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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이 공무원 면접에 가서 받은 질문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2021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등록 2021-04-24 14:16 수정 2021-04-28 02:27
2018년 4월11일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이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며 계단으로 출입이 불가능한 서울 명동 편의점 지에스(GS)25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18년 4월11일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이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며 계단으로 출입이 불가능한 서울 명동 편의점 지에스(GS)25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인권의 최후 보루.’ 법원은 이렇게 불린다. 사회에서 떠밀리고, 떠밀리다 법정으로 넘어온 장애인 인권 사건에서 법원은 제구실을 다했을까.
시민단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015년부터 매해 장애인 인권에 디딤돌·걸림돌이 된 판결을 선정해 발표해왔다. 재판을 통한 장애인의 권리 구제가 얼마나 진전되고, 또 후퇴하는지 거시적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한 ‘사법 모니터링’이다.
판결 선정 작업에 4개월 가까이 걸렸다. 2019년 7월~2020년 6월 장애를 언급한 판결 120여 개를 수집해 선별했다(1차 선정). 장애·인권·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 8명이 두 차례 회의를 거쳐 다시 옥석을 가려냈다(2차 선정). 그렇게 디딤돌(5건), 걸림돌(4건), 주목할 만한 판결(5건) 등 모두 14개의 판결이 추려졌다. 주목할 만한 판결은 디딤돌이나 걸림돌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한 판결이다.
<한겨레21>은 이 사업에 동행했다. 2021년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맞아 장애인 인권 증진에 기여하거나 역행한, 또는 생각할 거리를 남긴 판결을 소개하고 이주언·정규석·최정규·최갑인·표경민 변호사가 작성한 선정 이유를 정리해 전달한다. 흩어져, 묻히거나, 잊힌 판결을 따라가다보면 장애인권의 현주소가 보일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5월 ‘2021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연다. _편집자주
디딤돌 ①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정말 성실하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민(가명)씨는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돼 정기인사 발령을 앞두고 있다. <한겨레21>과의 두 차례 서면 인터뷰(4월12일·20일)에서 밝힌 그의 마음가짐은 남달라 보였다.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장애인으로서 겪은 차별을 2년여 법적 다툼 끝에 인정받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합격 소식을 듣고 출근할 때까지 놀 궁리 하기 바쁜 시기인데도 그는 매주 화요일 수어교실에 다니며 중급 수어를 익히고 틈날 때마다 엑셀 프로그램을 연습한다.

이씨는 청각장애 2급이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구어(입술 모양과 표정으로 소통하는 것)로 대화한다. 대학에서 성적 우수 장학금을 세 번이나 받은 그에게 교수는 ‘취업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지만 이를 마다하고 2015년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공무원의 꿈을 키워왔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존경했고 주변에서 받은 지지와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다. 공무원은 안정적인 직업이었다. 공공기관은 사기업보다 차별이 덜할 거라 기대했다.

3년여 공부, 세 차례 도전한 끝에 기회가 왔다. 2018년 그는 한 지자체의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에 지원했고 그 전형의 유일한 필기 합격자로 면접에 올라갔다. 시정 현황을 조사하고, 카페나 블로그에 올라온 면접 후기를 훑으며 예상 질의응답을 작성했다. 그러나 면접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장애 극복 경험 물은 게 왜?’

2018년 당시 면접 전후 상황은 이렇다.

국가와 지자체 등은 자격시험이나 채용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가 비장애인 응시자와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장애인복지법 제46조의 2). 그리고 보조원 배치, 보조기구 지참 등 가능한 편의지원을 시험 공고와 함께 게시해야 한다(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37조의 2 제2항). 그러나 지자체는 면접 과정에서의 장애인 편의지원을 따로 공고하지 않았다. 이씨 어머니가 지자체에 전화해 면접시험 때 필담(글로 써서 묻고 대답함)이나 컴퓨터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면접 방식이 협의됐다.

