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외출 자제하라는데…이 집에 콕 박힐 수 있을까

거리두기 시대에 일터, 학교, 피난처 된 집…
단독주택·아파트·원룸·고시원 거주자의 재택 생활
등록 2020-08-29 13:44 수정 2020-10-22 11:10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쪽방이나 고시원은 감염병 시대에 더 위험한 공간이 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쪽방이나 고시원은 감염병 시대에 더 위험한 공간이 됐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88명, 324명, 332명, 397명, 266명, 280명, 다시 320명 그리고 440명. 8월19일부터 26일까지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다. 정부는 8월27일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속도 있게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전 국민이 사실상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서 주거 환경에 따라 차별적으로 겪는 재택 생활을 취재했다. 대면 예배를 금지한 방역 조처에 “종교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교회의 속내와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아마존 원주민의 목소리를 담는다_편집자주

아침 7시30분, 국내 한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최지훈(35·가명)씨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평소라면 15분 만에 씻고 8시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한 오전 9시30분께 업무를 시작하겠지만, 요즘은 씻은 뒤 시리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마당에 나선다.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정원 흙에서 샤워하는 새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뒤, 방 책상에 앉는다. ‘집콕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산 업무용 의자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업무 시간을 함께한다.

“단독주택이라 다행”

일주일에 주 6일 이상은 집 밖에서 활동할 정도로 ‘집돌이’와 거리가 멀었던 최씨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할 수 없이 ‘집콕’ 생활 중이다.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퍼지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올라간 8월 중순부터 그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2월 중순부터 6월까지 재택근무하다가 회사에 출근한 지 2개월 만이다. 매주 일요일에 가던 교회도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카페와 식당 등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상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자 더 이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영화관이나 서점을 찾는 발길을 끊었다. 대신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하면 마당에 나가서 바람을 쐬거나 10분 거리에 있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다. ‘비자발적’ 집콕 생활이 바꾼 일상의 풍경이다.

최씨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20년 이상 살고 있다. 벌레와 싸워야 하고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소식에 마당에 있는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요즘만큼 주택의 효용성을 느낀 때가 없었다. 얼마 전엔 가족과 식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주택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최씨는 “가족끼리만 조심하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인류 앞에 나타난 지 9개월. 전세계에 확진자는 2415만 명을 넘었고, 82만 명 넘게 사망했다(8월26일 기준). 추적 방역으로 빠르게 안정을 찾아 전세계에서 ‘K-방역’이라며 모범 사례로 꼽히던 한국도 다시 코로나19 한복판에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두 자릿수로 떨어졌던 하루 확진자 수는 400명(8월26일 기준)을 넘어섰다.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퍼졌던 1차 유행에 이은 이번 2차 유행은, 총인구 50% 이상이 밀집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퍼져 방역 당국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조처를 검토 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실시되면 10명 이상 집합과 행사 등이 금지된다. 공공기관에선 필수 인원을 제외한 직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민간기업도 재택근무를 권고한다. 사실상 필수적인 사회경제 활동 외의 모든 활동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기에 모든 걸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셀프 자가격리’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사는 집은 감염병 시대에 ‘집콕’ 하기 좋은 집인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최지훈(가명)씨의 집. 최씨는 하루 세 번 마당에 나와 답답함을 해소한다. 최지훈 제공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최지훈(가명)씨의 집. 최씨는 하루 세 번 마당에 나와 답답함을 해소한다. 최지훈 제공


싸우는 세 아이, 그리고 아파트

하루 24시간 내내 아이 셋에 시달리는 정수현(33·가명)씨는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으면서 공간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다섯 식구가 살기 적당한 크기(34평, 112㎡)라고 생각했지만, 집 안에서 애들끼리 자주 싸워 골치다. 단지 내 주민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아예 외출하지 않으면서 싸움은 더 잦아졌다. 매일 아침 “오늘은 나갈 수 있냐”고 묻는 7살 아들은 며칠 전엔 “밖에 나가고 싶다”고 울었다. 아이를 달래가며 거실을 놀이터 삼아 놀지만 층간 소음 때문에 절절맨다. 그래도 집 안에서 버텼던 건 ‘안전’ 때문이었는데, 최근 서울 구로의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서 5가구 8명이 감염된 원인으로 환기구 가능성을 언급하는 뉴스를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딸이 이젠 화장실에서도 마스크를 해야 하냐고 묻더라. 다음에 이사 갈 때 마당 있는 집을 고려할까 싶다.”

