선택지 앞에 놓인 여성들은 묻는다. 여성도 인간인가.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1. ‘사라져도 모르는 여성들…살해범 강윤성 타깃 된 ‘노래방 도우미’’, 2021년 9월7일 <경향신문>
2.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봄알람
3.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봄알람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stop-femicide.hani.co.kr)에 접속해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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