면접 당일, 지자체는 면접위원에게 ‘면접자가 청각장애 2급이고, 대화 및 수화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자료를 배부했다. 노트북이 배치됐고 회계업무 담당 공무원이 보조요원으로 참석했다. 보조요원과 이씨가 질문과 답을 노트북에 받아치고, 면접위원이 그 내용을 대형 모니터로 공유받는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면접이 시작됐다. 지원 동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본인의 이력, 지자체 인구 증가 방안에 이어 예상치 못한 질문이 이어졌다. “수화를 배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SNS를 쓸 줄 모르는 민원인은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 “장애로 인해 오해나 갈등이 있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구화로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청각장애인이라면 수화를 배워야 한다’는 편견과 선입견이 느껴졌다. 이씨는 장애와 관련한 불이익이 염려됐고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결과는 불합격. 5개 평가 항목 중 하나인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에서 ‘하’ 평가를 받고, 면접 대상자 중 유일하게 ‘미흡’ 꼬리표가 붙었다. 이씨는 지자체 인사위원회를 상대로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망설임은 있었지만, 가만있을 순 없었다. 더는 시험도 치르지 않았다.

2019년 9월 1심(수원지법 행정3부·재판장 이상훈)은 지자체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어머니 요청이 면접에 대부분 반영된 만큼, 결과적으로 이씨가 불이익을 받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절차적 하자는 있지만 그 하자가 경미하다는 것이다. 면접 질문도 “이씨가 장애를 극복한 경험이나, 직무에서 요구되는 여건이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 것일 뿐,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2심 법원이 찾아낸 ‘틀린 그림’

2심은 달랐다. 2020년 11월18일 수원고법 행정1부(재판장 이광만)는 1심을 뒤집고 지자체가 이씨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면접 준비부터 진행, 그 내용까지 어떤 대목이 차별적이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냈다. 그렇게 2심이 1심과 다르게 찾아낸 ‘틀린 그림’은 다음과 같다.

① 어머니가 요청한 방식대로 면접이 이뤄지기는 했다. 그러나 문자 통역으로 진행된 만큼 통상의 면접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시험 시간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받지 못한 이씨는 압박감과 조급함 속에 면접을 치러야 했다.

② 청각장애인은 수어 외에 보청기, 필담, 구화 등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한다. 최근 젊은 청각장애인들은 수어통역보다 구화나 문자통역을 선호한다. ‘대화 및 수화가 불가능하다’는 고지는 이런 추세에 무지한 안내이면서 ‘수화를 못해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면접위원에게 심어준다.

③ 보조요원이 속기사 자격증이나 문자통역 경험이 없는 일반 공무원이었다.

재판부가 발견한 ‘중대한’ 절차적 하자들이다. 재판부는 면접위원의 평정은 자유재량으로 이뤄진다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만큼 공개경쟁 임용시험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절차적 요건이 더욱 엄격하게 준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틀린 그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면접에서 건넨 질문도 면접위원의 재량권을 벗어났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④ “면접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에게 장애에 관해 묻는 것은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물어보지 않는 내용을 물어보는 것으로서 장애인과 장애가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장애인 응시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위축시키며 다른 질문에 할애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장애인 응시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판결문 15쪽)

면접위원 질문은 의사소통의 방법이나 능력에 대한 것으로, 이씨 장애를 평가 요소로 삼은 것이나 다름없다. 청각장애인 공무원은 근로지원인에게서 대화·전화통화 지원 등을 받을 수 있고, 이런 편의 제공 의무는 노동자인 이씨가 아니라 사용자인 지자체에 있다는 점에서 직무관련성도 없다. 이런 질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명시했다.

판결 뒤 재면접 끝에 최종 합격

이 판결로 지자체는 이씨에게 재면접 기회를 줬다. 앞선 면접과는 달라야 했고, 달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면접관에게 장애인 면접에 대한 사전교육이 실시됐다. 시간 연장 등 편의도 지원됐다. 그 결과 이씨는 지방공무원으로 2021년 2월 최종 합격했다. 이씨는 “장애인 수험생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공정하게 평가받아 다양한 사회 분야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미 있는 판례를 남겨서 보람 있다”고 했다.

이 판결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진행하는 ‘2021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에서 디딤돌 판결의 하나로 선정됐다.(2019누13363) 장애인의 노동할 권리, 관련 법령에 대한 재판부의 높은 이해도가 돋보인다고 선정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통상 면접은 면접위원들의 재량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이유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웠다”며 “이 판결은 법원이 처음으로 면접위원의 질문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그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특집-장애인 인권 판결

청각장애인이 공무원 면접에 가서 받은 질문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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