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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를 넘어가면 노동권이 사라진다

책상 칸막이 하나로 만들어진 ‘5명 미만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도 부당해고도 인정 못 받아
등록 2021-12-04 19:51 수정 2021-12-05 11:10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해고에 맞서 회사와 싸우고 있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김민정씨. 김진수 선임기자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해고에 맞서 회사와 싸우고 있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김민정씨. 김진수 선임기자

노동자 5명 중 1명(전체 노동자의 19%)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다.
노동시간 제한(주 52시간), 수당(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과 휴업 수당), 휴가(연차 유급 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2019년 1월15일 근로기준법에 신설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도 그림의 떡이다. 성별, 장애, 나이 등을 이유로 해고한 게 아니면 해고의 정당성도 따질 수 없다.
노동자 권리 제한은 사용자에겐 그만큼의 자유를 뜻한다.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득세하는 이유다. 한 사업장을 여러 개의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거나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말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2020년 9월과 12월,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2021년 11월24일 한국노총 대선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한발 물러섰다. 11월29일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해 “사업자의 투자 의욕이라든가 현실을 반영 못했을 때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어 비교형량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1일과 2일 약 다섯 달 만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선 5명 미만 사업장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12월1일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사람들의 행진’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이 주최한 행진이다. 서울 광화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여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사무실까지 걸었다. 행진 종착지인 이재명 캠프 사무실 앞에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해고됐다며 회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김민정(42)씨다. “21세기에 합법적인 노예제도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괴롭히다 일회용품처럼 당일 해고해도 억울함을 다툴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11조가 피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어이없는 제도인지 아십니까?”_편집자주

‘버스 두 번 타야 하는 회사 가서 월 160만원을 받을까, 버스 한 번만 타고 월 150만원 받을까.’ 김민정(42)씨는 2019년 5월 구직활동에 나섰다. 2012~2016년 사회복지사와 평생교육사로 일하다가 늦둥이 넷째가 생겼다. 3년여 임신, 출산, 육아에 전념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당시 만 2살 아들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챙겨야 했다. 결국 월급이 10만원 적은, 더 가까운 회사를 선택했다.

이해 안 되는 조직구조

김씨가 입사한 곳은 전국 산업재해 예방을 지도하는 기관들이 결성한 ㄱ협회였다. 면접 안내 전화를 건 협회 사무국장은 “김용균법(2018년 12월27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얘기하면서 산재를 예방하는 좋은 일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도 “자긍심 가지고 즐겁게 일하자”고 마음먹었다.

ㄱ협회는 간판이 없었다. 60여 개 회원사 중 하나인 ㅎ사 사무실 한쪽을 썼다. 책상 칸막이가 ㅎ사 관리부와의 경계 구실을 했다. 협회 상근 직원은 김씨(대리)와 사무국장 정아무개씨 2명뿐이었다. 사무국장은 ㅎ사 부사장을 겸직했다. ㅎ사 사장은 협회 부회장이었다. 업무 인수인계를 ㅎ사 관리부 소속 대리 2명에게 받았다. 김씨는 “처음에 조직구조가 잘 이해는 안 됐지만 ㅎ사가 협회를 관리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김씨에게 직원 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란 말도 몰랐다.

근로기준법 제11조 1항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2021년 11월29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경력 단절 여성들이 다니는 동네 5명 미만 회사가 생각보다 엄청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5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61.52%에 이른다(총 214만6156개 중 132만269개).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총 1874만3650명 중 19.02%(356만4610명)를 차지한다(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실태 현황’ 2019년 기준).

김씨는 ㄱ협회 업무를 처리하면서 ㅎ사 업무도 병행했다. 그는 2019년 6월 ㅎ사 전자결재 내부 사이트에 가입했다. 김씨가 갈무리한 ㅎ사 전자결재 사이트 조직도 화면을 보면 ㄱ협회는 ㅎ사 소속 부서로 돼 있다. 김씨는 ㅎ사 관리부 대리나 차장에게 주간업무 보고 전자결재를 올렸다. 2020년 2월24일부터 3월13일까지 매주 ‘사장님 산재 예방 유공자 포상 신청 건 문서작성(제출)’을 했다고 보고했다. 장아무개 ㅎ사 사장(협회 부회장)은 2020년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산재 예방 유공자 간담회에서 ㅎ사 대표 자격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김씨는 자신의 업무 말고도 ㅎ사와 ㄱ협회 관리·운영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12월1일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동 더불어민주당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다섯째가 김민정씨. 박승화 기자

2021년 12월1일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동 더불어민주당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다섯째가 김민정씨. 박승화 기자

직장 내 괴롭힘 일지 적어 보냈지만

업무는 분리되지 않았지만 김씨는 고립됐다. ㅎ사 관리부 실장과 직원들이 무시하고 따돌린다고 느꼈다. “난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는데 6살 어린 관리부 대리들은 처음부터 나한테 반말했다.” 2019년 10월엔 ㅎ사 유아무개 대리가 김씨에게 고성을 지르며 화냈다고 한다. 김씨가 협회 담당자로서 회원사 실무자인 유 대리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한 일 때문이었다. 다음날 새벽, 유 대리는 김씨에게 전화해 욕설과 협박을 퍼부었다. 김씨는 유 대리를 경찰에 고소했다. 회사 쪽은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 경찰이 유 대리의 협박 혐의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무렵 유 대리가 김씨에게 사과했다. 김씨는 사과를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그 뒤로도 김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등에 손을 넣어 속옷을 들추고 지나갔다.” “수첩으로 책상을 반복적으로 내리치면서 업무 지적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제76조의3 1항(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이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2021년 3월 김씨는 장아무개 부회장(ㅎ사 사장)에게 전자우편과 종이문서로 건의서를 전달했다. 글 말미에 힘줘 썼다. “앞으로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그동안의 억울함을 좀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괴롭힘을 멈춰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그가 2년간 겪고 느낀 ‘직장 내 괴롭힘’ 일지(A4용지 8쪽)도 별첨했다. 2021년 4월9일 ㄱ협회 임시총회에서 우연히 발언 기회가 생겨 말했다. “ㄱ협회랑 ㅎ사랑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기 (협회 부회장) 사모님이 (ㅎ사 관리부) 실장님으로 계십니다. 그분한테 결재받고 직인, 인감 다 받아와서 해야 하고 협회 물건 사는 거 하나하나 다 여쭤봐야 합니다.”

