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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교제살해 유족의 물음 “왜 살인이 아니란 말인가”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 고 황예진씨 어머니 인터뷰… “법정에서 따져볼 수 있는 기회 만들었어야”
등록 2021-12-21 14:55 수정 2022-01-22 01:57
2021년 12월5일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의 피해자 고 황예진씨의 어머니 전아무개씨를 경기도 양주 자택에서 만났다. 예진씨 방에서 예진씨 영정을 든 전씨. 김진수 선임기자

2021년 12월5일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의 피해자 고 황예진씨의 어머니 전아무개씨를 경기도 양주 자택에서 만났다. 예진씨 방에서 예진씨 영정을 든 전씨. 김진수 선임기자

“피해자가 이혼 서류를 작성하려고 하자 ‘같이 죽자’고 위협하며”
“피해자가 다른 이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이유로 말다툼하다 격분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여느 때보다 평안해야 할 시간에, 한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애정싸움·질투·불화 같은 언어로 치환하며, 외면하다, 그 피해가 가시화돼서야 비로소 들여다본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다시 죽음은 잊히고 흩어진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살해는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다. <한겨레21>은 그 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아 도달한 죽음을 한데 그러모았다. 2016년 1월~2021년 11월 배우자(전·현 아내, 사실혼 관계 포함)가 죽음에 이른 사건 205건, 연인을 죽게 한 사건 142건의 판결문을 살펴봤다. 그 죽음들은 각기 다르나, 묘하게 닮아 있었다. _편집자주

“증거조사는 마쳤고요. 양형증인으로 피해자 모친을… 증인석으로 나오십시오.”

2021년 11월18일 서울서부지법 304호 법정. 재판부의 말에 고 황예진(26)씨의 어머니 전아무개씨가 빨간펜과 에이포(A4) 크기의 서류를 들고 방청석에서 증인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재판을 지켜보던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황예진씨는 2021년 7월 일어난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의 피해자다. 이날 어머니는 딸을 때려 숨지게 한, 예진씨의 남자친구 이아무개(31)씨의 1심 재판에 양형증인으로 출석했다. 양형증인은 피고인이 받을 형벌의 정도를 정하기 위해 재판부가 참고로 삼는 증인을 말한다.

전씨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지만 또랑또랑했다. 답변의 한 글자라도 놓칠까봐 감정의 북받침을 억누르는 듯했다. 26분여의 증인신문이 마무리될 무렵, 검사가 “그 밖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피해자 유족은 방 안에서 발생한 1차, 오피스텔 시시티브이(CCTV) 사각지대에서의 2차, 유리벽에 밀치는 등 3차, 사각지대에서의 4차… 외부 주차장 언덕의 5차, 사각지대에서의 6차…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7차 폭행이 발생했음을 시시티브이 영상 분석으로 확인했습니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일방적이고 계속적인 폭행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명확한 살인입니다.” 전씨는 딸이 폭행당한 장소들을 나열하다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시티브이 영상 공개로 묻고 싶은 것

고 황예진씨는 2021년 7월25일 남자친구 이아무개씨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2019년 시중은행의 인턴으로 함께 일하며 만난 지인, 이씨와 집들이하기 위해 예진씨가 거주하는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 모인 날이었다. 새벽 2시23분 지인이 귀가하고 난 뒤 다툼이 벌어졌고, 새벽 2시41분 집을 나선 가해자 이씨가 뒤따라 나온 피해자 예진씨를 오피스텔 1층 로비, 주차장 언덕, 시시티브이 사각지대 등에서 수차례 폭행했다. 예진씨가 정신을 잃어도 응급조치하지 않은 채 이씨는 그의 몸을 끌며 옮겨다니다가 “기절했다”고 119에 허위 신고했다. 예진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뇌사 판정을 받고 누워 있다가 24일 뒤인 8월17일 숨졌다.

남겨진 예진씨의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딸이 폭행당하는 장면이 담긴 시시티브이 영상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간절히 묻고 싶었던 건 하나다. ‘이것이 왜 살인이 아니란 말인가.’ 이씨는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부모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21년 12월13일 변론은종결됐다. 검사는 이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2022년 1월6일 1심 선고를 앞둔 예진씨 엄마 전씨를 2021년 12월5일 경기도 양주의 자택에서 만났다.

살인의 고의가 있었느냐에 따라 ‘살인’과 ‘치사’ 사건은 구분된다.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어야 한다. 예진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나서도 이씨가 제대로 응급조치하지 않고 1층에서 8층으로 옮겼다는 사실에 전씨가 주목하는 이유다. 이씨는 시시티브이 사각지대에서의 폭행(6차)으로 예진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상체를 잡아끌어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주거지인 8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예진씨를 끌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새벽 2시57분 112에 신고했다가 ‘특별한 일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새벽 3시1분 119에 전화를 걸어 “얘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절을 했다. 옮기려다 (예진씨) 머리를 찧었다”고 신고했다.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의 피해자 고 황예진씨의 친구들이 예진씨를 추모하며 만든 앨범. 친구들이 묘지에 두고 간 것을 비 맞을까봐 집으로 가져왔다. 김진수 선임기자

‘마포구 교제살해 사건’의 피해자 고 황예진씨의 친구들이 예진씨를 추모하며 만든 앨범. 친구들이 묘지에 두고 간 것을 비 맞을까봐 집으로 가져왔다. 김진수 선임기자

