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 살았던 무연고 사망자 홍종문(50·가명)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고, 어머니는 홍종문이 14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보육원에 들어갔다. 홍종문은 그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래들은 중학교에 다닐 시기였다. 만 18살이 되면 보육원 보호가 종료된다는 아동복지법 규정에 따라 몇 년 뒤 홍종문은 보육원에서 퇴소해야 했다. 홀로 세상에 나왔다. 게다가 홍종문은 뇌성마비로 태어났을 때부터 뇌병변·언어장애 등 경증장애가 있었다. 보육원을 퇴소한 그는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끌려가 서울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수년간 일했다. 그 뒤 경기도 의왕에서 음식점을 차렸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쳐 이내 밑천이 바닥났다. 이후 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홍종문처럼 무연고사·고독사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회안전망이 좀더 촘촘해져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지금도 해마다 2500명 안팎의 복지시설 청소년이 보호기간이 종료돼 퇴소한다. “보호종료 청소년은 실업, 주거문제, 사회적 관계망 부족 등 사회·경제·심리적 난관을 경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유정원, ‘보호종료 아동 지원현황과 대안’, 경기복지재단, 2020) 30년 전 퇴소당한 홍종문이 그렇듯이.
노숙생활을 하던 홍종문이 동자동 쪽방에 들어온 것은 2012년께였다. 홍종문은 “뭘 해도 잘 안된다”고 낙심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간절히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남산 자락의 시립도서관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검정고시를 보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자신을 가두는 장애라는 껍데기도 깨고 싶었다. 유품으로 남긴 ‘삶맛’이라고 적힌 레몬색 노트엔 반듯한 필체로 “사회복지사상과 철학” “호주 출생 82년생 립푼치킨=장애를 극복”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인생 역전’은 없었다. 그는 좌절할 때마다 술에 의지했다. 건강이 많이 상했다. 결국 2021년 5월 자신의 방에서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갔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홍종문은 고달팠던 삶을 마감했다. 심장마비에 의한 돌연사였다. 2021년 6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그의 공영장례가 치러졌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간사는 장례식에서 그를 애도하며 펑펑 울었다. 박 간사는 “복지시설 퇴소 뒤 사회 정착 지원 문제는 물론이고 우울감, 상실감을 갖고 사는 약자들에게 좀더 탄탄하고 실효성 있는 사회안전망이 있었더라면 (홍씨가 이렇게 숨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근(64·가명)은 2020년 가을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고독사·무연고사 했다. 사인은 알코올성 간경화였다. 그는 노동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져 일을 쉬는 날이 잦았다. 2019년 겨울, 생계 곤란을 겪으면서 생애 처음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이정근은 40년 전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됐는데 장애인등록도 이때 비로소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도 받아들여져 주거급여, 의료급여 등을 지원받게 됐다.1
“‘정보 고립’에 빠진 이에겐 대면 안내 병행해야”이정근이 오랫동안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원인은, 그가 문맹이고 휴대전화도 없던 탓이 크다.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 지원 정보가 주로 주민센터에서 주거지 문 앞에 남겨놓는 안내문이나 인터넷 안내, 지인들의 전언 등으로 전해지는데, 문맹과 휴대전화 미사용 등은 이런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020년 가을 무연고 사망자로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했던 정상현(66·가명)도 이정근처럼 한글을 몰랐고 휴대전화 없이 생활했다. 정상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은 1차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국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정보 고립’으로 정작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정보 고립에 빠진 이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안내문 제공, 복지 담당자가 직접 찾아가서 하는 안내 등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였던 장정성(62·가명)은 2020년 여름 거주하던 주택에서 고독사·무연고사 했다. 사망원인은 ‘미상’이다. 장정성은 2019년 겨울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동주민센터를 찾아가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해 병원비를 댔고 이후 생계급여 대상자가 됐다. 이처럼 장정성은 공적 지원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프다고 나를 돌봐주지 않아도 된다”며 주민센터 관계자나 이웃 등과 관계 맺기는 차단했다.1 ‘돌봄’을 거부한 셈이다. 돌봄 관계가 익숙지 않거나, 도움 자체를 거절하는 것일 수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게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거부’와 관련해 송인주 선임연구위원은 “이처럼 거부하는 분들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빠르게 파악해 그 필요에 맞게 돌봄이나 복지를 제공하는 섬세하고 집중적인 노력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참고 문헌
1. 송인주·모은정,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 연구>, 서울시복지재단, 2021년 11월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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