임시총회 이후 협회 회장과 사무국장이 물러났다. ㅎ사 사장인 장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5월10일 급여일엔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장 부회장(협회장 직무대행)에게서 협회 업무 공유도 받지 못했다. 5월12일 장 부회장이 김씨를 사장실로 불렀다. 두 사람은 급여 지급 지연과 업무 공유 문제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김씨는 그날 장 부회장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6월30일자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았다.

해고 예고 통지서엔 3가지 사유가 쓰여 있었다. 첫째, 사전에 대화를 유도해 불법 녹음을 하는 기망 행위. 김씨는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은 날 장 부회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지금 녹음 중이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둘째, 본인이 잘못 판단하고 사실과 다르게 유추해서 허위 과장된 문서를 기록 작성해 부회장에게 제출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함. 그 문서는 김씨가 장 부회장에게 보낸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전자우편과 종이 서류다. 셋째, 업무 중에 회사가 다른 옆 사무실 여직원과 싸워 근무 기강 등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해 형사처벌과 함께 해당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등 사무실 근무 기강을 흐리게 함. 유 대리가 새벽에 전화해 김씨에게 욕설과 협박을 한 뒤 김씨가 경찰에 고소하고 결국 고소를 취하한 사건이다.

노동권 확대에서 언제나 예외

2021년 5월24일 전자우편으로 협회 공문이 날아왔다. ‘만약에 귀하가 해고 예고 기간 중에 무단으로 결근 등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당 협회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업무 미인계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결국 6월9일과 16일 회사에 나가 업무 인수인계를 했다고 한다. 김씨는 “회사는 마음대로 자르고 인수인계 안 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하는데 난 다툴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1항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

제28조(부당해고 등의 구제신청) 1항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부당해고 등을 하면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이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김씨는 8월2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ㅎ사와 ㄱ협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회사가 ‘허위 사실이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부당해고했다’고 주장했다. ㅎ사와 ㄱ협회는 ‘김씨가 근무한 ㄱ협회는 상시 근로자 수 5명 미만 사업장이므로 노동위원회 구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ㅎ사와 ㄱ협회로부터 통합적인 노무 관리를 받아왔기 때문에 상시 근로자 수 5명 이상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ㄱ협회를 실질적으로 장 사장(협회 부회장)이 설립해 운영했고, 두 법인이 같은 사무실을 공유했으며, 지휘 감독 아래 김씨가 ㅎ사 업무도 수행하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ㅎ사는 상시 근로자 수 30명 이상이다. 회사 쪽은 ‘두 법인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각각 독립된 사업법인으로 의사결정 기관과 절차, 운영 기구, 인사 노무 관리와 회계, 사무용품 구입과 처리 등 모든 행위와 운영이 확연히 구분돼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11월4일 김씨의 신청을 기각 또는 각하했다. 김씨의 대리인 허성희 노무사는 “지노위 판정 근거는 판정문이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ㄱ협회는 5명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 요건 자체가 안 된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ㅎ사는 근로계약 상대방인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사업장의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1953년 법 제정 이후 16명 미만 사업장 전부 제외(1954년 시행령 개정), 5명 미만 전부 제외(1975년 시행령 개정), 5명 미만 원칙적 제외 및 일부 적용(1989년 법률 및 1998년 시행령 개정) 이후 현재에 이른다.

근로기준법 적용 기준을 ‘5명 이상 사업장’으로 삼은 조항과 관련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합헌 결정하며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상시 4인 이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대체로 영세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을 한결같이 준수할 만한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 따라서 부당해고 제한 조항 등을 전면 적용하면 근로자 보호라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영세사업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다만 헌법재판관 2명은 반대의견에서 평등권과 근로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봤다.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상당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겐 근로기준법 일부만 적용되는데,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정할 땐 사업장의 영세함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되고 근로자 보호 필요성과의 비교형량이 필요하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확대하는 입법에서 줄곧 예외로 취급된다. 2022년 1월27일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5명 미만 사업장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의무와 처벌을 면제받았다. 2021년 7월7일 제정된 공휴일법은 근로기준법을 준용하면서 대체공휴일 지정에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제외했다.

5명 미만 사업장 인정하면 싸울 수 없다

김씨는 “해고당할 때도 5명 미만 사업장은 생각 못했다”며 “달걀로 바위 치기인 줄 모르고 시작했지만 너무 억울해서 이젠 얼굴 드러내놓고 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앞서 노동인권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2021년 7월8일 서울동부지방노동청에 김씨에 대한 ‘가산수당·미사용연차수당 등 임금 미지급’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을 이유로 장 사장(협회 부회장)을 고발했다. 현재 사건은 진행 중이다. 김씨는 ㄱ협회가 ㅎ사 운영과 분리되지 않아 5명 미만 사업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싸우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인 걸 인정하면 싸울 도리가 없다. 진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이자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이 생기는 이유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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