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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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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이 맺은 계약은 유효한가

디딤돌·걸림돌 판결 외 주목해야 할 문제 보여주는 판결들
등록 2021-04-24 23:58 수정 2021-04-29 10:2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인권의 최후 보루.’ 법원은 이렇게 불린다. 사회에서 떠밀리고, 떠밀리다 법정으로 넘어온 장애인 인권 사건에서 법원은 제구실을 다했을까.
시민단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015년부터 매해 장애인 인권에 디딤돌·걸림돌이 된 판결을 선정해 발표해왔다. 재판을 통한 장애인의 권리 구제가 얼마나 진전되고, 또 후퇴하는지 거시적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한 ‘사법 모니터링’이다.
판결 선정 작업에 4개월 가까이 걸렸다. 2019년 7월~2020년 6월 장애를 언급한 판결 120여 개를 수집해 선별했다(1차 선정). 장애·인권·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 8명이 두 차례 회의를 거쳐 다시 옥석을 가려냈다(2차 선정). 그렇게 디딤돌(5건), 걸림돌(4건), 주목할 만한 판결(5건) 등 모두 14개의 판결이 추려졌다. 주목할 만한 판결은 디딤돌이나 걸림돌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한 판결이다.
<한겨레21>은 이 사업에 동행했다. 2021년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맞아 장애인 인권 증진에 기여하거나 역행한, 또는 생각할 거리를 남긴 판결을 소개하고 이주언·정규석·최정규·최갑인·표경민 변호사가 작성한 선정 이유를 정리해 전달한다. 흩어져, 묻히거나, 잊힌 판결을 따라가다보면 장애인권의 현주소가 보일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5월 ‘2021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연다.  _편집자주

지적장애인이 당사자인 계약은 유효한가.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을 선정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슈다.

주목 ①

부동산임대업자가 지적장애인 명의로 분양 계약 등을 하고 이득을 얻은 사건에서, 법원은 임대사업자가 장애인 당사자와 상의한 정황이 없고 당사자가 계약 과정과 내용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계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서울고법 2019나2031052)

주목 ②

이런 사건도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혼인신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 혼인하고 성폭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 장애인위계등간음)를 받는 피고인에게 법원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한 대목이다. “피해자 정도의 장애 수준이라면 혼인과 같은 중대사에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서울고법 2019노928)

두 판결은 결과적으로 피해 장애인을 보호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했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남긴다. 지적장애인 결혼에 보호자 동의가 항상 필요한가.

지적장애인의 법률적 능력을 부정하는 게 당사자에게 반드시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의사 무능력을 이유로 계약 효력을 손쉽게 부정하면 장애인의 자유로운 법률행위가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보완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한, 그 법률행위는 법원의 임의적인 판단에 따라 개별적으로 그 효력이 인정되거나 부정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주목 ③
장애학생 부모의 언론 제보 보호 (의정부지법 2018가단107947)

학교폭력 피해자인 장애학생의 부모가 학교의 부당한 처우를 언론에 제보한 행위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한 사건에서 법원은 장애학생 부모가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장애학생은 학교폭력위원회를 통해 구제받지 못할 때 최후 수단으로 언론 제보를 택하게 된다. 장애인 인권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피해자는 물론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피해자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에서 주목 할만하다.

주목 ④
장애아이 출산한 여성 산업재해 인정 (대법원 2016두41071)

병원 간호사 다수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한 사건에서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권리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태아의 권리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상 부득이한 결론이지만,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수급권자로 인정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주목 ⑤
모든 사업장 합쳐 장애인 의무 고용률 계산해야 (대전고법 2019누10724)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해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게 된 사업주가 여러 병원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므로 고용부담금 대상(상시 100명 이상 고용한 사업주)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건이다. 각 병원을 독립된 사업주로 볼 수 있는지 쟁점이 됐는데, 법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 수를 합산해 고용부담금 대상을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장애인고용법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한 판결이다.

정리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특집-장애인 인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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