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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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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신음하는 아마존의 수호자

코로나19 숨겨진 취약계층 아마존 원주민…
차별 정책과 산불 이어 전염병까지
등록 2020-08-29 05:28 수정 2020-10-22 02:10
불법 벌목이 벌어진 아마존 카리푸나족 영토(원주민 보호구역). 안드레 카리푸나 제공

불법 벌목이 벌어진 아마존 카리푸나족 영토(원주민 보호구역). 안드레 카리푸나 제공

“코로나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롯해 유력 정치가나 유명 인사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이런 생각은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여전히 권력자나 부유층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 이후의 차별 대우는 명백했다. 그들은 예외없이 가용가능한 가장 신속하고 뛰어난 의료 지원을 받았다. 대개는 치료 결과도 좋았다. 반대로 권력이나 부와 거리가 먼 이들은 입원도 못한 채 병원 바깥에서 전전긍긍하다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코로나 취약계층”에게는 방역수칙 중 가장 중요한 사회적 거리 두기도 사치였다. 빈민층에게는 애초에 거리를 둘 여유 공간이 없었다.  

우리가 잘 떠올리지 못하는 코로나19 취약계층이 여기 있다. 지구 반대편 아마존 밀림에 사는 원주민이다. 2019년 이맘때 전세계 언론이 아마존 산불에 주목한 것에 비하면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문인지 비교적 잠잠하다. 그렇다고 산불이 꺼진 건 아니다. 올해는 더 심할 전망이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에 따르면 2020년 7월 한 달 동안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산불은 6091건으로 집계됐다. 2019년 7월의 5318건보다 14.5% 늘어난 수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전 남미와 브라질을 강타했다. 현재 브라질은 확진자가 무려 316만 명 이상, 사망자만 10만5천여 명으로 미국과 함께 “코로나19 최악 대응국” 중 하나로 손꼽힌다. 팬데믹을 ‘가벼운 감기’로 취급하며 방역에 소홀했던 탓이다. 그사이 아마존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에도 코로나19가 급속히 파고들었다. 8월10일 기준 아마존 원주민(브라질 지역) 확진자는 1만7498명, 사망자는 564명에 이른다.(SESAI, COIAB 통계)

아마존 원주민들은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마스크를 사지 못한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아마존 원주민들은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마스크를 사지 못한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아마존 원주민 확진자 1만7498명

그러나 브라질 정부의 원주민 공동체 보호는 뒷전 중의 뒷전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하는 산불의 책임이 주로 원주민에게 있다고 근거 없이 주장해온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니, 어쩌면 예상된 일이다. 그는 심지어 원주민 긴급 구조 대책을 비토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차별적인 반원주민 정책을 고수했다. 다행히 연방 대법원에서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행정부 수장이 이러하니 당장 필요한 제도적 도움이 제공될 리 만무하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원주민의 죽음을 방조하는 셈이다.

2019년 9~10월 내가 속한 국제환경단체는 산불이 다소 잦아든 아마존 서북부 혼도니아 지역을 찾아 실태조사에 나섰다. 아마존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이 착잡한 경험이었다. 예전에는 경이로운 자연에 도취됐다면, 이번에는 그 아름다움이 파괴되는 현장을 마주해야 했다. 그럴수록 남아 있는 자연이 더 소중해졌다. 그곳에서 만난 동물, 식물, 씨앗은 이국적이었지만 나와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헤아리기 힘든 다양성과 풍성함만으로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존재에 공감하면서, 그곳에 사는 동료 인간에게 연대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존 원주민은 정글이라는 낯선 미술관에 들어선 이방인에게 안내자 같은 존재였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모르던 길을 걷고, 불가능해 보였던 삶의 가능성에 눈떴다. 무엇보다 그들로 인해 숲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림 훼손이 점점 심해지는 아마존 지역을 가본 사람은 안다. 숲이 그런대로 원형을 유지하며 남아 있는 곳은 여지없이 원주민 보호구역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있기에 숲이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이 사라지면 숲 역시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에 거대 농축산업과 광산업 세력이 원주민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며, 이 개발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2019년 1월 당선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틈만 나면 원주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엄연한 보호구역 안에서도 불법 벌채나 토지 횡령이 벌어지고, 원주민은 생존을 위협받는다.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아마존 원주민. 진단키트가 40개뿐이라 원주민 대부분은 검사받지 못했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아마존 원주민. 진단키트가 40개뿐이라 원주민 대부분은 검사받지 못했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도와달라” 전례 없는 요청

이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태풍이 몰아쳤다. 역병이 확산되자 산림 감시를 맡은 공공기관들의 행정력이 크게 약화됐다. 불법 벌목과 방화, 원주민 보호구역 침입이 한층 기승을 부렸다. 2019년 실태조사 때 만난 카리푸나족 추장 안드레가 내게 사진을 보냈다. 벌목꾼이 낸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이 자욱한 연기를 내뿜어 잿빛으로 변한 하늘, 그리고 그들의 숲이 무참히 불법 벌채돼 헐벗은 모습(카리푸나족을 돕는 현지 활동가가 드론으로 찍었다)이었다. 나 역시 코로나19로 발이 묶여 있어 무력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나의 비관이, 도움이 절실한 친구보다 더 클 순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물일곱 살에 카리푸나족 추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맡은 안드레에게. 카리푸나족은 구성원 전체가 겨우 61명으로, 말 그대로 절멸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아마존에 흩어져 사는 300~400여 개 부족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이미 2명이나 생겼다. 감염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안드레는 벌목꾼이 역병을 옮길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과거 식민지 시대 아마존 ‘정복자’들이 수많은 원주민을 몰살로 몰았던 가장 큰 무기가 총이 아니라 역병이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감염자 수로만 본다면 내가 접촉한 부족 중에는 테냐린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구성원 1232명에서 확진자가 257명(21%)이나 나왔다. 전체의 5분의 1에 이른다. 테냐린족의 리더인 아우렐리우는 긴급구호가 필요한 실정인데 브라질 정부는 아무것도 돕지 않는다며, 자칫 잘못하면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내게 토로했다. 많은 부족민이 병에 걸리면서 수렵과 채집이 여의치 않아 식량 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통 약초 치료에 의존해 버티고 있지만 코로나19의 경우 현대의학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마스크 등 최소한의 구호물자를 보내준 곳은 비정부기구(NGO)였는데, 이 단체도 열악한 상황이다. 숲에 의존해 잘 살아가던 이들이 전례 없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부족 할머니가 전분 가루를 먹고 있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부족 할머니가 전분 가루를 먹고 있다. 아우렐리우 테냐린 제공


그들이 쓰러지면 숲도 쓰러진다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 먹는 가축 또는 가축 사료의 공급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브라질산’을 만난다. 아마존 벌채의 80~90%는 육류 생산(목초지나 사료용 대두 재배) 때문에 벌어진다. 또 코로나19만큼이나 온실가스 문제도 국경을 넘나든다. 아마존 밀림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탄소를 많이 흡수하며, 중요한 담수 공급원이자 전세계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지구인 누구에게나 중요한 자연유산이다. 숲을 지키는 원주민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 그다음은 나무다. 아마존 원주민은 생존으로써 기후위기를 막는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도울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김한민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불법 벌목과 코로나19 때문에 위기에 처한 카리푸나족과 테냐린족에게 긴급구호물자를 조달할 수 있게 온라인 모금으로 힘을 보태주세요. 이 위기를 이겨내야 아마존 숲을 지키고, 자연과 인간이 상호 존중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환경운동연합 해피빈에 접속하면 기부할 수 있습니다.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73975)

*코로나19 재확산_위기에 처한 삶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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