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감염병은 도시를 변화시켰다. 19세기 인도 갠지스강 유역에서, 제국주의 물결을 타고 세계로 번진 콜레라가 그랬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유럽 빈민층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로 모여든다. 도시 빈민가 인구 밀도가 높아졌고, 오물이 쏟아져나왔다. 하수 처리(도시 폐수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되지 않은 채 버려진 오물이 다시 식수로 스며들었다. 비생위생적인 주거환경이 사망률 50%를 넘나드는 콜레라를 퍼뜨린 셈이다.
1842년 영국에서 발간된 보고서 ‘대영제국 노동인구 위생 상태에 대하여’엔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이 높은 사망률이나 짧은 기대수명과 연관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1848년 여름, 또 한 번 콜레라가 휩쓴 런던에선 7천여 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해, 하수 처리와 배수·청소, 도로포장 등 공중보건(지역사회 차원의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활동) 체계를 규정한 ‘공중보건법’이 처음 제정됐다. 시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 세계로 번지는 코로나19는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대도시 지역 절반은 ‘주민 1인당 공원 면적’ 미달
“이렇게 공원이 아쉬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희은(39·가명)씨 부부는 요즘 경의선숲길 바로 옆 아파트 주민들이 부럽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인생 첫 자전거를 사줄 계획인데,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집 근처 공간은 경의선숲길이나 한강공원이다. 2~3㎞ 거리라 걸어가기엔 멀고, 자전거를 타자니 교통사고가 걱정된다. 부족한 운동량도 채우고 숨 돌릴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를 보면, 2016년 기준 한국 성인 35.4%는 건강 유지를 위해 권장되는 1주 운동량(중강도로 최소 150분 또는 고강도로 최소 75분)을 채우지 못한다. 신체 활동 부족으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32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보건복지부, 2016년) 급속한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공공 공간 조성은 건강증진 정책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공원이 부족하다. 모든 시민이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2019년 3월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펴낸 보고서 ‘포용도시 구현을 위한 공원 서비스 현황 및 개선 방안’을 보면, 서울과 6개 광역시의 총 1148개 읍·면·동 가운데 법적 기준인 주민 1인당 공원 면적이 3㎡에 미달하는 지역은 530곳(약 46%)에 달했다. 특히 노인 비율이 높거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공원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도시·교통공학)는 “서울 강북의 경우 계획적으로 성장한 지역이 아니라 오픈 스페이스(공원·운동장·도로·하천 등 개방된 공간으로 신체 활동이 가능한 장소)가 민주적으로 배분되지 못했다”며 “지금까진 도시재생을 할 때 오래된 주택을 주차 공간으로 바꾸어왔으나 앞으로는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환할 수 있다”고 짚는다.
운동장처럼 일정한 면적을 확보하고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는 면(面)형 공간보다는, 경의선숲길이나 한강처럼 하천·폐선 터를 따라 산책과 달리기, 자전거 타기가 가능한 선(線)형 공간이 주목받을 것이다.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마을재생센터장은 “서울 한강을 제외하고, 지방 도시 강변은 카페나 식당, 독서모임·생활운동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강변 공원 활성화는 집중호우 같은 기후 요인과 운영관리 문제 등으로 인해 지자체의 주요 사업으로 고려되지 않았으나, 민관 협력을 통해 유용한 공공공간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염병에도 대중교통 타고 가야 하는 노동자들
선형 공간은 ‘나 홀로’ 이동이 가능한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같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퍼스널 모빌리티와도 궁합이 맞는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주요 도시에선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대중교통 기피 현상이 일어났다. 형편이 넉넉한 가구는 승용차를 이용해 장거리 이동을 하겠지만,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터로 가야 하는 이들은 계속 대중교통을 탈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도심에서 화석연료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경우 이번 봉쇄 조처를 계기로 도심 차도를 줄이고 대신 자전거도로와 보행자 공간을 확장하기로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해도 사람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책을 읽고 운동도 해왔다. 반면 감염병 재난을 대비하지 못한 공공도서관이나 체육시설은 장기간 폐쇄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공공시설이 온·오프라인에서 어떤 역할과 서비스를 할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건축가인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는 “지금은 공공 공간 대다수가 공급자 관점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는 양적인 확충보다 개인 필요에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 방문자 몇 명을 목표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서비스 접근성을 살펴보는 지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를 덮치는 재난은 복합적이다. 감염병이 도는 동시에 지진·화재·폭염 재난이 닥칠 수도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을 겪은 2018년 온열질환(열 노출로 발생하는 급성질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공간은 다름 아닌 집이었다. 사망자 48명 가운데 15명이 집에서 숨졌고, 9명은 70~80대 노인이었다. 2018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발간한 ‘수요자 중심 맞춤형 폭염 대응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층 고령자가 통풍과 단열이 취약하고 냉방 시설이 미비한 열악한 환경에서 많이 산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나타난다고 이러한 주거 취약층을 집에 머물게 하는 조처는, 곧 삶에 대한 위협이다.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은 적정한 실내 온도에서 살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이자, 기후변화·안전사고 취약층이다.
19세기에는 ‘위생도시’가 상상에 그쳤지만
19세기 콜레라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도시 주거환경이 드러나자, 영국 의사 벤저민 리처드슨은 ‘고아·정신장애인, 무기력한 사람, 노인들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며 돌봄을 받는’ 위생도시(하이게이아)를 상상했다. 콜레라가 일구지 못한 변화를, 코로나19가 촉진할 수 있을까. 영국 사회혁신 싱크탱크 네스타(NESTA)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에서 이렇게 전망한다.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영향은 사회 불안이나 광범위한 사회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 사회 취약성이 드러남에 따라 기본소득(UBI) 같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와 실험이 이어질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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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_큰 국가의 귀환
1. 코로나 이후 '큰 국가'가 돌아왔다
2. 국가가 이끄는 시장의 막대한 힘, 막막한 과제
3. 자유 vs 안전 논쟁을 넘어 '코로놉티콘'을 막아라
4. K의료는 없다... 공공의료 복원 시작할 때
5. 도시가 건강해지면 시민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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