재판 세 차례 열린 뒤 종결

“싸운 것도, 때린 것도 용서가 안 되지만, 정말 용서가 안 되는 건 쓰러져서 피가 났는데도 제때 제대로 119를 부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이 쓰러져도 심폐소생술을 하잖아요. 정신을 잃은 사람을 그렇게 1층과 8층으로 끌고 다녔다는 건 살릴 의도가 없었다는 거 아닌가요.” 어머니 전씨는 묻는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람을 때리다가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면 피해자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해자인 이씨는 반대로 행동한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정도의 미필적 고의를 의심해볼 법하다. 검찰이 주위적 공소사실로 살인, 예비적 공소사실로 상해치사로 기소해 법정에서 따져볼 수 있는 기회는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도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기소를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미필적 고의는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결과 발생에 대해 인식했다고 보는 거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훨씬 왜소하고 체격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데 대등한 사람을 폭행하는 것과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이씨의 여자관계, 성적인 영상물 시청, 성병을 옮긴 문제로 두 사람이 자주 다퉜고 사건 당일 새벽 예진씨가 ‘다툰 사실을 왜 친구들에게 알렸냐’고 말한 것이 갈등의 시작이라고만 두세 문장 정도로 짧게 정리돼 있다. 그러나 전씨는 가해자 진술에 의존해 재구성한 그날, 그 시점, 그 이유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예진씨를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가해자는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 더 면밀하게 역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연인 관계의 특수성이 범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해자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봐서다. 그러나 재판은 11월4일, 11월18일, 12월13일 세 차례만 열리고 마무리됐다.

“사건 발생 닷새 전에 둘의 연인 관계가 친구들에게 알려지자 이씨가 분노했다는 친구의 증언도 있어요. 예진이 메일에서 이씨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예진이를 ‘미친○’ ‘짐승○’라고 지칭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발견했고요. 이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법한 언행인가요. 가해자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한 범행 동기를 믿기 어려워요.”

이런 어머니 전씨의 말은 가해자 이씨의 주장과 명확히 엇갈린다. 12월13일 진행된 피고인신문에서 이씨는 “순간 화가 났다”며 피해자 사망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6차 폭행은 “어깨를 네다섯 대 때린 게 전부”라고 말했다. 예진씨가 정신을 잃었지만 상태가 위중한지 몰랐기 때문에 “방 안에 넣고 가야겠다, 옮겨다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진씨 집이 있는 8층으로 이동했다가 엘리베이터에 떨어진 예진씨의 혈흔을 보고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아니라 생각해” 119에 전화했다는 주장이다. 1층으로 다시 끌고 간 것도 “조금이라도 치료를 빠르게 받게 하려 그랬다”고 밝혔다. 그는 예진씨를 욕설로 지칭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인턴을 하다가 만나 2020년 12월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어머니 전씨는 교제 사실을 2021년 6월에야 알았다.

시시티브이 37분 분량을 보고 또 보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풀지 못한 의문은 유가족이 짊어져야 할 몫으로 남는다. 전씨는 지난 3개월 동안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37분 분량의 시시티브이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시시티브이 사각지대에서의 폭행을 분석하기 위해 오피스텔 센서등의 깜빡임을 초 단위까지 분석했다. “가해자의 말만 듣는 상황에서 (재판부에) 말할 수 있는 기회는 피해자 진술권뿐인데, 예진이는 이미 사망해서 없기 때문에” 부모가 대신 증인석에 나섰다.

전씨는 최근 성인 팔뚝만 한 두께의 범죄심리학 책을 살펴보고 있다. 사건 당일 병원에 도착했을 때 예진씨의 정확한 상태를 따져보기 위해 300쪽에 달하는 예진씨 의료기록도 떼어왔다. 법률전문가도, 의료전문가도 아닌 전씨 부부에게 모두 힘에 부치는 일이다.

“피해자 쪽이 알 수 있는 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시티브이도 법원에 정보공개 청구해서 겨우 받았어요. 얼마 전에 스토킹범죄로 숨진 피해자 가족분들이 건너 건너 연락이 왔는데 시시티브이를 어떻게 찾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게 일반 국민이 감당하는 일들이에요.”

전씨는 시시티브이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예진씨 죽음은 흔한 ‘데이트폭력’ 사건 중 하나로 잊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트폭력이라는 명명은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히 연인 간의 사소한 문제로 사건을 축소하고 살인이라는 결과를 망각하게 한다고 생각해서다. 예진씨가 숨지기 전인 7월28일 상해 혐의로 이씨의 첫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법원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해 도주 우려가 없고 수사가 충분히 이뤄져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예진씨가 숨지고 부검 결과가 나온 뒤 상해치사 혐의로 영장을 재청구한 끝에 가해자는 구속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가 숨질 때까지 네 번밖에 면회를 못했어요.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저희 아이를 사흘에 한 번 엄마 5분, 아빠 5분, 그렇게 10분 동안 그냥 얼굴만 보다 나오는 거예요. 그때 가해자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가 사람을 때려 죽게 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경찰도 그저 연인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라 보고요. 이 사건을 알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그냥 연애하다가 숨진 거로 잊혀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데이트폭력이라고 하면 가중처벌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살인이고, 사망사건이에요.”

“예진이가 마지막이었으면…”

전씨는 불시에, 가해자가 예진씨를 끌고 다니는, 축 늘어져 있는 예진씨가 떠오를 때마다 말 못할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마음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심리상담 치료도 미뤄두고 재판 결과만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가 “칼로 찌르고, 떨어뜨려” 여자친구를 죽였다는 또 다른 뉴스를 볼 때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는 예진씨 판결이 교제살해 사건을 엄중 처벌하는 판례로 남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가 지금 86살인데, 우리 아이가 26살이잖아요. 아이가 없는, 그 시간을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이 없는 세상을 생각도 못해봤으니까요. 얼마의 벌을 주면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사실 그거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 아이는 이제 세상에 없어요. 이 과정이 너무너무 힘들기 때문에, 정말, 다른 부모는 이 일을 다시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정말 예진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정말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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