집이 탄생한 이후 집의 1차 기능은 안전이었다. 자연과 적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공간이던 집은 시간이 지나면서 휴식과 안락 기능이 더해졌다. 이젠 모든 것에서 접촉을 줄여야 하는 감염병 시대를 맞아 ‘격리생활’이라는 새로운 기능적 필요가 더해졌다. 문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같은 물리적인 접촉부터 인간관계 접촉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이라야 한다. 또 자녀의 온라인수업을 위한 학습 공간과 재택근무를 위한 업무 공간까지 필요해졌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는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와 회사의 개념이 점차 무너질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그동안 1970년대에 4인 가족 기준으로 지은 집의 공간 개념이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 교수는 “그동안 휴식의 공간이었던 집이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교육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구성이 바뀔 것이다. 공간 구성이 주방, 식사 공간, 거실, 화장실이었다면 이젠 일하는 공간과 더불어 자녀가 각자 방에서 온라인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의 생활 기준에서 주중 낮의 공간 활용도 고민하는 것으로 집의 활용이 바뀌리라는 전망이다. 기능적 수행이 더해지면서 집의 크기가 150%가량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가구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을 9.58평(31.7㎡)으로 봤을 때(국토교통부 ‘2018 주거실태조사’) 약 12~15평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재택근무 활성화로 주택 내 체류 시간이 늘면 수도권 외곽으로 거주지가 이동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어디에 살 것인가’ 하는 거리(위치)의 문제보다 ‘얼마나 쾌적한 주택에 살 것인가’ 하는 주택 면적과 주거의 질에 대한 문제에 더욱 신경 쓸 것이라는 분석이다(이지은 서울연구원 초빙부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소비자 심리와 일상, 도시의 변화 및 대응 방안’). 실제 미국에선 재택근무 활성화로 실리콘밸리의 월세가 10%가량 하락하고 근교 주택 가격이 올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주거 생활의 변화를 예측하는 건 집을 소유하거나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염병은 노동·교육·여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차별의 얼굴을 드러냈지만, ‘안전의 최전방’에 있는 주거마저 차별 영역으로 끌고 들어간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생존할 수 없음을 느낀다. 감염병이 드러낸 개인 공간의 양극화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구청 직원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구청 직원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시원서 거리 두기, 불가능한 미션

9평 정도 되는 원룸에서 6년째 사는 직장인 김민경(35·가명)씨는 요즘 들어 집이 답답하다. 비대면 탓에 좁은 공간에서 수면, 휴식, 커피 마시기, 요리, 여가 모두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재택근무까지 한다면 김씨는 앞이 깜깜하다. “개인적이면서도 외부와 접하는 공간에 나무를 심고 사색도 할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변 전셋값이 많이 올라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김씨는 그저 학창 시절에 살았던 고시원과 비교하면 지금 사는 원룸이 훨씬 낫다고 스스로 다독인다.

오상례(76·가명)씨는 선풍기도 없는 월 22만원짜리 고시원에 산다. 지난해 겨울 전까진 보증금 100만원에 월 25만원짜리 지하에 살았다. 변기물이 온 방 안에 넘쳐 벽까지 타고 올랐다. 난방을 하면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결국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부에선 ‘2m 이상 거리 두기’를 하라는데 고시원에 사는 오씨에겐 불가능한 미션이다. 화장실, 샤워실, 부엌 모두 30명가량이 함께 쓴다. 방역이라고 해봐야 현관 앞에 둔 손소독제가 전부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답답해 방문이라도 열어두고 싶지만 윗옷을 벗고 다니는 남성들 때문에 그마저 접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지만 갈 데가 없다. 죽더라도 밥해먹고 생활했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주거취약계층주거 지원사업에 신청해 전세임대에 당첨됐지만, 아직 방을 못 구했다.

7월까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2.2평 고시원에서 생활한 대학생 고근형(23)씨 처지도 다르지 않다. 그의 어려움에는 온라인수업이 더해진다. “고시원에서 화상으로 학교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각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침대 위에 올려놓은 물건, 널어놓은 빨래가 다 보여 부담스러웠다. 또 하루 5시간 정도 이어폰을 끼고 수업을 들어야 해서 귀가 많이 아프다.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어폰을 빼고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다.”

공간의 양극화, 안전의 양극화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고시원이나 쪽방은 집에서 머물라는 방역 지침을 지킬 수 없는 생활 환경이다. (감염병이 또다시 생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임대주택을 제공할 때 주거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적인 ‘집콕’ 생활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우선 주거취약계층은 36만9500여 가구. 이 중 고씨나 오씨처럼 고시원이나 고시텔에 사는 수는 15만1553가구다. 고시원 거주자의 약 75%가 2030세대 청년층이고, 60대 이상 노년 빈곤층도 6.5%가량 된다(국토교통부,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2018).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코로나19 재확산_위기에 처한 삶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8/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